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에 위치한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들이 수원시청 앞에서 개발이익 환수를 촉구하는 내용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8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에 위치한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들이 수원시청 앞에서 개발이익 환수를 촉구하는 내용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8일 오전 10시 수원시청 앞. 강한 비바람에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에 위치한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 40여명은 우비와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성남시에 대장지구가 있다면 수원시엔 권선지구가 있다. 특혜의혹 조사하라”며 1시간 가까이 시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이날 빗물에 젖은 피켓과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권선지구 용도변경 통한 개발이익 수천억’ ‘용도변경 먼저 요청·승인한 자가 범죄자다’ ‘권선지구 특혜개발 설계자는 누구이냐’ ‘염태영 시장 개발이익 투명하게, 제대로 환수해라’….

수원 권선지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사업시행사의 개발 수익, 기부채납 방식 등을 두고 입주민과 시 측 간에 대립이 있어온 곳이다. 주민들은 시가 시행사의 일부 사업부지 용도변경 허가로 높은 이익을 취하게 했으면서도, 이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피해는 자신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 주장이다. 반면 시는 국토계획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으며, 시행사 측은 주민들 주장이 무리하다는 입장이다. 첨예하게 갈리는 양측의 이해관계는 올해 소송전으로까지 번졌다.

이에 입주민들은 지난 9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틈을 타 여론전을 본격화했지만, 정작 지역 정치권에선 사태 해결이나 중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 지역 국회의원과 기초의원, 지자체장 등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발전위) 측은 “최근 민주당이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개발이익환수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논란의 중심이었던 권선지구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며 “민주당 소속 3선 시장인 염태영 수원시장이나 이재명 당시 도지사 모두 묵인했다”라고 지적했다.

공영에서 민간주도로 개발방식 전환

경기도 수원 권선지구 개발사업과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은 각각 국토계획법에 따른 민간주도 방식, 도시개발법에 따른 민관주도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차이를 두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각 사업에서 불거진 의혹에 서로 닮은점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수원 권선지구 개발이 처음 추진된 건 지난 2006년 김용서 수원시장 시절이다. 당시 시는 권선동 일대의 99만여㎡를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 ‘공공시설 및 도시기반시설 확충으로 수원시 균형발전’ ‘효율적 토지이용을 통한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 등을 목표로 한 개발 계획을 세웠다. 시는 당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공영개발을 취하려 했으나 2006년 말 돌연 민간주도로 그 방식을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김용서 시장 아들은 권선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한 하도급업체 선정 과정에서 2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돼 2011년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사업 초기 민간업체 로비 의혹으로 지역 정치권 인사 친인척 등이 구속된 바 있는 대장동 개발 과정과 비슷한 대목이다.

당시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연) 측은 2010년 6월 성명을 통해 “권선지구의 개발방식 변경은 서민주거대책과 토지주택의 공공성을 훼손한 반면 건설 대기업과 소수 토지소유주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특혜성 개발사업으로 전락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수원 경실련의 한 관계자는 “LH가 갖고 있던 개발 권한이 민간으로 넘어간 후 분양가가 치솟았고 여기에 전임 시장 아들의 뇌물수수 혐의까지 터졌었다”며 “지금의 염태영 시장이 이끄는 새 수원시 정부에 사업타당성 검증을 요청해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2009년 결국 시행사·시공사로는 민간개발사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선정됐고, 현산 측은 권선지구를 3조원 규모의 ‘미니신도시’급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총 6594가구 규모의 주거시설과 테마쇼핑몰, 복합상업시설, 공공시설 병원 등을 함께 조성하겠다는 것이 현산 측 계획이었다. 시 안팎에선 이 사업을 두고 ‘국내 최초 민간주도 도시개발사업’이라 평했다.

최근 현산 측이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핵심 의혹은 이 개발 과정에서 일부 부지 용도를 변경하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을 수차례 시에 제출해 수익률만 좇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현재 개발·분양이 완료된 곳은 권선지구 주거시설인 수원아이파크시티 1~9단지 정도다. 이를 제외한 14만5000여㎡ 규모의 나머지 용지는 유휴부지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산 측은 지난 6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이 중 일부 용지에 주거시설을 추가로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상업용지(D1)에 공동주택, 판매시설용지(F1·F2)에 오피스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일례다. 공동주택·오피스텔·아파트용지(C8)의 층수 제한도 완화해 더 많은 세대 수용이 가능하게 했다. C8의 경우 2018년 이미 한 차례 층수 제한을 완화한 곳이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 관계자는 “원안대로라면 이들 용지엔 7000여가구 주민 삶에 필요한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야 한다”며 “근데 현산 측은 당초 계획을 틀어 수익률이 높은 주거시설을 짓겠다는 방침이다. 시는 이를 모두 허가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변경안에 따르면 근린생활시설(G1·G2)·의료시설(P1)·편익시설(S1)은 매각하게 된다. 현재 현산 측은 10년이 넘도록 소방서·파출소·유치원·사회복지시설·동사무소 등의 공공시설은 단 하나도 건립하지 않았다. 앞서 도시개발구역 지정 목표로 적시된 ‘균형발전’ ‘공공복리 증진’ 등과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민 측 입장이다.

경기도 수원 권선지구 조감도 ⓒphoto HDC현대산업개발
경기도 수원 권선지구 조감도 ⓒphoto HDC현대산업개발

“정치권 공약 사업 건설사에 떠넘겨”

주민들이 주목하는 건 이 같은 용도변경 대가로 시가 현산 측으로부터 새롭게 받기로 한 기부채납 내용이다. 시는 최근 사업지구 내에 235억원 규모의 미래형 통합학교를 포함한 ‘복합시설물’을 설치받기로 했는데, 주민들은 이 시설물이 기부채납 대상이 되기에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형 통합학교 건립은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추진하던 중장기 역점사업이었다. 2020년 21대 총선과 2018년 7회 지방선거 당시엔 지역구 국회의원 및 시·도의원 후보들이 자신들 공약에 포함시킨 내용이기도 했다. 장정희 수원시의회 의원(권선2·곡선동)의 경우 지난해 아예 미래형 통합학교 건립 의지를 담은 홍보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지역 의회와 시가 추진하고 있던 사업인데, 선거가 끝나자 이 사업 진행 주체를 권선지구 개발사에 떠넘긴 셈이다. 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에 따르면 기부채납 대상은 개발사업과 관련이 있는 기반시설이어야 한다. 주민들은 이 복합시설물 건립이 별도의 사업 건이라 보고 있다.

앞서의 발전위 관계자는 “관할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행정을 개발사에 떠넘기곤 대신 개발사가 요구한 용도변경을 승인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용도변경으로 추산되는 향후 현산 측 수익이 수천억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번 기부채납은 굉장히 미미하다”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현산 측은 지난 2015년 개발지구인 권선동이 아닌 수원 행궁동에 수원시립미술관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기부채납해 이미 한 차례 비판을 사기도 했다. 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상 기부채납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개발사업과 관련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에 건립돼야 하는데 이 미술관은 이와는 동떨어진 시설물이란 이유에서다. 현재 이 미술관은 수원시 도시재생사업인 ‘수원화성 르네상스사업’과도 맞물리고 있다. 현산 측은 논란이 되자 “순수 기부행위였다”며 입장을 번복하고 있다.

일련의 주민 지적과 관련해 수원시 측은 적법하게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국토계획법에 따른 감정평가를 통해 가치 상승분에 대해선 공공 기여라는 형식으로 개발이익을 최대한으로 환수하고 있으며, 미래형 통합학교를 기부채납으로 제공받기로 한 건 학교 시설물에 대한 주민들 요구가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행사의 용도변경을 허가해준 건 유휴부지 개발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대신 공동주택 건폐율·용적률과 오피스텔 건폐율은 축소했다. 오피스텔의 경우 연면적의 20~30%를 시민들이 원하는 근린생활·판매시설로 조성해줄 것을 명문화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수원시립미술관을 행궁동에 건립한 것과 관련해선 “개발지구 내 기반시설이 부족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을 경우 수원시 전체 지역을 두고 기부채납을 진행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산 관계자는 “개발여건이 좋지 않아 유동인구 유입 차원에서 용도를 변경한 것으로, 기존 상업시설만 들어섰을 경우 활성화는 더 어려울 수 있다”라며 “복합시설물을 기부채납하기로 한 건 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결정됐다”라고 말했다. 현산 측은 2014년 단지 내 건립한 60억원 규모 한림도서관 외에 공공시설물을 추가로 납부할 거란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 주장엔 무리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여권의 개발이익환수법 신뢰 못 해”

하지만 주민들과 지자체·시행사 간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올해 소송전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지난 9월 입주민들은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권선지구단위계획 결정고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 청구에 이름을 올린 인원은 1100여명으로 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가장 많다. 이번 심판 제기는 지난 6월 현산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뒤이은 조치다.

이렇게 사태가 커진 데에는 지역 정치권 탓도 배제할 수 없다. 입주민들은 그동안 시의회와 시 등을 상대로 수차례 민원, 성명을 전달했고 간담회도 적지 않게 가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실질적인 사태 해결이나 중재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수원시의회 과반 의석은 여당인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으며 3선째인 염태영 수원시장, 2선째인 김진표 의원(수원시무)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염 시장의 경우 지난해 기초자치단체장 중 처음으로 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발전위 측은 “염 시장도, 김진표 의원도, 이재명 당시 도지사도 이 문제에 대해선 묵인으로 일관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입주민들은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여권의 부동산 개발이익 환수 관련 법안을 별달리 신뢰하지 않는다. 최근 이 법안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도시개발법 개정안, 개발이익환수법 개정안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도시개발사업에서 민간 이익률을 6~10%로 제한’ ‘개발부담금 부담률 20~25%에서 50% 수준 상향’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강화’ 등을 담겠다는 방침이다. 당장의 법 적용 대상은 민관 공동 출자 시행사업으로 두고 있지만 향후 민간 단독 시행사업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앞서의 발전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개발이익 환수 문제로 말이 많던 곳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개발이익 환수를 운운하는데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진행할지는 의문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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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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