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도시개발공사가 개발 중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일원. ⓒphoto 뉴시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개발 중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일원. ⓒphoto 뉴시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된 성남 대장동 사태의 주범은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다. 경기도 성남시의 공영주차장과 운동장 등을 관리하는 성남시 시설관리공단에 불과했던 성남도개공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2010~2018)으로 있을 때인 2013년 9월 ‘공사화’를 단행해 직접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지사의 최측근으로 지난 10월 3일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등 소위 ‘선수’들이 성남도개공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민간업자들과 짜고 부당이득을 빼돌렸다는 것이 대장동 사태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제2의 대장동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발수요가 집중된 경기도 기초지자체마다 성남도개공을 모델로 한 ‘도시공사’가 우후죽순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들 지방 토지공기업은 광역지자체인 경기도가 거느린 GH(경기주택도시공사)와는 별개의 토지공기업으로, 대개 시군의 시설관리공단을 공사화해 개발권을 부여한 곳들이다.

행정안전부 지방공공기관 통합공시 사이트인 ‘클린아이’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경기도 관내 31개 시군 가운데 자체적인 ‘도시공사’를 거느리고 있는 곳은 모두 21곳에 달했다. ‘도시공사’ 간판을 단 신장개업 지방 토지공기업의 경영성적은 의문스럽다. 21개에 달하는 경기도 관내 지방 토지공기업의 경우, 지난해 의왕도시공사 등 모두 9곳이 기관당 최대 42억원에서 1억여원까지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토지공기업 중 부채비율이 공공기관의 안정적 부채비율로 평가받는 150%를 넘는 곳도 용인도시공사(187.3%)와 평택도시공사(171.4%) 등 2곳이나 됐다. 특히 양평군이 개발 목적으로 설립한 양평공사는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18억여원, 부채비율만 2475.6%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표 참조〉 부실이 누적된 양평공사는 현재 양평군 시설관리공단으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사업을 통한 대박을 노리고 기초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설립된 지방 토지공기업들의 수용권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7 보궐선거 직전 ‘3기 신도시’인 광명시흥신도시(예정지)에서 터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터진 대장동 사태의 맥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수용권’이기 때문이다. 소위 ‘토지공기업’이라고 불리는 LH와 성남도개공 등이 공기업에 부여된 수용권을 무기로 사유재산인 토지를 시세보다 헐값에 취득해 개발정보 등을 미리 입수한 내부자들과 민간업자들의 배만 불린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용권은 LH 등 토지공기업이 추진하는 소위 ‘공영(公營)개발’을 위해 국가나 지자체, 토지공기업이 사유재산인 토지를 토지소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확보하는 제도를 뜻한다. 일반적인 토지매수와 토지수용의 가장 큰 차이점도 강제성이다. 즉 토지소유자는 땅을 팔려는 의사가 없어도 매각협의에 응해야만 하고, 비록 토지공기업이 부른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토지를 내놔야 한다. 자연히 토지공기업들은 정부가 부여한 무소불위 수용권을 무기로 전국의 토지를 헐값에 취득하고 사세(社勢)를 불릴 수 있었다.

과거 LH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토공)’와 ‘대한주택공사(주공)’ 같은 국가공기업만 제한적으로 행사했던 수용권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까지 너도나도 행사하고 있다. 1989년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개발’에 맞춰 ‘서울시도시개발공사’(SH의 전신)가 출범한 이래, 모든 광역시도는 1개 이상의 지방 토지공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 토지공기업 설립 붐은 기초지자체로까지 확대돼 시군 단위에도 개발사업을 하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시설관리’에 머물던 업무영역을 돈이 되는 ‘부동산 개발’로 확대하면서 ‘공단’에서 ‘공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 신장개업하는 것도 유행이다. 성남시 시설관리공단이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인 2013년 ‘성남도시개발공사’로 개편됐고, 성남도개공을 모델로 안양, 시흥, 군포, 과천, 포천 등 경기도 관내 5개 시의 시설관리공단이 2018년 이재명 지사 취임 이후 공사로 전환했다. 이 중 포천도시공사는 성남도개공에서 ‘유원(유동규)’에 이어 ‘유투’로 불린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임명된 직후 공사화했다. 안성시 시설관리공단도 ‘안성도시공사’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개발사업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들 도시공사가 수용권을 무기로 직접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관내 공영주차장과 공원 정도 관리하던 지방공기업들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개발사업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전남 여수시의 경우, 지난 2017년 여수도시공사가 여수도시관리공단으로 다시 이름을 바꿔 달기도 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엑스포)를 앞두고 여수시가 2008년 여수도시공사를 설립해 직접 개발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각종 소송에 시달리다 자본금만 잠식하고 다시 ‘공단’으로 환원한 것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토부가 각 지자체에 지역개발사업 인허가권을 위임하면서 이재명 지사도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해 대장동 개발사업을 했는데, 결과는 초대형 권력형 부패게이트로 확인되고 있다”며 “성남에서 해먹은 수법을 잽싸게 벤치마킹해 포천, 오산 등이 따라 했고 안양시는 최근 같은 방식으로 공고를 했다가 대장동 사건이 터지면서 공고를 철회했다는데 이미 모든 지자체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3일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3일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photo 뉴시스

‘수용권’ 노리고 뛰어들어

무소불위 ‘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 토지공기업을 시장·군수와 같은 기초지자체장과 지방유지가 대다수인 지방의회와 결탁한 소위 ‘꾼’들이 차지했을 경우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이 될 위험성도 크다. 대장동 사태를 초래한 성남도개공만 해도 ‘선수’들이 낙하산으로 공사 요직을 차지한 뒤 곳간을 털어먹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설계사무소 운전기사 출신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은 성남 분당신도시의 한 아파트(한솔마을 5단지) 리모델링 조합장 경력을 앞세워 성남도개공을 사실상 접수했다. 2018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지사에 당선된 직후 차관급 경기관광공사 사장까지 지낸 유동규는 지난 10월 3일 뇌물수수와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유동규는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로부터 개발이익의 25%(700억원 상당)에 해당하는 뇌물을 받기로 하고, 정민용 전 성남도개공 전략사업실장(변호사)과 자신의 별명(유원)을 딴 유원오가닉(현 유원홀딩스)이란 별도 회사를 차려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유동규는 이와 별개로 성남 위례신도시 조성 때도 민간업자인 위례자산관리 대주주 정재창씨로부터 3억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동규의 측근인 김문기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이 민간인 신분의 정민용 전 실장에게 공사 내부자료를 열람시켜준 사실도 확인됐다. 김문기 1처장은 유동규가 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위 조합장으로 있던 리모델링 시공사(동부건설) 영업부장 출신이고, 정민용 전 실장은 미국으로 도피한 ‘천화동인 4호’(현 NSJ홀딩스)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성남도개공에 심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성남도개공에는 ‘천화동인 5호’ 실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추천한 김민걸 회계사도 경영지원실장으로 있었다. “도둑놈한테 곳간 열쇠를 내준 격”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탕을 겨냥한 ‘선수’들이 노리는 것도 ‘수용권’이다. 토지공기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수용권’을 근거로 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사실상 무한정으로 확보할 수 있다. 성남도개공만 하더라도 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협의가 성립되지 않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신청을 하게 되면 재결금액이 결정되기까지 상당한 시일(5~7개월)이 소요되며 금액인상 또한 불투명하다”며 “협의에 응하여 바로 현금을 지급받아 운용할 수 있는 것과 금액인상이 불투명한 채로 기다리시는 것은 신중을 기하여 선택해야 한다”고 사실상 토지주의 백기투항을 강요했다.

경기도 행정1부지사를 지낸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에 따르면, 성남도개공은 대장동 해당 토지를 대지는 3.3㎡당 500만원, 전답은 220만원, 임야는 50만원 수준에서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세의 3분의1~2분의1 수준이다. 공영개발을 했다면 낮은 분양가로 입주민에게 이익이, 민영개발을 했다면 적정 보상가로 토지주에게 이익이 돌아갔을 항목들이다. 이재명 지사 역시 “제 뜻대로 공영개발 했다면, 반대로 국민의힘 뜻대로 민영개발 했다면 이런 소란도 없었을 것”이라며 “시민 몫을 포기할 수 없어 마귀(魔鬼)의 기술과 돈을 빌리고 마귀와 몫을 나눠야 하는 민관공동개발을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성남도개공 같은 기초지자체 산하 지방 토지공기업은 국토부의 관리감독 아래서도 사고를 친 LH 등에 비해서도 관리감독이 허술할 수밖에 없다. 수용권이 개발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수용권을 부여할 수 있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와 유착할 가능성도 훨씬 크다. 실제로 은수미 성남시장이나 민주당이 다수인 성남시의회는 성남시가 100% 출자한 성남도개공에서 초대형 부동산 게이트가 터졌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토지수용 불만 3321건

수용권 남발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우선 수용권을 앞세운 토지공기업에 토지를 사실상 빼앗기고, 이에 따른 양도소득세까지 납부하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지주들이 적지 않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세에 많이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토지보상금은 여전히 시세보다 낮다”며 “토지보상비 10억원 받아서 양도세 3억원 내면 7억원으로 땅값이 오른 주변에 갈 데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괄 수용으로 토지보상비 명목의 돈이 단기간에 대량으로 풀리며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는 문제도 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부동산이 폭등했던 이유 중 하나도 단기간에 풀린 토지보상금 때문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5년간 풀린 토지보상금은 103조원에 달한다. 신도시와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기존 도심이 공동화되는 문제도 지금까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올라오는 토지수용과 관련한 이의신청 역시 매년 수천 건에 달한다. 중토위에 따르면, 지난해 토지수용과 관련한 재결처리 건수는 3321건에 달했다. 중토위의 토지수용 관련 재결처리 건수는 매년 2000건대에 달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8년부터는 3000건 내외로 올라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 폭등과 함께 남양주왕숙·고양창릉·하남교산 등 ‘3기 신도시’ 조성이 시작되면서 토지수용에 따른 지주들의 불만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3기 신도시인 광명시흥신도시(예정지)에서 촉발된 LH 사태와 대장동 사태 여파가 반영되는 올해는 이의신청이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이유로 구미 선진국에서는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수용권을 최소한도로 억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수용권 허용이 가장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공익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수용이 필요한 구체적 사업이 법률로 규정되지 않을 경우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통해 무효화시킨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도 2005년 ‘켈로(Kelo) 사건’ 이후 단순 지역경제발전과 세수 증대 등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는 수용권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법 개정 등이 이뤄진 바 있다. 켈로 사건은 제약회사 화이자가 사옥용 토지 매입을 위해 수용권을 행사하려다 이슈가 된 사건이다.

이호준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도로나 군부대를 개설하는 순수 공공사업에 있어서도 외국에 비해 수용권을 잘 주는 편”이라며 “대장동 사태처럼 민간이 사업자로 들어가는 사업에 대해서도 외국에 비해 수용권을 잘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규 한국부동산연구원(KRERI) 연구실장은 “협의매수와 수용의 비율도 한국은 7 대 3 정도인 데 반해, 일본만 해도 99 대 1로 협의를 못 하면 사업 자체가 안 된다”며 “토지수용이 자유의사에 반해 사유재산권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격하게 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