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이준석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9일 이준석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내년 3월 9일 대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의힘에서는 당대표의 존재감이 이전 어느 때보다 크다는 말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대선을 앞둔 시점에는 당대표가 당무우선권을 지닌 후보 뒤로 숨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대선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준석 대표는 대선을 앞둔 중차대한 시점에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했다가 극적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독특하면서도 매우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처럼 이 대표의 존재감이 약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우선 △선거 전략 자체가 당이 중심이 되고, △코로나로 인해 일명 ‘고공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데다 △대표 본인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이 대표가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하자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이 대표에게 쏠렸다. 당내·외에서는 이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여기에 질린 이 대표가 ‘잠적’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젊은 당대표를 후보 측이 일방적으로 ‘찍어누른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이 대표에게 동정론이 쏠린 셈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그 시점에서는 모든 뉴스가 이준석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며 “이준석이 잠행한 시점에서 윤석열의 행보가 이준석 뉴스에 묻혔고, 윤석열과 이준석이 울산에서 화해한 시점에는 빅데이터상으로 민주당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12월 3일, 윤 후보가 울산으로 내려가 이 대표를 만난 일명 ‘울산 합의’를 통해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됐고, 여기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극적 효과는 배가 됐다. 윤 후보도 “우리 정당 역사상 100년 만에 나온 30대 정당 대표와 함께해 영광”이라며 이 대표를 한껏 띄웠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울산 합의’에 대해 “위험천만했던 일”이라며 “선거 30일 전에 이랬으면 정말 위험했다고 본다. 근데 조기에 잘 봉합하면서 이제 이재명 후보 측과의 격차를 더 벌릴 일만 남았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선거 전략 자체가 당 중심

이처럼 대선을 앞두고도 이준석 대표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내에서는 첫 번째로 대선후보의 당 장악력이 예전에 비해 약하다는 점을 꼽는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까지만 해도 대선후보가 당을 사실상 자기 세력으로 완전히 장악했던 반면, 현재의 윤석열 후보는 그 정도로 당을 장악한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금 당대표가 숨으려야 숨을 수 없는 게, 박근혜·문재인 때까지만 해도 대선후보가 총재급으로 권력을 행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이전처럼 후보가 당을 이미 장악한 상황도 아니고 또 당이 중심이 되다 보니 이재명 대 윤석열보다 이재명 대 국민의힘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당대표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강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후보 때부터 ‘그립’이 매우 강했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윤 후보는 정치신인인 데다 어떻게 보면 문재인 정권 쪽에서 ‘영입’한 인물이기 때문에 상황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윤석열 후보는 여러 공식석상에서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연설부터 최근의 선대위 출범식까지 윤 후보의 메시지를 보면, 윤 후보는 ‘당’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준비하는 국민의힘의 기본 선거 전략 자체가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맞상대한다’는 전략이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은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를 선거 전략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현재의 정치 지형도 역설적으로 이 대표의 존재감이 강해지는 이유로 꼽힌다. 앞서 언급한 핵심 관계자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정국이기 때문에 당하고 같이 가야 한다”며 “당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1985년생인 이준석 대표는 젊은 나이에 비해 정치 경험이 많은 편이다. 2012년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아래 비대위원으로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에 공헌했고, 지난 4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캠프에서 보궐선거 승리에 공헌했다. 모두 낙선했지만 노원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3번 나선 경험도 있다. 이 중 이준석 대표가 특히 당대표로서 중시하는 경험은 지난 보궐선거 때의 경험이라고 한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사실상 오세훈 시장 캠프에서는 이 대표가 총괄 역할을 했었다”며 “본인이 10년간 어깨너머로 배웠던 것들을 오 시장 선거에서 많이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주특기는 ‘고공전’

정치인의 주무기가 ‘말’과 ‘글’을 통한 ‘메시지’라고 봤을 때, 이 대표는 이 분야의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평을 받는다. 말실수도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이 대표가 말로 인한 ‘설화(舌禍)’를 겪은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대표가 기본적으로 메시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정치라는 게 기본적으로 설득의 작업이고, 대중한테 다가가서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현실에 구현해보겠습니다라고 설득하는 작업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문·방송·라디오·인터넷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언론 인터뷰를 소화한다. 당대표로 선출된 지난 6월 전당대회 당일에는 하루에 10개가 넘는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기도 했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평균 하루 한 건 인터뷰나 매체 출연을 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며 “이보다 더 많으면 메시지가 겹쳐 볼륨이 작아지고 효과가 떨어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대규모 인원이 군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고공전’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전처럼 친분, 지역, 연고 등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 세몰이보다 언론 등 매체에 출연해 메시지를 발산하는 선거 운동의 효과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당대표 본인이 변화의 상징”

당내외에서는 이 대표의 존재감이 약해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로 “이 대표 본인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꼽는다. 이 대표 본인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변화를 나타내는 데다 이 같은 변화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선거 전략상으로도 매우 유효하다는 전망이다. 대표 자체의 캐릭터가 특이한 데다, 2030이 모든 정당의 주요 전략 목표가 된 상황에서 대표 본인이 30대이다 보니 당대표의 존재감이 이전에 비해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커졌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울산 합의 전에는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선거에서 지겠다 싶었다”며 “윤핵관들이 계속 자리싸움을 하고 김종인을 밀어내는 데다 이미 대선에 이긴 것처럼 전리품을 나누는 모양새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나”라고 말했다. 반대로 갈등이 잘 봉합되고, 검증된 지휘관인 김종인 위원장이 선거를 이끄는 만큼 현재의 윤석열 선대위는 큰 문제없이 대선을 치러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국민의힘 다른 관계자는 “당이 변화를 원한다는 걸 알았는데 이준석은 그 결과의 상징”이라며 “정치권에서 2030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이 대표의 존재감은 좀처럼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