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 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photo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 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photo 뉴시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선이다. 이렇게 뽑고 싶은 사람이 없는 대선은 처음이라고 한다. 여야 갈등도 극단적이어서, 정권교체 여론과 정권유지 여론 각각이 유례없이 필사적이다. 유력 주자 모두가 ‘0선’인 점도, 이른바 ‘사법 리스크’가 대선 정국을 장악한 점도 전에 없던 현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를 삼켜버리면서,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전혀 다른 비전과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게 특별한(?) 대선 국면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현상이 발견되는데, 바로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천하삼분지계’다.

보통의 경우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후보를 제외한 같은 당 소속의 모든 정치인들은 그림자가 된다. 당대표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정당의 업무는 철저하게 대통령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당헌에 규정된 ‘당무우선권’을 통해 대선후보는 당대표를 2선으로 밀어내고 정당의 모든 의사결정의 정점으로 올라선다. 대통령 후보는 카메라를 독점하고, 언론보도도 대통령 후보의 말과 행동에 집중된다. 그래서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 방송과 신문에서는 대통령 후보만 보인다. 바야흐로 대통령 후보의 독무대가 펼쳐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에는 윤석열 후보 말고도 주인공이 두 명이나 더 있다.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다. 국민들은 윤석열 후보의 거취 이외에도 ‘여의도 차르’라 불리며 전권을 부여받았던 모든 선거에서 승리를 이끈 김종인 위원장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2030세대 당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준석 대표가 다음에는 어떤 ‘비단 주머니’를 꺼낼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후보가 전권을 쥐는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두고도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의 목소리에 이례적으로 힘이 실린다. 윤석열 후보는 경선과정에서 활동했던 캠프 인사를 포괄하는 매머드급 선대위를 구상하려는 듯 보인다. 반면 당 개혁의 선봉장인 이준석은 선대위 구성에서도 혁신적인 인사 등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김종인 전 위원장 역시도 대대적인 인사 개혁의 필요성을 예고한 바 있다. 헌정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한 정당에서 이렇듯 세 개의 별이 경쟁적으로 빛났던 적은 없었다.

세 사람의 긴장관계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정치 세력은 정치인이라는 표상을 통해 결집한다. 국민의힘은 대단히 이질적인 정치 세력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고, 각각은 윤석열과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분화된다. 바로 국민의힘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50대 이상 연령대의 당원들과 ‘이준석 현상’을 변곡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2030세대의 당원들이다.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이 두 정치세력 간의 정치적 마찰은 불가피했다. 경선과정에서는 청년세대가 홍준표 후보를, 기성세대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그 균열이 가시화되기도 했다. 홍준표 후보가 탈락한 이후에는 2030세대 당원들이 집단적으로 탈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당내 갈등은 커졌다. 2030세대의 당원들은 비록 지지후보를 상실했지만, 이준석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여전히 세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컵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지금 국민의힘의 이 두 정치 세력은 각각 이준석과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여 국민의힘이라는 그릇에서 위태롭게 동거하고 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헌정사상 한 정당 내에서 이토록 세대별 분화가 뚜렷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각 세대를 대표하는 윤석열·이준석 투톱 체제가 낯선 것도 당연하다. 당장은 서툴러도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대선 승리를 향해 차근차근 발을 맞춰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의 스리톱 체제를 완성하는데, 이 역시 이번 대선에서만 볼 수 있는 기묘한 현상이다. 윤석열 후보의 최대 단점은 정치적 경험 부족이다. 이준석 대표의 단점은 ‘어리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윤석열과 이준석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김종인은 중대한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줄줄이 승리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고,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세 사람의 긴장관계가 오히려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히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했고, 흔히 최적의 세력 균형이라 평가받는 ‘천하삼분지계’의 형국이라 하겠다. 세 개의 발이 솥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삼각정립 구도가 국민의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이준석·김종인은 각자가 뛰어난 정치적 성공 방정식을 가지고 있고, 지금은 그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통은 불가피하겠지만, 세 사람의 시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각자의 장점은 극대화되고, 각자의 단점은 보완될 것이다. 이 세 사람의 협력은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실현된 적이 없어서 오직 상상에서만 존재한다는 ‘노장청’의 조합이기도 하다.

1990년에 이루어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당시 민자당은 217석이라는 압도적인 국회의석수를 가졌는데도 분열되지 않고, 김영삼을 필두로 한 통일민주당(민주계)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공화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계)의 긴장관계 속에서 병존했다.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압도하지 않도록 서로를 견제하면서, 민자당은 여당으로서 노태우 대통령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는 기반이 됐다. 민자당은 지역 기반 정치적 세력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세대별 정치적 기반에 따라 분화가 이루어진 지금의 국민의힘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집단이 균형을 유지하며 갈등을 관리해 갔다는 점은 지금도 주목할 만하다.

윤석열·이준석·김종인의 삼각구도가 기대되는 이유다. 정당에서 두 파벌만 있을 땐 한 파벌이 다른 파벌을 압살하거나, 소모적 내분이 지속되거나, 한 파벌이 탈당하는 경우로 귀결된다. 과거 기세등등하던 한나라당도 친이 세력과 친박 세력이 극한으로 대립하면서 당이 파멸로 치달았던 경험이 있다. 반면 민자당은 민주계와 민정계가 대립했지만 김종필을 비롯한 공화계 인사들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까닭에 안정적으로 정당이 운영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칫 세대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국민의힘 내부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내홍에서, 그 갈등을 초월하는 선거 전략가로서 김종인 전 위원장의 균형추 역할도 중요질 수밖에 없다.

‘삼국지연의’의 결말은 진나라의 천하통일이다. 삼각정립 자체는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고, 균형도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지금 윤석열·이준석·김종인의 긴장관계는 윤석열 후보에게 힘을 싣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선거 승리의 역동성으로 승화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언론에서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언론은 그 논조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국민의힘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혹자는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을 세 사람의 갈등으로만 치부하고 무작정 비판만 한다. 그러나 윤석열, 이준석, 김종인이 누구인가. 역전의 용사들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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