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8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 최종 선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8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 최종 선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년간 보수 또는 진보 정파 사이에서 독자노선을 걸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또다시 ‘제3지대’를 택했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여야(與野) 대결이 치열해지던 20대 대선은 당분간 3자구도로 재편이 유력해졌다.

안 대표의 독자행보 명분은 중도층 표심 공략이었다. 그는 국민의힘과 합당 결렬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제1야당만으로는 정권 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합리적인 중도층을 대변하고자 한다”고 했다. 최근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는 대선 정국에서 중도층 대변자는 실종 상태다. 선두 다툼이 치열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여권 또는 야권에서 중도층 파이를 넓혀줄 것이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도층 중 28.3%는 부동층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야 어느 쪽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제3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 규모는 최소한 전체의 4명 중 1명가량이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조사(4월 19~21일)에서 내년 대선 방향을 묻는 질문에 ‘제1야당으로 정권 교체’ 37%, ‘여당의 정권 유지’ 31%, ‘제3세력으로 정권 교체’ 23% 등이었다. 한편 여야 정당을 믿지 못하는 유권자는 40%에 육박한다. KBS·한국리서치 조사(8월 12~14일)에선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에 잘 대처할 정당’으로 국민의힘(25.9%)과 민주당(22.8%)이 1·2위였지만 ‘그런 정당이 없다’ 또는 ‘모르겠다’가 39.3%였다.

중도층이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SBS·넥스트리서치 조사(8월 13~14일)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의 가상 양자대결은 36.9% 대 35.4%로 초접전이었다. 유권자 이념성향별로 진보층은 이 후보, 보수층은 윤 후보에 쏠린 가운데 중도층에선 이 후보와 윤 후보가 34.2% 대 33.6%로 팽팽했다. 더구나 중도층에선 어느 후보도 택하지 않은 부동층이 28.3%에 달했다. 중도층은 사실상 ‘무주공산’에 가깝다는 조사 결과다.

윤석열 후보와 최재형 후보의 입당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민주당에 못 미치는 것도 ‘안철수 변수’의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지율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월등히 높다면 안 대표의 독자행보는 관심을 끌지 못하겠지만 현재 야당으로선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다. SBS·넥스트리서치 조사에서도 안 대표를 제외한 국민의힘 대권후보들의 지지율 합은 35.5%로 민주당 후보의 합인 39.4%에 4%포인트가량 뒤졌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3당은 독자적 생존이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지만 양당이 박빙의 대결을 펼치기 때문에 선거 시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정치현실”이라고 했다. 안 대표의 존재를 경계하며 대선 막판까지 불확실성을 떠안게 된 국민의힘도 “2~3%포인트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내년 대선에서 제3지대의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안 대표가 김동연 전 부총리와 세력화에 나서며 제3지대 파이가 커진다면 국민의힘으로선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일축한 김 전 부총리는 “지금의 정치구도와 투쟁을 앞세운 양당구조로는 경제사회 구조를 해결할 수 없다. 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안 대표도 “국가 미래를 생각하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만나 의논할 자세가 돼 있다”며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놨다.

하지만 안 대표와 국민의당 지지율이 현재 4~5위에 그치며 입지가 좁아진 것은 그의 독자행보에 부담 요인이다. 올해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 2월 리얼미터 조사에서 7%, 알앤써치 조사에서 6.4%를 기록하며 상승 기류를 탔지만 최근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최근 안 대표 지지율은 KSOI 2.4%, 리얼미터 2.3%, 한국갤럽 1%에 불과했다. KSOI의 범보수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7월 초 6.6%에서 8월 둘째 주엔 5.1%로 하락하며 5위에 그쳤다. 국민의당 지지율도 한국갤럽의 8월 둘째 주 조사에서 4%로 열린우리당과 공동 4위에 머물렀다.

安 지지율 저조 시 중도층 마음 접을 것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안 대표가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선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야권에서 선두 경쟁을 벌여야 한다”며 “조만간 파급력 있는 지지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중도층도 기대를 접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중도층 또는 무당파에서도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가 과반수에 달하고 있고 이들은 야권이 분열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가 강하게 충돌하는 대선에서 제3지대가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KBS·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바람직한 내년 대선 결과를 묻는 질문에 중도층은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57.0%)가 ‘여당의 정권 재창출’(38.2%)보다 훨씬 높았다.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도 ‘정권 교체’(61.4%)가 ‘정권 재창출’(23.7%)을 압도했다. 안 대표의 지지율이 앞으로도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면 그가 기대를 걸고 있는 중도층과 무당파에서도 존재감이 잊힐 수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안철수 변수’를 평가절하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안 대표에 대해 “(합당 결렬 선언이) 예견된 일이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다”며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결국에는 단일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또 국민의힘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김 전 위원장의 전망처럼 정치권에선 제3지대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합당 결렬 발표 직후 논평에서 “정권 교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앞으로의 행보에는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내년 대선이 3자대결이 아니라 안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요즘처럼 여권과 야권 각자 내부에서 격화되고 있는 갈등이 지속된다면 이에 실망한 중도층의 제3지대를 향한 관심이 높아질 수도 있다”며 “여야 접전이 이어질 경우에도 ‘안철수의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다만 안 대표가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독자행보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각 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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