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운데)가 국회에서 열린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대선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운데)가 국회에서 열린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대선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사자성어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애용하고 있다. 지난 11월 2일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도 청출어람을 집어넣었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빛과 그림자 역시 온전히 저의 몫이다. 잘못은 고치고 부족한 건 채우고, 필요한 것은 더해 청출어람 하겠다.”

최근 들어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되짚어 올라가면 1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 때도 ‘청출어람’을 사용했다. “기존의 성과들은 토대로써 활용해야 하고, 그래서 조금 더 ‘청출어람’ 하려고 노력해야지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이 후보는 청출어람이란 단어를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 관해 질문받을 때 답변으로 내놓는다. ‘문재인 정부를 부정하지 않는다’ ‘계승하며 동시에 혁신하겠다’는 뜻으로 선택한 사자성어다. 내부 파열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정기국회로 이재명 실력 보여준다”

다시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으로 돌아가보자. 이 후보가 무대에서 강조한 대목이다. “당장 이번 정기국회를 첫 번째 이재명표 민생개혁국회로 만들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미 수술실 CCTV 설치, 청소·경비노동자 휴게시설 개선을 입법했던 것처럼 산적한 민생개혁과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국회로 가야 합니다.” 초반 대선 전략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다. 그는 11월을 ‘이재명표’ 입법과 예산을 보여주는 때로 규정했다.

대장동 의혹으로 이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됐다. 점수를 꽤 잃었는데 만회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뒤늦게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 후보가 못 누린 컨벤션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실제로 양 진영 후보가 결정된 뒤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대부분 패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10%포인트의 격차까지 보이자 민주당 내에서 술렁거리는 분위기도 있었다. 주도권은 일단 야당이 쥔 셈인데,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무기를 이제 장전해야 한다. ‘입법’과 ‘예산’이라는 여당의 무기는 11월 정기국회 때 쓸 수 있다.

이 후보의 오랜 측근의 얘기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7월에 민주당 경선 연기론이 재점화됐을 때 연기를 주장하는 후보들이 원했던 시기는 11월 이후였다. 국민의힘보다 늦게 정하자는 건데 11월에 후보가 정해지면 누가 된들 정기국회라는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 당 지도부가 그때 5주 연기를 결정했다. 9월 경선 마무리가 10월 마무리로 바뀌었다. 원칙대로 하자는 게 우리 쪽 주장이지만 5주 연기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10월 결정이라면 전략이 틀어지진 않아서다. 후보가 된 뒤 정기국회 때 입법과 예산을 통해 이재명의 실력을 보여준다는 걸 이미 본선용으로 준비했던 거다. 야당보다 먼저 후보를 뽑아야 비전을 보여줄 시간을 벌 수 있다.”

‘이재명은 합니다’는 이재명 캠프의 슬로건이다. 이 후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여줄 기회는 그간 성남시민이나 경기도민만 체감했다. 전국 단위에서 알기 위해서는 시연이 필요하다. ‘이재명은 합니다’를 정기국회 때 보여줘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지율 모멘텀도 만들 수 있고 이 후보에게 국정을 맡겨도 된다는 안정감도 증폭시킬 수 있다.

선대위 출범식에서 밝힌 이재명이 해야 할 것에 관한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개발이익 환수다. 이 후보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막는 제도개혁을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둘째는 주택의 대대적 공급대책이다. “누구나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고품질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했다. 셋째는 충분한 손실보상이다. 정부의 방역을 믿고 따라준 자영업자나 국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재난지원금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안정감 외에 이번 기회에 증명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계승과 혁신 중 방점을 어느 쪽에 찍느냐다. 이 후보는 지사형 정치인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열성 응원층을 결집해 코어로 삼아 대선에 나왔고 확장을 거듭하며 지지를 키워나갔다. 그래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선명했지만 때로는 적대적인 언어로 거친 인상을 줬고 그만큼 ‘안티’도 많다. 비주류라서 민주당 주류였다면 덜 받을 질문을 이미 받고 있다. 현 정부와 차별화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다.

지난 11월 5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5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와의 엇박자 잃는 것 더 많아

후보가 되고 나서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지지율 변화가 없으니 당내 일각에서는 “민주당 틀에 갇히지 않은 이미지가 희석됐다” “원팀을 만드는 데 너무 공들였다”는 지적이 있다. 혁신보다 계승을 증명하기 위해 너무 노력한 것 아니냐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시간을 많이 잃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반면 캠프의 분위기를 물어보면 지금의 속도가 적당하다는 인식이 많다. 일단 원팀을 먼저 다져놔야 중간에 실속(失速)을 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호흡이다. 민주당은 이재명표 정기국회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정책의 영역이 결합되면 정부가 등장한다. 이건 또 다른 문제다. 이재명의 ‘합니다’가 정책적 요소에서도 증명되려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다만 반드시 이 후보와 보조를 맞출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재난지원금 문제는 이런 협조를 이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당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하고 싶어 한다. 초과 세수분이 생기니 그걸 활용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방역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개념을 좀 달리했다. 반면 김부겸 국무총리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여력이 없다”며 사실상 ‘반대’ 뜻을 내비쳤다. “국회가 결정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으로 한 발짝 물러서긴 했지만 민주당과 후보의 얘기에 100% 동의하진 않는 뉘앙스다. 총리가 먼저 나선 덕에 그동안 여당과 대척점에 서 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반대 의견에 동참할 수 있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 문 대통령 지지율, 그리고 이 후보의 지지율이 동시에 빠지는 현상을 두고 “부동산 문제 등 지난 4년간 여권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누적된 결과인데 정치 문제를 정책으로 푸는 건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도 정부나 청와대와 엇박자가 나는 건 이 후보 측이 가장 피하고 싶은 그림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고 본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후보의 갈등으로 비치는 건 정책을 넘어 정치의 문제다. 이낙연 전 대표와의 봉합에도 들인 에너지가 많은데 외부에서 분열이라고 프레임을 짤 소지를 만들 순 없다. 정부와의 엇박자로 ‘합니다’가 ‘못 합니다’가 되는 일도 피해야 한다. 이 후보의 자산은 그동안 보여준 강한 업무추진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한 본선 경쟁력이다. 정부와 의견이 달라 추진의제들이 좌초되거나 정체된다면 이 후보가 가진 큰 장점에 물음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기국회를 통해 정부를 거쳐야 하는 정책의 차원에서 힘을 쏟는 건 이래저래 득보다는 실(失)이 많을 수 있다.

엇박자가 날 때는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 공식적인 창구는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밤 민주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모여 국정 현안과 쟁점을 조율하던 고위 당정청 회의다. 그런데 이제는 열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열린 게 이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인 10월 11일이다. 내년 대선(3월 9일)까지 열지 않겠다는 게 청와대의 의지다. 대선 이후부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등장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고위 당정청 회의는 사실상 종료된 것과 다름없다. 고위 당정청 회의 중단은 ‘여당 후보 밀어주기’나 대선 개입으로 오해받을 소지를 청와대가 미리 차단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입법에서 기대하는 빠른 성과물

지금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정책’보다 ‘입법’이다. 정부가 빠진, 정당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부를 거치는 방법보다는 당과 해결할 수 있는 이슈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원내 다수당의 무기는 입법이다.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한 다수당이다. 그리고 법안도 정책처럼 비전과 변화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지난 11월 4일 오후, 민주당은 정책의원총회를 열었다. 개발이익 환수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국민에게 되돌아가게 한다는 대원칙은 여야 모두 크게 반대하기 어려운 명제다. 신현영 원내대변인은 “공공개발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비를 이번 정기국회 때 만들어나갈 것을 노력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이재명표 입법의 키워드는 ‘부동산’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변화를 꾀하고 동시에 이 후보를 옭아매고 있는 대장동 의혹도 방어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을 거치며 택지의 전면적 공공개발과 개발이익 환수를 약속했다. 개발이익 환수와 관련된 법안은 도시개발법, 주택법, 개발이익환수법 등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은 민간의 개발이익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며 지원사격하고 있다. 진성준 의원은 공공이 참여한 법인이 개발사업을 할 경우 민간의 이익률을 사업비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도시개발법 개정안을 냈다. 홍정민 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의 토지처분을 감독할 권한을 갖도록 하는 ‘화천대유 수의계약 방지법’(도시개발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다만 입법의 영역에 들어서면 인내심을 시험받는다. 여당 유력주자의 대표 법안을 야당이 수월하게 통과시킬 리는 없다. 개발이익 환수와 관련한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토교통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다. “법안 심사 일정을 잡지 않고 있어서 속으로 반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진성준 민주당 의원)는 지적처럼 연내에 쉽게 처리될 거라는 낙관론을 펴기도 애매하다.

이 후보는 의회 경험이 없는 대선후보다. 이번 정기국회는 국회와 함께 일하는 법을 체크해볼 검증의 시간이다. 성남시장 시절, 이 후보는 당시 시의회 다수당(새누리당) 측과 법정 공방까지 벌일 정도로 대립각을 자주 세우곤 했다. “반대파와 싸우며 지지를 얻었던 시절과 비교해 지금은 완전 다른 정치인이 됐다”(민주당 당직자)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2차 추경안을 두고 민주당과 기재부가 충돌할 때 “정말로 필요한 민생에 관한 법안은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한다”는 말로 논란을 산 전례가 있다. 대선후보가 된 이 후보의 의회관을 궁금해하는 시선에도 답을 줘야 하는 시간이 됐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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