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입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입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12월 24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특별 사면 대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발표했다. "이번 사면은 2022년 새해를 앞두고 코로나19(COVID-19)로 어려운 서민들의 민생안정과 국민 대화합을 이루고자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며 "고령자나 중증환자와 같이 어려운 여건의 수형자분들도 인도적 배려차원에서 사면대상에 포함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됐지만 이번 사면으로 4년 9개월만에 수감 생활을 마치게 됐다.

애초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부정적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수면 위에서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의를 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도 이번 사면에 대해 “전혀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서 기류가 급변했다고 볼 수 있다.

대선 때마다 사면권 제한은 대선 주자들의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적 권한이지만 동시에 견제의 대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마찬가지로 약속했던 문제다. 그런데 임기 말에 사면권을, 그것도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행사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은 재벌 총수 사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정치적 셈법이 포함된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1월엔 안된다더니 12월에 이뤄진 사면

사면 정국은 필연이었을까. 지난 1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신년 화두로 사면을 건의했을 때만 해도 부정적이었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사면 결정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는 그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결코 소멸되지 않는 이슈였고 대선 과정에서도 줄기차게 등장했던 소재였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어깨에 계속 지고 갔어야 할 정치적 부담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 전 대표의 사면 건의를 두고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져야 할 짐을 나눠지려고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이번 사면 결정이 그때와 다른 건 이 짐을 오롯이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이 혼자 지게 됐다. 사면을 반대했던 여당 지지층들의 반발이나 중도층의 이탈도 이제는 대통령의 몫이 됐다. 문 대통령은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혜량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재명 후보는 사면 논란에서 자유로워졌다.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거나 "사면은 절대 안 된다"는 선긋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후보는 이번 사면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한다"며 "어려운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 여론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변했다. 지난 11월 2일~4일 한국갤럽이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 물은 여론조사를 보면 '사면해야 한다'가 44%, '사면해선 안 된다'가 48%로 찬반 여론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지난 1월 같은 기관이 했던 조사에서는 '사면해야 한다' 37%, '사면해선 안 된다' 54%였다. 사면 찬성 여론은 커지고 반대 여론은 줄어들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이 한데 묶여 평가를 받았지만 정부와 여당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실책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적지 않게 언급해 왔다. 그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권력형 경제사범에 가깝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반헌법적 통치가 문제였던 정치적 사건에 가깝다.

이번 박 전 대통령의 사면 결정의 이유 중 하나는 '국민 대통합'이란 단골 수사다. 지난 1월 이 전 대표가 사면론을 건의했을 때도 '통합'을 위해서였다. 당시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던 때였는데, 선거에서 통합이란 중도층을 끌어안는다는 의미다. 다만 그때는 사면 반대여론이 높을 때였고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 국면이었던 때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 이야기가 먹혀들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한 민주당 당직자는 "우리당 지지율이 좀 괜찮을 때 사면 이야기를 꺼냈으면 지금보다 훨씬 진중하게 다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지금은 반대의 국면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세에 있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보다 지지도에서 앞서는 결과를 하나 둘 내놓고 있다. 지난 1월보다는 문 대통령이 통합의 메시지를 꺼내도 될만한 국면이 상대적으로 조성됐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란 정치적 행위에 고민이 깊어진 곳은 국민의힘이다. 지난 1월 사면 논의 때만 해도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이슈를 피하려고 노력했다. 재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이었고 이미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우리가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다"며 사과하고 그 이슈와 결별을 시도한 뒤였다. 전직 대통령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는 게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좋지 않다는 공감대가 당 안팎에 있었다.

수면 아래 있던 전직 대통령 문제는 당내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윤석열 후보의 입당, 당내 경선 과정의 토론을 통해 점점 확산됐는데 이제는 사면이 이뤄졌으니 회피할 수 없게 됐다. 당내 주요 플레이어들도 박 전 대통령과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관계다.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문제와 거리를 두길 원하는 입장이고, 윤석열 후보는 2016년 국정 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박 전 대통령에 30년을 구형한 바 있다. 사면은 ‘박 전 대통령의 입’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국민의힘에 더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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