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행사 참석을 위해 이동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photo 조선일보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행사 참석을 위해 이동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photo 조선일보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놓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고(長考)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 입을 통해 그의 근황이 전해지면서 입당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던 6월 초와 달리 정작 본인은 아직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윤 전 총장과 가깝다는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억측’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입당설을 부인했다. 그는 윤 전 총장과 교감했다는 것을 전제로 지난 6월 9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는 이야기가 제일 큰 억측이다. 본인한테 정말 ‘입당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어떤 결정도 한 적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 자신도 같은 날 서울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우당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처음으로 제가 (공개 장소에) 나타났는데, 제가 걸어가는 길을 보시면 차차 아시게 되지 않겠나 싶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구체적 입당 시기에 대해서도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늦게 등판할 것”

사실상의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어떤 세력을 등에 업고 정치할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의 행동에 국민의힘 당내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6월 8일 “윤 전 총장과 관련해 제3자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현재의 소통방식은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당당하게 직접 나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당 유승민 전 의원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너무 숨어서 간 보기를 한다”며 “간 보기 그만하고 이젠 뛰어들어야 한다”고 공개 행보를 재촉했다. 윤 전 총장이 6월 9일, 취임 후 첫 공개 행보에 나선 것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설과 관련해서는 윤 전 총장이 아닌 국민의힘 측에서 불을 지핀 측면이 크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강원도 강릉에서 윤 전 총장을 만난 사실을 공개하자,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 장제원 의원 등이 잇따라 윤 전 총장과 만나거나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분위기를 띄운 것이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윤 전 총장과 직접 교감하고 있는 인사들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보다는 언제 대선에 뛰어든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국민들에게 알릴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고, 그 시기는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늦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등에서는 윤 전 총장이 당대표 선출 이후, 늦어도 7월 초에는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실제로 윤 전 총장과 접촉하는 인사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늦게 나올 것”이라는 데에 입을 모으고 있다. 기자가 만난 윤 전 총장 측 한 인사는 그의 등판 시기를 9월 정도로 꼽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힘에 합류할지, 합류하게 되면 언제가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대권 도전 선언이나 정치세력과 손잡는 일을 최대한 늦추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최근 각계 전문가를 만나거나 책을 읽으면서 내공을 쌓고 있다. 하지만 한 나라를 운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주변에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정책현안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소수의 측근들을 통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아이디어에는 추천인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국민들 앞에 대권 도전을 선언할지에 대한 여러 층의 의견도 담겨 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는 ‘가급적 늦게 링 위에 오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의견을 올리는 인사들은 여러 전문가를 만나면서 내공을 쌓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대부분 검증할 시간을 줄이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의 한 측근 인사는 “윤 전 총장의 지금 지지율을 보면 경선이나 전당대회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컨벤션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며 “오히려 검증 과정에서 지지율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 당내 경선부터 뛰어들 경우 단숨에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는 지지를 받게 되는데 추대가 아닌 이상 여기서부터 검증 과정들을 거치게 될 것”이라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런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면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윤 전 총장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전 반기문 전 총장의 의전 쪽 일을 맡았던 한 인사는 “반 전 총장이 최대한 늦게 한국에 들어와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을 줄여야 했는데 외교부 출신 측근 인사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이런 전략이 무너졌다”며 “그가 낙마한 이유는 정책이나 의혹보다는 사소한 행동들로부터 구설에 오르기 시작하며 이미지가 망가진 탓이다. 이를 윤 전 총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쏘시개로 사라진 전철 밟지 않겠다

또한 윤 전 총장은 섣불리 당에 들어가 불쏘시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대 대선을 보면 정주영, 문국현, 안철수, 반기문 등 기존 정치권과 거리가 있던 인물들이 대선 전 많은 기대를 받고 등장했다가 초라하게 사라지거나 불쏘시개만 된 전례가 많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윤 전 총장을 무조건적 대선후보로 생각하기 보다는 당 안팎의 유력주자들이 울타리 안에서 경쟁을 펼쳐야 흥행에서부터 여당을 압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 흥행 신호탄을 윤 전 총장이 쏘아올려주는 것이 당 입장에서 베스트 시나리오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윤 전 총장 입당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또다시 최재형 감사원장이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영입에 힘을 모을 가능성도 크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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