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경선이 끝난 뒤 2주 만에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회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경선이 끝난 뒤 2주 만에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회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기도 국정감사 때부터 그런 기미는 있었다. 지난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영훈 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지사를 상대로 마이크를 잡았다.

오영훈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이 우리 당 정강·정책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부합되게 공약을 정비해야 하느냐.”

이재명 “보편복지 개념 중 기본소득도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보편복지에 더해 기본소득을 얹어서 가겠다는 것이냐.”

“보편복지는 당연히 확대해야 하고, 기본소득은 보편복지로 볼 수도 있고 경제정책으로 볼 수도 있어서 복합성과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제가 하나를 정했다고 해서 끝까지 고집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가겠다.”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에 관한 공방으로 시끄러운 국감장에서 같은 당 오 의원이 이 지사에게 던진 건 대장동 문제가 아닌 기본소득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는 이낙연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이날 이 지사는 오 의원과의 문답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실 신복지 정책은 우리 존경하는 이낙연 전 대표님만의 공약이 아니고 더불어민주당이 주력해서 만든 정책 아니겠나. 그건 당의 정책이기도 했고, 그 내용 자체도 우리가 재원 조달에 대해서 고려할 점들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기본적인 방향이다.”

기본소득 문제 해소돼야 원팀 가능?

지난 10월 24일 대선후보 경선 종료 2주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는 이 후보가 이 전 대표의 ‘신복지 공약’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후보 직속 선대위 제1위원회를 구성해 신복지 공약을 직접 챙기겠다는 얘기였다. 이 후보의 국감장 답변은 일주일 뒤 함께 가야 할 방향으로 내걸렸고 단순 수사가 아닌 현실이 됐다. 대표 정책의 화합을 통해 ‘원팀’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기본소득’으로 대표되는 이 후보에 맞서 이 전 대표가 내놓은 정책이 ‘신복지’다. 사회보장제도 강화를 뼈대로 삼는 공약으로 기본소득의 대항마라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이재명 캠프 관계자는 신복지 공약을 수용한 건 갑자기 내린 결정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신복지 공약에 대한 이 후보의 스탠스는 분명했다. 밖에서는 신복지 체제와 기본소득을 대립구도로 보는데 그런 시선을 후보는 불편하게 여겼다. 두 정책은 하나를 두고 선택하는 사안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이고 게다가 신복지 체제는 당에서 제시한 정책이니 우리 쪽에서는 존중해왔다. 원팀을 만들기 위해 기동전으로 갑자기 받아들인 게 아니라 원래부터 함께 가지고 가야 할 정책이라고 봤다. 충분히 믹스가 가능한 조합이다.”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복잡하고 다양한 복지제도를 모두 정리한 뒤 돈을 지급해 해결하자는 우파의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기존 복지제도의 총량을 유지해 희생시키지 않는 선에서 모든 국민에게 지역화폐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급된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지금의 복지제도 위에 기본소득을 제공해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는 게 이재명식 기본소득이 갖는 특징이다.

이 전 대표의 ‘신복지’는 적정한 곳에 복지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이 복지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시혜를 받던 구조에서 벗어나 기존 제도를 더욱 내실화하고 복지의 범위를 넓히는 방법으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자는 쪽이다. 그 출발점은 기존 복지제도에서부터 찾는데 의료나 주거, 고용, 돌봄, 교육, 환경 등 국민의 생활영역에서 우리 경제 수준에 맞는 최저선을 설정한 뒤 이를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게 이 전 대표가 내세우는 복지론이다. 기본소득이 수당에 포인트를 뒀다면 신복지는 사회서비스에 방점을 찍는다.

두 사람의 합의대로라면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정책은 이제 한 몸이 돼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런 작업이 이재명 후보에게 중요한 선결과제라고 본다. “기본소득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다. 지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일관되게 기본소득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얘기했었다. 이런 것들이 해소돼야 당내 화학적 결합 같은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공약의 믹스는 가능, 결국 ‘정도’가 문제

이 후보를 돕는 자문그룹에 참가하는 한 교수는 “기본소득과 신복지의 문제의식이 크게 다르지 않고, 신복지에도 기본소득의 요소가 들어 있다. 캠프 내에서도 현실적으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아서 기본소득을 대규모로 지급할 수 없다면 일단은 지금의 복지제도를 강화한 뒤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을 가져가자는 의견이 있었다. 기본소득을 고수하는 쪽에서도 기존 복지 수급 체계를 희생하면서까지 고집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신복지와 기본소득의 접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책의 문제를 넘어 정치의 문제가 되면 이 문제는 한결 더 복잡해진다. 정책과 정책의 결합에 5 대 5라는 기계적인 밸런스를 맞출 수는 없다. 이 후보가 신복지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톱다운 방식으로 명-낙 사이에는 합의가 이뤄졌더라도 여전히 벌어진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7일 민주당 서울시당 회의실에서는 ‘문재인 정부 5년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주최한 ‘문재인 정부 5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적지 않은 의원들은 3일 전 두 후보 간 만남과는 상관없이 기본소득을 견제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 후보가 주장하는 기본소득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번 대선 공약에는 아동이나 노인 등 특정 계층에 보편적 소득 지원을 하는 정도로 넣어야 한다”(고영인 민주당 의원), “문재인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둬온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다음 정부도 이를 계승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돼야 한다”(전혜숙 민주당 의원) 등은 기존의 보편복지 확대에 무게를 둔 주장들이다.

이재명 캠프 내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새로 조합해 만들 정책의 네이밍, 신복지의 수용 정도를 두고 여러 층위의 의견이 나온다. 신복지가 기본소득에 흡수돼 ‘이재명표 공약’의 냄새가 강하게 난다면 원팀의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진다. 이 후보에게 가장 골치 아픈 경우다.

그렇다고 이 후보가 대표 브랜드인 기본소득을 후순위로 조정한다면 과거의 역풍을 또다시 겪을지 모른다.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기본소득의 우선순위를 후퇴시켰다가 선명성이 후퇴했다는 이유로 지지율의 정체를 맞고 이 전 대표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던 게 불과 3~4개월 전의 일이라서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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