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한가운데에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공사는 지금의 사업시행사 ‘성남의뜰’ 주요 주주로, 사업 초기 민간사업자 공모와 성남도시개발공사 컨소시엄 선정 등 개발 전반을 기획·책임진 곳이다. 이미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나 김문기 개발사업1처장, 정민용 변호사(전 전략사업실장) 등은 모두 공사의 사업 실무를 총괄하며 이번 의혹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공사가 사업 진행 과정에서 민간사업자에게 특혜를 줬는지 여부 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남시 안팎에선 공사 설립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지금의 대장동 의혹이 공사에서 출발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시의회 “공사 설립은 위험한 도박”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2010년 취임 후 가장 먼저 추진한 정책 중 하나다. 당시 이 시장은 대장동 도시 개발, 위례신도시 개발, 동원동 산업단지 조성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공사 설립 필요성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2010년 8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2011년 9~11월 공사 설립 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시의회에선 여당인 민주통합당의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제정 추진으로 공사 설립의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공사는 2014년 1월 기존 성남시청 산하에 있는 시설관리공단을 흡수·통합하는 방식으로 출범했지만, 그 직전까지도 공사 설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시의회에선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는데, 6대 시의회 후반기 본회의가 수개월간 파행을 거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 전직 성남시의원은 “공사를 지을 부지도 마땅치 않았거니와 시설관리공단이 있는데 굳이 또 공사를 세우는 일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지 않았다”며 “공단이 공사로 독립할 경우 의회의 관리·감독권을 벗어나는 것도 문제로 거론됐다”라고 말했다.

당시 공사 설립 반대 목소리는 주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나왔다. 이들은 졸속으로 이뤄진 공사 설립 타당성 연구용역, 공사 출범에 따른 시 부채 증가, 시설관리공단과의 역할 중첩, 공사 역할 확대에 따른 각종 부정부패 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와 관련한 의원들의 지적은 2010~2013년 시의회 본회의 회의록에도 적지 않게 기록돼 있다. 2012년 2월 박영일 당시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의견 청취안에 대한 의견 제시의 건’에 이런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다.

‘현재 성남시 도시개발사업단에는 4개 과에 55명의 전문 행정 및 기술 인력이 있습니다. 또한 대장동 토지개발사업보다 규모가 더 큰 판교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판교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므로, 기존 행정조직으로도 개발업무를 추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중략) 100만 성남 시민들의 뜻을 저버리고 성남시 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된다면 성남시민들에게는 향후 시립의료원에 이어 또 다른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것이고, 막대한 성남시 재정 낭비로 인한 세수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현재 8대 성남시의회 의장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창근 시의원은 2011년 11월 181회 본회의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이대엽 정부 시절부터 여와 야를 막론하고 많은 동료 의원들께서 반대해 왔습니다. (중략) 제대로 된 책임자 하나 없는 졸속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해서 도시개발공사를 우선 설립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 나가자 이런 것은 아주 위험한 도박일 뿐입니다.”

이재명 성남시장 취임 당시 6대 성남시의회는 새누리당 의원 19명, 민주통합당 의원 15명 등 총 34명의 의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야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차지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상황이 뒤바뀐 건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최윤길 전 의장’이 나서면서였다. 당시 최 전 의장은 후반기 시의회 의장직을 노렸지만 당내 의장 경선에서 박권종 전 의원에게 밀렸다. 최 전 의장은 여기에 불복했고 의장 선거에 독단적으로 입후보해 박 전 의원을 제치고 의장직에 올랐다. 당시 그가 박권종 전 의원을 이길 수 있던 데엔 여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의 지지가 있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전·현직 의원들은 이를 ‘최 전 의장과 민주당의 야합’이라 표현한다.

최 전 의장은 의장직에 오른 뒤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2013년 2월 192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공사 설립 조례안 가결을 이끌었다. 당시 조례안 가결은 참석 의원 18명 중 17명의 찬성과 1명의 기권으로 성사됐다. 눈여겨볼 점은 찬성 17명 의원 중엔 민주당 의원 15명 외에도 새누리당 소속인 강한구·권락용 의원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두 의원은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후 당에서 제명을 당했지만, 당적을 민주통합당으로 옮기며 의원 활동을 이어갔다.

앞서의 전직 시의원은 “최 전 의장은 어떻게든지 의장을 하고 싶어 했다. 당시 그는 민주통합당 쪽에 붙어 지지를 부탁했고 그 대신 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를 돕겠다는 내용의 협의를 했다”며 “그때 최 전 의장과 함께 민주당으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 강한구·권락용 의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최 전 의장은 다수 의원들로부터 신의를 잃고는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다고도 한다.

2014년 6월 제6대 성남시의회 의원 재직기념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윤길 전 의장(왼쪽)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photo 성남시의회
2014년 6월 제6대 성남시의회 의원 재직기념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윤길 전 의장(왼쪽)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photo 성남시의회

최윤길, 여당과 야합 후 화천대유 입사

눈여겨볼 점은 최 전 의장의 이후 행보다. 최 전 의장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통합당 후신)으로 당적을 옮긴 후 재선에 도전하는 이재명 당시 시장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이 시장 당선 후엔 성남시 체육회 상임부회장직에 올랐는데, 당시 그는 지출증빙 없이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의회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기인 성남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그의 직책은 비상근직인데 비상근이 이렇게 돈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며 “이재명 당시 시장과 그가 보은 관계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전직 시의원은 “최 전 의장을 의장직에 앉힌 데엔 이 지사의 지원도 없진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현재 최 전 의장은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에서 부회장으로 근무 중이다. 최 전 의장은 화천대유와 연봉 1억원에 수억원의 성과급 지급 계약을 맺었다. 검찰은 최 전 의장의 화천대유 근무를 두고 대가성 여부를 살피는 중이다. 최 전 의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성남시 한 관계자는 “최 전 의장은 의장 역임 당시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와도 밥을 여러 번 먹으며 어울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식사 자리에 자주 동석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최 전 의장은 김만배씨와 유동규 전 본부장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도 거론된다.

이런 최 전 의장이 탄생에 일조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결과적으로 향후 민관합작 방식으로 재진행된 대장동 사업부지의 얽히고설킨 토지 소유 관계를 단번에 풀어내며 지금의 개발을 가능케 했다. 대장동 개발부지 토지조서 등을 분석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 대장동 부지의 약 70.58%(전체 필지 904개 중 638개)는 대장동 개발이 당초 민간 주도로 진행될 것을 염두에 두고 지주작업에 나선 시행사 3곳(씨세븐·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나인하우스)에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들 시행사는 대장동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화천대유 자회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 등이 임원으로 있던 업체였다. 이들은 저축은행 11곳에서 1805억원을 빌려 땅을 매입했는데,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원리금을 예정보다 빨리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상환이 어려웠던 이들은 빚을 진 채 근저당권이 설정된 대장동 부지 가압류 등을 당했다.

이때 성남도시개발공사는 토지수용권 발동으로 부지를 확보해 이를 모두 풀어냈고, 사업시행사로 선정된 성남의뜰은 원주민들을 상대로 한 보상 협의를 하면서 다시 땅을 사들였다. 권은희 의원실 관계자는 “원래대로면 사업 출발이 어려웠겠지만 공사가 개입하면서 복잡했던 권리관계는 해결되고 민간 개발업자가 다시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공사가 출범한 이유 자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이기인 의원은 “공사를 맞춤형으로 만들어 모든 리스크를 전부 해소해 주었다”며 “한마디로 민간 개발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평했다.

공사, 복잡한 토지 권리관계 한 번에 해결

성남시 안팎에선 대장동 의혹과 공사 설립, 그리고 공사 설립에 박차를 가했던 이 지사 간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앞서의 성남시 한 관계자는 “공사가 없었다면 사업 자체가 출발하기 어려웠을 거다. 일련의 대장동 시나리오는 실질적으로 공사 설립과 함께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장동 관계자들은 최 전 의장을 중심으로 모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정관에 따르면 공사는 매 사업연도 사업계획서, 재산 취득 및 처분 등 주요 사안을 시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공사가 관여한 대장동 사업 수익 구조를 이재명 당시 시장도 인지하고 있었을 거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성남시의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등 야권에선 이와 관련해 ‘대장동 특혜 의혹 행정 사무조사’를 추진 중이다. 야권은 이 조사 대상에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경위도 포함시킬 계획이었으나, 지난 10월 12일 본회의에서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 19명의 전원 반대로 행정 사무조사 자체가 무산된 상황이다. 이상호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오는 11월 정례회에서 행정 사무조사 요구의 건을 재상정할 계획”이라며 “감사원에 이와 관련한 감사청구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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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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