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1일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상실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왼쪽)와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은 하병필 행정부지사. ⓒphoto 경상남도
지난 7월 21일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상실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왼쪽)와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은 하병필 행정부지사. ⓒphoto 경상남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21일,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한 ‘드루킹 댓글조작’에 깊이 관여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던 2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김경수 전 지사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당선된 이래 약 3년여 만에 도지사직을 상실했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내년 3월 대선은 물론, 6월 지방선거 출마도 불가능해졌다.

김경수 전 지사는 대법원의 형 확정 직후 경남도청을 떠나면서 “저의 결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최종적인 판단은 이제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드려야 될 것 같다”며 “그동안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 특히 지난 3년 동안 도정을 적극 도와주신 경남도민들께 진심으로 송구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남지사직은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채 1년이 남지 않은 관계로, 도정 이인자인 하병필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는 비상체제로 자동 전환됐다. 당초 내년 6월까지 예정된 김경수 전 지사 임기 중 도지사 권한대행 체제로 접어든 것은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경남도는 김 전 지사가 지난 2019년 1월 법정구속됐을 때, 박성호 당시 행정부지사(현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가 약 77일간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은 바 있다.

민선 도지사 5명, 권한대행은 7명

사실 340만 경남도민들은 또다시 맞게 된 기형적인 도지사 권한대행 체제를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민선 경남지사를 선출한 이래 권한대행 체제를 맞이한 적은 벌써 한두 번이 아니라서다. 역대 민선 경남지사들은 4년 임기를 제대로 채운 적이 오히려 드물었다.

초대 민선 경남지사로 3연임했던 김혁규 전 지사는 열린우리당 입당과 함께 도지사직을 중도사퇴하며 장인태 권한대행 체제로 바뀌었다. 장인태 권한대행 체제는 2004년 권한대행이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김채용 권한대행 체제로 교체됐다.

김두관 전 지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에는 김 전 지사가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하면서 임채호 당시 행정부지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김두관 전 지사의 후임인 홍준표 전 지사(현 국민의힘 의원) 역시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하면서 류순현 당시 행정부지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류순현 권한대행 체제 와중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도지사 권한대행마저 한경호 권한대행으로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민선 경남지사 선출 이후 경남지사직을 권한대행 없이 마친 사례는 김태호 전 지사(현 국민의힘 의원)가 유일했다.

이로 인해 1995년 민선 도지사 선출 이후 배출된 역대 경남지사는 모두 5명(김혁규·김태호·김두관·홍준표·김경수)에 불과한데, 권한대행은 벌써 7명(장인태·김채용·임채호·류순현·한경호·박성호·하병필)에 달한다. 도지사 궐위(闕位) 시 권한대행을 맡는 도정 이인자인 행정부지사는 주로 행안부에서 지방정부와 협력을 위해 파견하는 행안부 출신 고위공무원들이 도맡아왔다. 이번에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은 하병필 행정부지사 역시 행안부 대변인 출신이다. 민선 도지사보다 행안부에서 파견한 관선 권한대행이 더 자주 자리를 맡다 보니 경남도에서는 “관선 지사 시절이나 민선 지사 시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나온다.

다른 광역지자체와 달리 경남도에서 더 빈번하게 기형적인 권한대행 체제가 출현하는 것은 역대 도지사들이 ‘도정’보다는 ‘용(龍)꿈’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경수 전 지사의 전임자인 홍준표 전 지사와 전전임자인 김두관 전 지사가 도지사직에서 중도 사퇴했던 까닭도 대선 출마를 위해서였다. 이 중 김두관 전 지사는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홍준표 전 지사 역시 2017년 대선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본선까지 나섰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역대 경남지사들은 당선 가능성과 별개로 또다시 ‘잠룡(潛龍)’으로 거명되고 있다. 김두관 전 지사는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 중이고, 홍준표 전 지사도 내년 3월 대선에서 2017년 대선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다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여기에 지사직을 권한대행 없이 마무리했던 김태호 전 지사도 지난 7월 15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였던 김경수 전 지사 역시 ‘친문(親文) 적자’로 차기 대선 참여가 거론됐으나 이번에 징역 2년형 확정과 함께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면서 물거품이 됐다.

경남도 핵심사업도 영향 불가피

김경수 전 지사의 낙마와 함께 또다시 권한대행 체제로 재편되면서 경남도의 핵심 사업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전 지사 체제에서 추진했던 경남도의 주요 사업은 ‘동남권 메가시티’ ‘남부내륙철도’ ‘제2신항(진해신항)’ 등이다. 김경수 전 지사는 형 확정 하루 전인 지난 7월 20일에도 “메가시티 추진은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경쟁력 때문에라도 꼭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작 ‘동남권 메가시티’의 핵심 `사업인 부전(부산)~마산(창원) 민자(民資) 복선전철은 지난해 3월 공사 중 하저터널(낙동 1터널) 붕괴사고로, 완공시점이 당초 지난해 6월에서 오는 2022년 12월경으로 2년 이상 늦춰져 버린 상태다. 경남도 측에서 요구해온 부전~마산 구간 전동열차 도입 역시 국토부가 국비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경수 KTX’라고 불린 남부내륙철도는 2019년 1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선정 직후 아직까지 기본계획 수립조차 못 하고 있다. ‘임기 내 착공’이란 김경수 전 지사의 ‘공언’은 지난 7월 21일 지사직 상실과 함께 이미 ‘공수표’로 바뀌어 버렸다.

‘제2신항(진해신항)’ 역시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하는 등 핵심 사업에 줄줄이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특히 총사업비가 7조7000억원에 달하는 ‘제2신항’은 지난 5월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비타당성 재조사에 착수한 상태인데, 문재인 정부 핵심실세인 김 전 지사의 공백으로 인한 악영향마저 염려된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성혁 해수부 장관도 당초 교체 발표를 했다가 인사청문회에서 후임자를 찾지 못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시한부 장관”이라며 “김경수 지사마저 낙마하면서 제2신항이 이번에도 예타 관문을 넘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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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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