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1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위해 이동하던 중 떨어지는 빗물을 손으로 닦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1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위해 이동하던 중 떨어지는 빗물을 손으로 닦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는 언제부턴가 ‘2030에게 인기 없는 후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청년층의 민심은 경쟁주자였던 홍준표 후보로 쏠린 반면 윤 후보는 노년층과 전통적 당원들에 의해 선출됐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되자 2030 당원들이 줄줄이 탈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노인의힘’ ‘틀니의힘’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지난 11월 5일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결정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청년층 지지율을 회복한 듯 보인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1월 8~9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3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만 18~29세에서 38.2%, 30대 40.6%를 얻어 22.2%, 31.0%를 얻은 이 후보를 앞섰다.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지난 11월 8~9일 전국 성인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33.2%로 이 후보(16.9%)를 앞섰지만, 30대에선 윤 후보 29.1%, 이 후보 30.4%로 비슷했다. 20대의 69.1%, 30대의 61.0%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고 답해 두 후보 모두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 이는 현 정권에 등 돌린 청년층이 사실상 ‘정권교체의 유일한 수단’으로 꼽히는 윤 후보를 택한 것이지, ‘윤석열의 지지층’으로 집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청년 지지율 까먹은 尹

윤 후보가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 전 그의 청년층 지지율은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지난 4월 리얼미터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37.2%의 지지율을 얻어 이재명 후보(21.0%)를 앞섰다. 이때 만 18~29세, 30대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은 29.2%, 32.0%로 후보들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후보는 각각 7.0%, 26.8%에 그쳤다. 최근 ‘홍카단’이란 이름의 청년 지지층을 이끌었던 홍 의원의 당시 2030 지지율도 10.4%, 7.5% 수준이었다. 같은 기관의 5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만 18~29세에서 24.1%, 30대에서 26.9%를 얻었다. 이 후보는 17.6%, 27.1%, 홍 의원은 9.2%, 6.0%였다.

윤 후보의 정치 행보가 본격화되자 2030의 지지율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 선출 직전인 10월 4주 차 리얼미터의 대선 4자 가상대결 여론조사(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에서 윤 후보는 만 18~29세와 30대 남성에게 25.7%, 32.3%의 지지율을 얻었다. 같은 4자 대결 조사에서 홍 의원이 2030 남성에게 57.0%와 44.3%의 지지율을 얻은 것과 비교됐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는 정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청년층의 민심을 까먹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원인을 두고는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윤 후보의 권위적인 말투와 태도, 캠프 인사들과 이준석 대표 간의 갈등 등이 꼽힌다. 다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선 ‘홍준표는 왜 2030에게 인기를 얻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홍 의원의 말투나 태도 역시 얼마 전까지는 ‘꼰대’라는 지적을 받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번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1위를 다툴 정도로 지지율이 올라올 수 있었던 데에는 2030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이 ‘2030 홍준표 지지층’은 대체로 남성을 지칭한다.

2030 남성의 홍 의원에 대한 지지세는 단지 ‘홍카콜라’로 상징되는 시원한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홍 의원과 선거 캠프는 경선 기간 윤석열 캠프 쪽으로 기운 당내 조직과 인사들을 모으는 대신 온라인 여론 전략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집중한 이슈가 ‘젠더갈등’이었다.

현 정권의 여성 정책 등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 2030 남성들은 이 지점에서 홍 의원과 ‘정서적 결합’을 이룬다. ‘가진 게 없는데 남성이라는 이유로 기득권 취급받는 부당함’을 느끼는 젊은 남성들이 ‘26년 정치 경력에도 비주류이자 독고다이의 길을 가는 홍 의원의 처지’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홍 의원도 이러한 2030 남성들의 호응에 답하듯 “페미니즘 대신 패밀리즘” “여성가족부를 타 부처와 통합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월 4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photo 홍준표 캠프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월 4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photo 홍준표 캠프

젠더갈등 낚아챈 洪

홍 의원과 정서적으로 결합을 이룬 2030 남성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무야홍’ ‘무대홍’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홍 의원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들에 따르면, 사실 그가 젠더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사도정신’에 가깝다. “남자가 조금 희생하고 양보해서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인식이다. 이는 2030 남성들이 거부감을 갖는 ‘역차별’의 소지가 있는 인식이지만, 2030 남성들에게 홍준표는 이미 ‘페미니즘 문제를 해결해줄 정치인’이란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홍준표 대선 캠프의 한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기자에게 “결국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도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가 한계치에 다다르다 보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트럼프처럼 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과 PC주의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캐치할 필요는 있다. 그걸 잘해온 정치인이 이준석 대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준석 대표가 온라인상에서 휘발성 높은 이슈를 파악해 즉각 대응하는 것에 능하다면, 홍 의원은 특유의 직설 화법과 선명성 강한 ‘우파 정책’으로 다가갔다. 한때 ‘막말’ 논란을 자주 빚었던 홍 의원이 오히려 2030 남성들에게는 ‘PC에 대한 반감’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적임자로 나타난 것이다.

앞선 관계자의 말처럼 젠더이슈와 PC주의에 가장 앞장서 맞서온 인물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그는 몇 년에 걸쳐 온라인과 방송 토론 등을 통해 각종 성평등 정책 등과 관련해 의견을 피력해왔다. 이 활동을 기반으로 2030 남성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덕에 4·7재보궐선거와 본인의 당대표 선거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고 그는 자평하고 있다.

이 대표가 젠더이슈 등에 날을 세워 메시지를 내는 이유는 향후 대선이 과거의 ‘지역 구도’가 아닌 ‘세대 구도’로 치러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여성 정책을 중시해온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심을 잃는 한편, 각종 성비위로 물의를 일으킨 탓에 정작 ‘페미니스트’들은 민주당 대신 소수 정당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라는 분석이 깔려 있다. 이 세대 구도에서 선점이 유리한 2030 남성들을 국민의힘의 강력한 지지층으로 끌어 모아두면,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지 않은 2030 여성들도 옅게나마 남성들에 동화될 수 있다는 전략이다.

2030 남성 구애 시작한 李

최근 이재명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다들 읽어보시라”며 공유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은 “원래 ‘홍카단’이었지만 이제 이재명을 지지하겠다”는 이가 쓴 글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을 멈춘다고 약속해 달라. 그러면 지지하겠다. 민주당은 부동산 문제와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못했고 바로잡지 못했다. 거대한 180석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하는 거라고는 페미니즘의 광기에 사로잡혀 관념적 정의만 읊어대는 대중정당으로서의 빛과 가치를 소멸해가는 것뿐….”

페미니즘에 적개심을 드러낸 게시글을 이 후보가 공유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이 후보는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청년들의 절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그러면서 “성남시장 시절 전국 최초로 군복무 청년 상해보험제도를 실시했다”며 2030 남성들을 겨냥한 자신의 업적을 홍보했다. 홍 의원의 경선 탈락으로 이탈한 2030 남성 표심을 자신에게 모으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2030에게 젠더이슈는 남녀 간 입장차이가 분명한 상황이다. ‘이대남과 이대녀’ 중 한 집단을 택해 공략할 것인지, 두루뭉술하게 포용하고 나설지 후보들이 결정해야 할 수도 있단 의미다. 때문에 ‘분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난 11월 11일 페이스북에 “거대 양당 후보들이 얄팍한 젠더의식으로 반페미니즘의 기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면서 화해가 아닌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가 2030세대에 인기가 없는 주된 이유는 “선거를 ‘세대 구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이준석 대표가 여러 인터뷰에서 숱하게 “영남권 몰표와 충청·강원권 약간 우세, 수도권 선전으로 승리하는 과거 공식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대표는 수시로 “2030세대를 위한 어젠다를 대선후보들이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대표가 역설한 “2030을 위한 어젠다” 중 대표적인 것이 젠더이슈다.

尹 “실질 청년 정책으로 답 제시하겠다”

반면 윤석열 캠프가 그간 보여준 선거 전략은 기존의 지역 구도와 전·현직 정치인 등 인물 중심에 쏠려 있는 탓에 2030의 여론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선 기간 윤석열 캠프의 인적 구성을 두고 ‘도로한국당(도로 자유한국당)’이라는 비판까지 나온 이유다. 현재 윤석열 캠프에서도 2030 표심 공략을 위해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대체로 “청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으로 답을 제시하겠다”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한 청년 당직자는 “윤 후보가 잘 알지 못하면 주변에 젊은 참모들이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삽니다’ 하고 알려줘야 하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젊은 사람들은 딱딱하고 어려운 정책보다 ‘우리와 공감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게 이 대표와 홍 의원 인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준석 대표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가 지난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된 이후 수도권에서만 1800여명의 탈당자가 있었고 그중 2030의 비율이 75%가 넘는다고 한다. 이 수치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홍준표 의원 지지층이 역선택이었다는 증거”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그러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홍 의원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이재명을 찍어서 그들 말대로 역선택을 해주겠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탈당자는 40명 정도” “탈당보다 입당자가 더 많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이 대표가 “조롱하지 말라”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윤 후보에 대한 2030의 지지가 아직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이 대표가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