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7 재보궐선거 당시 유세장에 몰려든 서울 시민들. ⓒphoto 뉴시스
지난 4·7 재보궐선거 당시 유세장에 몰려든 서울 시민들. ⓒphoto 뉴시스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의 판세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도층 표심(票心)이 오락가락하면서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에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판세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증시 등 자산시장에서 주로 쓰이는 ‘변동성’이란 용어는 주식이나 채권, 통화 등의 시세가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움직이다가 갑자기 급등락하는 경우를 뜻한다. 20대 대선에서 1·2위 후보 모두 ‘가족 리스크’로 인해 지지율의 변동 폭이 커지면서 여론조사마다 결과가 널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20일 4곳의 언론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조사가 2곳인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조사가 2곳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여론조사에서도 누가 선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리얼미터·오마이뉴스가 이날 발표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12월 12~17일, 전국 유권자 3043명 대상)에선 윤 후보가 44.4%로 이 후보(38.0%)를 오차범위(±1.8%포인트)를 넘어선 6.4%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같은 날 한국리서치·KBS가 발표한 조사(17~19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에선 윤 후보(34.2%)가 이 후보(33.7%)를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하지만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실시해 역시 20일에 발표한 조사(17~18일, 전국 유권자 1008명 대상)에서는 이 후보(40.3%)가 윤 후보(37.4%)보다 지지율이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글로벌리서치·JTBC가 같은날 발표한 조사(17~19일, 전국 유권자 1003명 대상)도 이 후보(37.9%)가 윤 후보(33.5%)를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글로벌리서치를 제외한 나머지 조사에선 이 후보와 윤 후보 지지율이 이전 조사에 비해 동시에 하락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같은 날 발표한 조사들도 선두 후보가 제각각인 것과 관련해선 얼마 전까지는 기계음으로 조사하는 ARS(자동응답) 방식과 면접원이 직접 조사하는 전화 면접원 방식의 차이 때문이란 해석이 많았다. 이른바 ‘샤이 보수’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ARS 방식은 윤석열 후보가 유리한 반면 보수층의 참여가 소극적인 전화 면접원 조사는 이재명 후보가 유리하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일한 ARS 조사(리얼미터와 KSOI)도 결과가 달랐고, 동일한 전화 면접원 조사(한국리서치와 글로벌리서치)도 결과가 달랐다.

전문가들은 “최근 1위 후보가 조사마다 다른 현상은 조사 방식의 차이보다는 지지하는 후보가 확실하지 않은 중도층의 표심이 계속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가 나오고 있어서 누구를 지지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이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지지 후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11월 3주에는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중도층 지지율이 31% 대 38%로 윤 후보가 앞섰지만, 12월 1주 조사에선 두 후보가 33%로 동률이었고 12월 3주 조사는 40% 대 33%로 이 후보가 앞섰다. 이 기간에 이 후보가 전체 유권자에서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탈환한 것에는 중도층 표심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조사에서도 11월 3주엔 중도층에서 이 후보(29%)에 비해 윤 후보(39%)가 크게 앞섰지만, 11월 4주에는 31% 대 30%로 초박빙이었고 12월 4주에는 31% 대 24%로 이 후보 우세로 바뀌었다.

중도층 표심은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날 발표된 조사마다 판세가 널뛰면서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진앙지가 중도층 표심이란 것이다. 지난 12월 20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조사는 전체 응답자에서 윤 후보가 선두였고, 중도층에서도 윤 후보(44.5%)가 이 후보(36.8%)를 여유 있게 앞섰다. 하지만 이 후보가 선두였던 글로벌리서치 조사는 중도층에서 이 후보(36.5%)가 윤 후보(27.8%)를 크게 앞섰다. 중도층 민심에 따라 선두 후보가 누구인지가 정해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중도층 민심 때문에 대선 판세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권 교체’를 원하는 여론은 각 조사에서 일관성 있게 높게 나오고 있다. 글로벌리서치 조사는 이번 대선에서 기대하는 결과로 정권 교체(52.9%)가 정권 유지(39.6%)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고, 중도층도 전체 응답자와 비슷하게 정권 교체가 51.1%, 정권 유지가 39.5%였다.

한국리서치 조사도 전체 응답자에서 정권 교체(53.7%)가 정권 유지(37.3%)보다 16.4%포인트나 높았고, 중도층도 정권 교체(60.4%)가 정권 유지(30.6%)에 비해 두 배나 높았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건 중도층에서 윤 후보 지지율이 31.6%로 정권 교체 여론(60.4%)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 중도 성향이 강한 연령대인 20대는 윤 후보 지지율(20.7%)에 비해 정권 교체 여론(60.1%)이 40%포인트가량이나 높았다. 이에 따라 최근 중도층과 20대 등에서 대선후보 지지율이 널뛰는 이유는 ‘정권 교체를 원하지만 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상당수 유권자가 조사 때마다 응답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마음을 정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대선 판세가 계속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혼전 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두 후보의 배우자와 아들 등 ‘가족 리스크’ 논란이 커지면서 ‘후보 비호감’이 이전보다 더 높아진 것의 영향이 크다. 한국리서치·KBS의 11월 말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에 대한 비호감은 각각 55.1%와 59.9%였고, 최근 조사에선 59.2%와 60.5%로 둘 다 높아졌다.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할 것’이란 유권자는 85.3%에서 80%로 줄었고,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계속 지지할 것’이란 응답도 71.1%에서 65.9%로 낮아졌다. 특히 중도층은 절반에 육박하는 43.8%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판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중도층 표심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선두권 후보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누구도 확실하게 우세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역대급 비호감 대결로 인해 대선 판세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선두권 후보 간 초접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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