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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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10여년간 기자로 일하며 언론사 노조위원장, 한국기자협회 국제교류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런 그가 국회에 입성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부터 반대했던 건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21대 국회에서 여권이 발의한 관련 개정안만 총 16개인데, 대부분 절차와 내용 면에서 적법하지 못했다고 봤다. 지난 8월 25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동안의 개정안들을 취합한 결과물이다. 최종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한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정정보도 요건 강화,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 등을 담았다. 지난 8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최 의원은 “언론을 개혁하기보다 죄악시하는 데 무게를 둔 개정안”이라며 “정권 유지를 위해 검찰 수사를 박탈한 데 이은 언론 기능 무력화 조치”라고 일갈했다.

“검찰 수사권 박탈 이은 정권 비호 조치”

최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헌적 요소부터 짚어야 한다고 말한다. 법리의 기본원칙인 비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배상이라는 것은 피해자의 정신·물질·경제적 고통에 ‘비례’하여 이뤄져야 한다. 법원에선 보통 이와 관련한 쟁점을 모아 판단한다. 근데 해당 개정안은 우선 손해액의 5배를 물릴 수 있도록 하며 손해와는 무관한 언론사의 사회적 영향력과 매출액을 고려토록 하고 있다. 원고 피해에 상응하는 징벌 그 이상의 형이 속출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또 “손해배상 청구 근거가 되는 고의·중과실 여부는 허위·조작 여부 등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보니 원고가 무리한 내용으로 소송을 걸 여지가 크다”며 “재판부에서 사안에 따라 따져 물을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언론계에선 명예훼손죄 등으로 이미 언론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복규제부터 해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언론의 권력 비판, 감시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보도가 이뤄져도 책임 해소 차원에서 취재원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해질 거다. 내부 제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허위·조작 보도의 진원지로 거론되는 1인 미디어나 유튜브를 적용대상으로 두고 재논의했어야 할 내용이다.”

민주당은 개정안 논의 당시 ‘왜곡 보도에 따른 개인의 피해 구제 실효성 확대’를 입법 근거 중 하나로 거론했는데, 최 의원은 이것이 적확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일반인들은 소송이 아니라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중재를 다수 활용한다”며 “맥락을 잘못 짚었다”라고 분석했다. 그가 제시한 ‘2019년 언론관련 판결 분석보고서’(언론중재위원회 발간)에 따르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일반인의 소송 청구 비율은 31.4%에 불과했다. 나머지 68.6%는 고위공직자와 공적 인물, 단체에서 청구한 소송이었다.

민주당이 제시한 언론사 손해배상 인용액이 여전히 낮다는 점도 잘못된 분석이라는 것이 최 의원의 지적이다. 앞서 보고서엔 ‘2019년 기준 손해배상 인용액 중앙값이 3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승한 사실’ ‘2019년 평균 인용액이 전년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4억원이 넘는 고액의 손해배상 인용 사례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용액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는 분석’ 등이 담겼다. 최 의원은 “언론사가 수만여 개로 늘면서 중복 보도가 늘었고 이로 인해 소송의 대상과 피해 책임이 분산된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야당의 반발에 상임위 전체회의 의결을 앞두고 ‘고위공직자와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개정안에 반영하기도 했다. 최 의원은 이 역시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역대 대통령만 해도 비위는 대통령 본인이 아니라 친인척 등에서 불거졌다. 지금 당장 장관직을 유지하더라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일반인이 된다. 조국 전 장관 등이 그 일례다. 이들의 청구권 남용을 막을 방안이 반영됐어야 한다. 공직자들이 지지단체나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도 크다.”

최 의원은 또 “이렇게 언론을 상대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 조항으로 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며 “해외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 해도 판례를 통해 적용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 입김에서 벗어나길”

최 의원은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민주당 속내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수사 등을 비롯해 권력 비위 논란이 있을 때마다 여권은 법적 시시비비에 집중하기보다 검찰의 표적수사, 언론의 잘못된 보도관행을 우선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 프레임은 이번 개정안 논의에 그대로 반영됐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 이후 정권 비위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한 조치라 볼 수밖에 없다. 정권 비호를 위한 입법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 완전 박탈)’과 ‘언자완박(언론 자유 완전 박탈)’이 상생한다고 본다.”

최 의원은 지난해 6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음 발의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안을 논의했을 당시만 해도 민주당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정 의원은 개정안에 청구 가능 손해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5배가 아닌 3배로 낮춰 규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3배를 적용하는 것에도 신중한 모습을 내비쳤다고 한다. 최 의원은 “올 2월 논의 당시 도입 찬성 목소리를 높인 건 이스타항공 비리로 논란을 산 이상직 의원뿐이었다”며 “6개월 만에 급작스레 당의 스탠스가 뒤바뀐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참여정부 당시 언론개혁 일환으로 추진됐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취지와 내용 자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최 의원의 평가다. “당시의 방안은 기자실 폐쇄를 골자로 하여 권언유착 관계 개선, 언론 기득권·특혜 폐지에 방점을 찍었지만 지금의 개정안은 언론의 궁극적 역할을 저해하고 봉쇄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더 악하고 위험한 내용이다.”

최 의원은 언론개혁이 다음과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팩트체크, 크로스체킹 강화 등으로 검증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 구축, 개별 언론사의 노력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입법 절차의 적법성을 문제 삼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이 국회법을 어기고 법안심사소위 표결 당시 축조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 여야 이견 조정을 위해 마련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여야 3 대 3 동수로 구성하지 않은 점, 안건조정위 활동 기간 90일을 보장하지 않은 점 등이 심판 청구의 근거다. 최 의원은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속해서 따지며 추가 개정안 등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민주당이 열성 지지자들 입김으로 정치를 획책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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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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