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 홍영림 조선일보 기자. 천관율 Alookso 수석에디터.
(왼쪽부터 시계방향)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 홍영림 조선일보 기자. 천관율 Alookso 수석에디터.

한국 정치 지형이 꿈틀거리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고한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등을 돌렸고, 제1야당 국민의힘에선 헌정사상 처음으로 0선에 30대 정치인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정치판의 통념이었던 ‘진보정당=젊은층, 보수당=중장년층’이라는 구도가 현실 정치에서 깨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청년 민심, 구체적으로는 2030세대의 보팅파워를 실감한다. ‘세대교체’ ‘청년정치’ 등의 키워드가 양당의 주요 의제로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성향의 원로 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은 지난 6월 17일 이와 관련해 전직 여야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초청해 ‘코로나19와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패널로는 한상진 교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 홍영림 조선일보 기자, 천관율 Alookso 수석에디터 총 5명이 참석했다. 주간조선은 중민재단과의 기획으로 당시 포럼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날 자리에선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재보선 패배, 이준석 돌풍 등 정치권 이슈는 물론 양대 정당의 과제와 내년 대선 전망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됐다. 한상진 교수는 기조 발표를 통해 “세대교체나 시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하지만 그 이면엔 전례 없는 불확실성과 뜻밖의 가능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라고 밝히며 토론의 막을 열었다.

“진보, 시민에서 정부 중심으로 기득권화”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이하 신)_ “이제 막 발을 뗀 이준석 돌풍을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확실한 결과로 나타난 지난 재보궐 선거부터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부산은 그렇다 쳐도 서울에서 민주당이 이렇게 참패한 건 1948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더 넓게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 정파가 무력한 모습을 보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천관율 Alookso 수석에디터(이하 천)_ “돌이켜보면 여론은 여러 번 경고를 해왔다. 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는 선거 직후 때마다 20~30%포인트씩 빠졌다. 굉장히 희한한 일이었고 그 결과가 재보궐선거로 나타난 거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이하 한)_ “큰 정치적 변화 흐름에서 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작게는 2030세대의 움직임, 크게는 세대교체 등의 요구가 있었다. 이는 세대와 이념, 시대좌표(정부 중심 혹은 시민 중심)의 상관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지난해 재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이 3개 요인을 중심으로 상당한 지각변동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대좌표는 시대를 이끄는 힘으로 다양한 쟁점을 해석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분석 틀이다.”

재단은 지난해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과 세계 30대 도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대좌표로 일컬어지는 ‘정부 중심’ 혹은 ‘시민 중심’ 성향을 10점 척도의 설문을 통해 측정한 바 있다. 주요 질문으론 ‘사회가 위험에 직면할 때 정부가 공적 권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 위험에 부딪히는 것은 시민이기에 시민 의견을 존중하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귀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등이 있었다.

결과를 요약하면 2010년대 보수정당의 정치 지형은 보수성향(이념)·5060세대(세대)·정부 중심(시대좌표)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었고, 진보 정당의 정치 지형은 진보성향·2030세대·시민 중심에 놓였다. 하지만 2020년 이 같은 결과는 뒤집혔다. 보수당 정치 지형은 보수성향·2030세대·시민 중심, 진보당은 진보성향·5060세대·정부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_ “2010년만 해도 젊은층은 진보, 노년층은 보수였다. 진보적일수록 시민 중심, 보수적일수록 정부 중심의 성향을 보였다. 이는 통념적이고 정형화된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관성이 옅어졌다. 이념과 세대, 이념과 시대좌표 간 관계가 뒤바뀌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정도의 유사성이 확인됐다. 최근 국내 정치에서 나타난 변화는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천_ “하지만 이런 분석이 진보 시민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해져 나타난 것인지 혹은 단순히 정권 교체에 따른 현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쉽게 말해 국내의 경우 과거 야당(민주당)을 지지하던 시민들이 2017년 정권 교체로 여당을 지지하게 되면서 시민 중심에서 정부 중심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공감한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요인을 고려하면 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단순히 정권 교체에 따른 현상은 아니라는 거다. 전 세계적으로 진보성향의 사람일수록 코로나19 대응 수단으로 정부 또는 국가 권력을 택하는 경향이 컸다. 현 정부만 해도 일부 협치가 있었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따라오는 식의 일방향적인 행정을 펼쳤다. 이념, 세대, 시대좌표의 연관성이 뒤바뀐 배경이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하 이)_ “보수 진영에선 정부의 역할을 민간이 하지 않는 영역으로 국한해 최소화하고, 세금은 줄이며 공공주택 공급 등 꼭 필요한 것만 이어가는 데 둘 것을 강조해왔다. 보수당이 원래부터 정부 중심이었다는 분석엔 수긍하기 어렵다. 오히려 진보당이 정부중심적이었고 이것이 최근 정치권에 반영됐다고 본다.”

“2030, 정치세대로 거듭날 요인 존재”

홍영림 조선일보 기자(이하 홍)_ “이런 변화 속에서 나타난 2030세대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진보진영, 즉 민주당의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캐스팅보터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평이 많다. 앞서의 분석에서 2030세대·보수성향이 함께 묶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의 관건은 국민의힘이 2030세대와의 균열 가능성을 막고 선순환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느냐다.

2030세대가 확실히 유의미한 유권자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맞다. 5세 단위로 끊어서 보면 18~34세 집단은 확실히 야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35~54세는 여전히 여당 지지 성향을 띤다. 55세 이상은 또 야당을 지지한다. 여기서 18~34세 집단은 전체 유권자의 25%를 차지한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다.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_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586세대와 같이 정치적 세대로 등장할 것인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같다.”

홍_ “그렇다. 특히 지금의 30대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2030세대가 앞으로의 선거에서 가질 정책적 지향점은 계속해서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천_ “지금 2030세대의 정치적 특성을 두고 원래 해당 나이가 되면 그러는 건지, 아니면 지금의 이 세대가 정말 특이한 건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20대 남자만 해도 이것이 과연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사회 안팎에서 나타나는 20대 남자의 목소리는 서울권 대학에 진학해 평균이라 수식되는 연봉 등을 벌며 생애주기에서 우위에 있는 이들로 대변되는 측면도 있다. 정확한 세대 분석을 위해선 시계열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국내엔 그런 시도가 없다. 취약계층을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가 증폭돼야 할 공간인 정당은 이들 세대에 대해 속시원한 분석이나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_ “다만 공통된 경험을 두고 세대를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선 2030세대가 어느 정도 코호트(Cohort·동일집단) 효과를 낼 여지도 있다. 월드컵 세대, IMF세대처럼 말이다. 지금의 부동산과 일자리 등에서 공통된 경험을 겪었고, 세금 피해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지난 재보궐선거만 보면 야당 지형에서 2030세대와 6070세대의 연대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평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날 토론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온·오프라인상에서 동시에 진행했다. (왼쪽부터) 한상진 교수, 사회를 맡은 심영희 한양대 교수,  천관율 에디터, 홍영림 기자가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이혜훈·신경민 전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중민재단
이날 토론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온·오프라인상에서 동시에 진행했다. (왼쪽부터) 한상진 교수, 사회를 맡은 심영희 한양대 교수, 천관율 에디터, 홍영림 기자가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이혜훈·신경민 전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중민재단

“민주당, 패배 분석 때마다 패권집단 반발”

신_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2030세대를 비롯해 다수 유권자들로부터 왜 민심을 잃었을까. 국민의힘 혹은 오세훈 당시 후보가 좋아서 민주당에 등을 돌린 건 아니라 본다. 일단 민주당이 싫었던 거다. 몽둥이, 회초리로 쳐서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맞아야 한다는 여론이 작용했다. 조국사태와 관련한 검찰의 표적수사도 문제지만, 조국사태 자체가 대중들에게 실망스러운 지점으로 다가간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 중 하나였던 NGO(비영리단체)의 실체는 윤미향 의원을 통해 드러났다. 민주당은 두 사태를 제대로 핸들링하지도 못했다. 젊은층은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당은 앞으로 민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말뿐이다. 원인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천_ “민주당이 선거 패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신 전 의원 말처럼 구조적이며 심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부동산 정책이 좀 잘못돼서 졌다’ 정도의 평으로 그치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나 큰 패배인지에 대한 동의 수준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당장 찾기 어렵다면 적어도 어떤 패배였는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한_ “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한 후 내가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역임할 당시에도 비슷하게 보였다. 문제와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과정에서 당내 패권집단의 반발이 상상보다 컸다. 곤혹스러우면서도 유용한 경험이었다.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좀 더 날카롭고 구조적인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_ “사실 경제 정책만 두고 보면 전문성 있는 분석과 논의가 부재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정책집행자들은 편견, 자기 확신만 가득했다. 절차나 결과가 잘못됐을 때마다 정책의 동기가 선했고 착했다는 논리만을 앞세웠다. 모든 정책 평가를 선한 의도로 무마한 거다. 정책은 항상 실험으로 그쳤고 그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천_ “촛불 정부의 속성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과오도 한몫한다. 여든 야든 현 정부가 촛불 정부라는 데엔 모두 공감할 거다. 근데 촛불 정부는 ‘혁명정부’와 ‘연합정부’라는 두 가지 속성을 띤다. 여기서 혁명정부는 촛불 혁명을 완수한다는 측면에서, 연합정부는 다원주의 국가에서 국민 80%의 강력한 동의 기반으로 형성됐다는 측면에서 현 정부의 속성을 일컫는 사전상의 단어이자 개념이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혁명정부에만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적폐청산이란 슬로건이 메인이 됐고 민심은 이탈했다.”

이_ “내년 대선의 관건 중 하나는 이념 과잉 등 기존의 흐름을 거부하는 민심을 얼마만큼 잘 읽어내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일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의힘은 일부의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그에 따른 자신의 책임이나 역할엔 별다른 영향이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도 버림받는 정당이 될 수 있다.”

“보수·2030의 결합은 새 난제이자 가능성”

한_ “결과적으로 최근 정당정치에서 나타난 이념과 세대 간 변화, 즉 양당의 지지층 변화는 전례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불확실한 난제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기도 하다. 보수당으로서의 오래된 체질을 감안했을 때 국민의힘 입장에선 2030세대와의 조합이 불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대를 열 가능성도 크다.

여당은 보다 더 안정을 찾았다. 정부중심적이며 진보성향의 5060세대 조합은 선순환 가능성을 높인다. 하지만 꼰대 정당, 기득권 비판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정권 교체’는 결국 현 정권을 향한 네거티브적 프레임이다. 여기서 여당이 적폐청산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간 상당히 파국적 결과를 맞닥뜨릴 수 있다. 오늘의 집권당이 내일의 적폐청산 대상이 될 개연성도 크다.”

홍_ “이준석 돌풍으로 일컬어지는 세대교체는 2030세대의 큰 지지도 있었지만 고연령층에서도 적지 않은 지원이 있었던 덕에 일어났다. 당대표 경선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결과다. 통상적으로 세대교체는 공천이나 당 물갈이를 통해 이뤄져왔다. 이번은 ‘여론에 의한 세대교체’다. 짧은 시간 안에 저렇게 큰 당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을 두고 상당히 독특한 결과라고 평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_ “결국 다음 대선은 여론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담아내느냐가 승리의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당정치의 생명력은 여기서 좌우될 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활용이 늘면서 정당과 당원, 국민 간 직접 소통이 강화된 데 따른 여파이기도 하다.”

한_ “디지털 플랫폼 정당 개발로 시민사회의 역량을 정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체질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상명하복 구조의 관료화된 여야 정당엔 더욱 그렇다. 정당 혼자서가 아니라 시민들 참여로 사회적 성과를 도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이준석 대표도 향후 그런 작업을 하겠다 하니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천_ “다만 이런 시민 참여는 보통 정파성이 강한 시민들을 주축으로 이뤄진다. 정파성이 강한 시민들이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양당의 이념을 오히려 극단화할 수도 있다. 플랫폼 정당을 꾀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결합하는 적정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양당이 발전할 수 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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