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 측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대회의실로 당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 측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대회의실로 당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선거만큼 정확한 여론조사가 어딨나.”

얼마 전 친윤계로 꼽히는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내년 대선 결과를 전망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57(오세훈):39(박영선)’의 결과가 대선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여론조사 결과가 요동치고 있지만 선거만큼 정확한 여론이 없다는 논리였다. 전임 시장의 성비위로 치러진 보궐선거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정권교체 여론이 대선까지 ‘무난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이 중진 의원의 예상은 적중할 수 있을까. 최근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잠행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당대표가 되기 전 이런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다.

“대선 전에 당이 한 번 나락을 찍을 것이다.”

당시 이 대표는 오세훈 시장의 선거 승리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국민의힘이 선거 4연패 뒤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자 당 안팎이 들뜬 분위기로 가득할 때였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당의 나락’을 예상한 이유는 당내 ‘꼰대’들의 득세가 여전하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오 시장의 선거 승리는 2030 청년층의 바람이 큰 요인이었는데, 당내 인사들이 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운동 과정에서 즉흥으로 지원한 청년들의 ‘유세차 연설’이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다고 수차례 자평했다. 최근까지도 이 ‘청년 유세차 연설’을 입버릇처럼 언급하며 “중진 의원 수십 명이 연설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해왔다. 이 대표는 당시 선거 개표 상황실 앞자리에 유세차에 올랐던 청년들을 앉히고 싶어 했지만, ‘내 자리는 어딨느냐’고 호통치는 중진 의원들 때문에 불가능했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정권교체론 vs 세대공략

최근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내 갈등은 두 인사의 상반된 전망과 무관치 않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두고 비슷한 듯 다른 분석이 지금의 상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쪽은 ‘압도적 정권교체론’을 내세우는 반면, 다른 쪽에선 ‘세대 공략이 중요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월 29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의문의 글을 남긴 뒤 예정된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 측과의 잇따른 갈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이를 ‘이준석 vs 윤석열’의 갈등 구도라고 평하지만,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대표는 당대표에 취임한 뒤 유승민 전 의원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들을 고려해 오히려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당직에 앉히지 않았다. 원내에서 유승민계로 꼽히는 의원들도 일찌감치 경선 캠프에 합류하느라 이 대표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대표는 당내에 사실상 ‘자기 사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반면 윤 후보 측에는 그의 입당 전부터 다수의 중진 의원들이 합류해 세를 불렸다.

이 대표가 윤 후보 측을 바라보며 주변 인사들의 면면이 ‘도로한국당’처럼 비칠 우려를 해왔다는 점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부터 준비한 선거 전략을 대선에서도 펼치고 싶어 했다. 그 전략을 잘 펼칠 수 있게 판을 만들어줄 사람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판단했는데…. 윤 후보 측에서는 이미 우리가 없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대표는 윤 후보의 국민의힘 입당 전부터 ‘비단주머니’를 언급하며 그를 도울 방안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인 지난 11월 11일에는 “비단주머니 1번”이라며 댓글 조작에 대응하는 프로그램 ‘크라켄’을 공개했다.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에는 이외에도 청년과 시민들에게 개방된 형태로 선거 운동을 치르는 방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대표는 지난 11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송’도 시민들의 공모를 통해 정할 것이라는 방침을 알린 바 있다.

“이대로 가면 진다” vs “자기 정치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으로는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가 어디까지 공개될지 불투명하다. 이 대표는 윤 후보 측의 선거 전략에 큰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2월 1일 이 대표를 만나본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 대표가 이대로 가선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개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 윤 후보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강조해온 ‘세대 포위론’ 또는 ‘샌드위치 전략’은 2030 청년층이라는 신규 지지층과 60대 이상의 전통적 지지층을 얻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방안이다. 이 대표가 “이번 대선은 세대구도”를 주장하면서 최근 윤 후보의 충청권 행보를 두고 “과거 지역정치의 문법”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가 구상한 전략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초선 의원들과의 포럼에서 “어느 캠프를 보면 저러다 곧 깃발 들고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는 2030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당시 캠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통적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윤석열 캠프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당대표가 대선후보보다 주목받으려 한다”며 이 대표의 행보를 비판한다. 이번 대선 결과에 정치적 생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과도한 액션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 윤 후보 측이 부족한 청년층과 중도층 표심을 얻어오는 데 역할을 하려 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 대표를 향한 윤 후보 측의 불만도 간단치 않다. 이 불만의 원인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지 ‘당대표 이준석’에 대한 문제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윤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초반부터 도왔던 국민의힘 인사는 이런 평을 내놨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부터 당이 얼마나 이준석을 밀어주고 띄워줬나. 당대표 된 게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 같지만, 그가 꾸준히 공천받고 국민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이 대표가 당을 위해 이런 점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정치에만 매몰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결국 이러한 인식이 양측의 화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수락 연설에서 가수 임재범의 ‘너를 위해’ 가사를 인용하며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칠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국민의힘의 난맥상이 승리를 향한 ‘전쟁 같은 치열함’일지, 서로를 향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에서 끝나버릴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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