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8월 30일 주간조선 단독 보도로 공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낙하산 인사 명단’을 살펴보면, 이 지사가 꽤 오랜 기간 경기도 곳곳에 입성시킨 여권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 명단에 거론된 인사 대다수는 이 지사 선거 캠프 출신이거나 성남시장 역임 당시 성남시 산하기관 출신 인사들이다.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정치권 인사와 보좌진도 적지 않다. 이 지사와 도청 측은 모두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공정하게 채용했다는 입장이지만 도청 산하 공공기관 노조 측은 “자리를 주고 그 대가로 정치적 관계를 쌓아간 것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도 산하 공공기관은 총 28개, 이 중 노조가 있는 곳은 15곳이다. 노조는 이 지사 부임 후 산하기관 인사에 불공정함을 느끼고 최근 6개월 동안 직원들 제보와 성남시 산하 공공기관 노조 등의 협조를 얻어 낙하산 인사 관련 내용을 정리·취합했다. 노조 한 관계자는 “사실 이런 내용을 정리하는 것 자체도 어려움이 컸다”며 “논란이 커지면 향후 도청이 각 기관들 사업을 없애거나 지원에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간조선 보도로 명단의 존재가 알려지자 도청과 도청 산하기관에선 개선 조치보다 각 노조를 상대로 명단 작성 관여자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사표 낸 임기제 70명… ‘점령군단’이라 불려

현재 이 명단엔 총 92명의 이름이 거론돼 있다. 중복된 이름 한 건과 이 지사와의 연관성을 찾기 모호한 인사를 제외하면 약 86명이 낙하산 인사로 채용됐다는 것이 노조의 분석이다. 이들은 출신·경력 면에서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선거(2017년 대선 및 2018년 지방선거) 캠프, 성남시 및 성남시 산하기관, 국회 및 시·도의회 등이다. 인원으로 따지면 86명 중 성남시 출신으로 확인되는 인원은 28명, 캠프 출신 22명, 국회 및 시·도의회 등 정치권 출신 16명이다.

여기엔 정치권 안팎에서 이재명계 혹은 이 지사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 이름도 적지 않다. 강위원 전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 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임진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원장, 제윤경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전 민주당 의원), 정진상 열린캠프 부실장(전 경기도 정책실장) 등이 일례다. 금품수수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상임이사로 채용된 경찰 간부 출신 인사 이름도 담겼다.

이 밖에 언론인 출신, ‘이재명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에서 활동했던 인사도 포함돼 있다. 이재명지키기 범대위의 경우 지난 2019년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던 당시 출범한 단체다.

명단 속 인사들은 경기도청과 도 산하 공공기관인 경기도일자리재단,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주택도시공사 등에 채용됐다. 대다수는 대표, 사장, 부사장, 원장, 본부장, 이사 등 임원 직급으로 발령났다. 이들 중 해당 기관이 영위하는 사업 관련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손에 꼽힌다.

노조 한 관계자는 “이 지사 인맥은 크게 자칭 ‘진골’이라 일컫는 성남 출신 인사들과 정진상 부실장을 비롯한 캠프 인사, 정치에 처음 발 들이며 함께했던 정치권 인물 등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 인사들이 대거 경기도로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 6~7월 이 지사 대선 출마 선언 전후로 도청 임기제 공무원 70여명이 일제히 퇴사했는데 그중 54명은 7월 동시 사표를 제출했다”며 “이들까지 고려하면 낙하산 인사는 90명보다 더 많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들은 도청 직원들 사이에서 ‘점령군단’으로 불렸다고 한다. 해당 명단엔 ‘점령군’이란 키워드도 메모돼 있다. 도의회의 한 야당 의원은 지난 7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 지사가 선거에 공무원들을 동원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명확하게 확인할 방도는 없어 주의만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 인사들 자리에 앉혀 정치세력 확보?

눈여겨볼 점은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다. 명단엔 이화영 킨텍스 대표나 이우종 경기아트센터 사장 등도 포함됐는데 이들은 모두 ‘이해찬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관련 인사들을 자리에 추천하면서 외연을 확장한 건 아닌지 합리적 의구심도 든다”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이 지사가 이해찬 전 대표와 손을 잡기 위해 이 전 대표와 관계된 사람을 채용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심을 하는 데엔 이들 경력이 각 기관 사업과 연관성이 전혀 없어서다.

명단에 거론되는 김석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본부장(전 임종성 민주당 의원 보좌진), 안태준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전 문학진 민주당 의원 보좌진), 조은주 경기도일자리재단 본부장(문정복 민주당 의원 선거 지원), 이홍우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원장(전 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 박무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전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유철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전 노무현재단 감사),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전 문재인 대선 캠프 홍보팀) 등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보좌진 출신 인사들이 국회에서 수행한 의원들은 현재 모두 이재명계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 경력과 각 기관 업무 연관성은 모두 떨어졌다.

노조 측은 이들 인사가 최근 논란이 됐던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경기관광공사 내정 방식과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노조 관계자는 “낙하산이 낙하산 자리를 채우기도 하고 서로 밀어내기도 한다”라며 “관광공사의 경우 사장을 제대로 뽑으려 했다면 황교익 자진사퇴 이후 최종 면접에 올랐던 나머지 3명의 사장 후보 중 한 명을 다시 뽑거나 재공고를 해야 하는데, 공사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은 9개월 넘게 공석인 상황이다. 정상대로라면 올 상반기엔 사장 인사가 마무리됐어야 한다. 현재 공사 측은 “우리 마음대로 재공모를 할 순 없다”라며 “아직 결정된 건 없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의 낙하산 인사 의심 내용이 담긴 문서 일부. 내용은 이름, 소속기관, 직위, 경력, 비고, 구분으로 정리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재명 지사의 낙하산 인사 의심 내용이 담긴 문서 일부. 내용은 이름, 소속기관, 직위, 경력, 비고, 구분으로 정리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인사 신뢰만 떨어뜨린 ‘열린채용’

노조 측은 이 같은 인사가 2018년 9월 이른바 ‘열린채용’이 시행되면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열린채용은 학위와 경력 등 과도한 제한을 풀어 실적·능력을 갖춘 민간전문가 채용 확대를 위해 도청 차원에서 실시한 인사정책이었다. 민간인 근무 기회 확대, ‘관피아’ 척결을 목표했지만 현장에선 잘 관철되지 않았다는 분위기다. 경기관광공사 사장 공모 당시엔 자격요건에서 ‘관련 기관 근속연수 기준’을 없앤 것이 논란의 단초만 됐다.

도의회의 한 의원은 지난 4월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열린채용 시행 후 경기도 곳곳에 이 지사 관계 인사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는 의구심만 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조 측은 열린채용이 시행된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열린채용은 2018년 경기도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공공기관 채용기준 완화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 지사와 조성환 도의회 민주당 의원은 2018년 8월 본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조성환 의원(이하 조) 임기제공무원 채용과 관련 전임 도지사와 다른 점이 있다고 하시면 무엇이라고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재명 지사(이하 이) (중략) 전문성이나 또 열정이나 또 노하우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전문성, 능력, 열정 이런 걸 기준으로 채용을 하려 합니다.

현재 채용 자격조건을 보면 전문성 확보라는 이유로 공무원 경력이나 학력 조건, 특히 석·박사 이상의 학력 등 지나치게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중략)

의원님의 지적에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중략) 민간전문가들이 각 영역에서 실력을 갖추고 일해 왔으면 그분들한테도 좀 넓게 문호를 열어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진입장벽을 낮추거나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쪽으로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의회에서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의회의 황수영 민주당 의원도 이후 본회의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노조는 조성환 의원과 황수영 의원 모두 이재명계라는 점에 주목한다. 조 의원은 이 지사 전국지지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이 지사 역점정책인 기본소득 정책을 지원하는 모임인 ‘시민참여광장’에 참여하고 있다. 황수영 의원의 경우 현재 이재명 대선 캠프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김영진 민주당 의원(수원시병)의 공천을 받아 2018년 수원시 제6선거구 도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황 의원은 김 의원 후원회 사무국장을 도맡기도 했다.

노조 한 관계자는 “도청은 도의회의 건의로 열린채용을 시행한 거라 하지만 실질적으론 이 지사의 의지도 있었고 도청과 도의회가 함께 만들어간 제도”라고 평했다. 현재 열린채용은 직원들 사이에서 이른바 ‘낙하산 투하를 위한 활주로’로 일컬어지고도 있다.

명단 내용이 알려진 후 국회와 도의회에선 이 지사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노조 측은 적법한 인사였다 해도 이 지사의 책임을 배제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일부 인사들의 출신·경력이 특정 기관이나 분야에 몰려 있다. 그렇게 들어온 인사는 1년이 넘도록 업무파악도 못 한 채 자리만 지키다 나간다. 기관은 엉망이 되고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절차적·법적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퇴직공무원, 정치권 인사가 대거 들어온 데 대한 결과적 책임이 이 지사에게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내부 논의를 거쳐 향후 리스트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경기도청 “낙하산 근거 없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청 측은 근거 없는 내용이라는 입장이다. 도청 관계자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매년 채용실태 정기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노조에서 낙하산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 산하 공공기관 인사채용은 전적으로 각 기관 소임이며 도청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인사위원회와 외부 전문가 집단 등의 심사를 거쳐 블라인드 방식으로 공정하게 이어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지난 8월 31일 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에 대해 “성남시에서 일하면서 성과를 내고 영향이 있는 분들을 경기도로 모셔다 일을 맡겼더니 ‘보은인사가 수십 명’이라는 희한한 기사를 봤는데 내가 무슨 은혜를 입었는지 모르겠다”며 “경기도정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보도가 상당히 많은데 적극적으로 대응해달라”라고 주문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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