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은 모든 선거에서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캐스팅보터’로 주목을 받는다. 내년 3·9 대선을 앞두고 현재 중도층은 여야(與野) 어느 쪽으로도 확실하게 쏠리지 않아서 이들의 표심(票心)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각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비율이 50%대 중후반에 달하지만, 야당의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는 여당의 이재명 후보와 비슷한 30~40%에 머무르고 있다. 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서가 높지만 야당 후보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여야의 경쟁이 끝까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리얼미터·YTN의 조사(지난 12월 20~21일, 전국 유권자 1027명)에서도 중도층이 기대하는 대선 결과는 정권교체(53.4%)가 정권연장(39.5%)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들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윤 후보(39.3%)와 이 후보(36.4%)가 비슷했다. 같은 날 실시한 한국갤럽·머니투데이 조사(전국 유권자 1001명)에서도 정권교체(56.6%)를 기대하는 비율이 정권유지(31.1%)를 압도했지만, 윤 후보(33.3%)와 이 후보(33.7%)는 지지율이 거의 같았다. 여기에는 윤 후보에 대한 중도층의 비호감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윤 후보에 대한 비호감은 60.3%로 이 후보에 대한 비호감(59.2%)과 비슷했다.

중도층 중 부동층이 절반

막판까지 중도층의 선택이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중엔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절반에 달하기 때문이다.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17.6%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했고, 지지하는 후보가 있는 경우에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가 31.3%였다. 즉 중도층 중에서 지지 후보가 확실하지 않은 유권자가 절반가량(48.9%)에 달해서 여야의 치열한 공략 대상일 수밖에 없다.

중도층은 현 정부 출범 초기에 비해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갤럽의 월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선 때인 2017년 5월에 유권자 이념성향별 비중이 보수층 23%, 중도층 26%, 진보층 37% 등(모름·무응답 14%)이었다. 하지만 최근인 지난 12월에는 보수층 28%, 중도층 34%, 진보층 23% 등이었다. 현 정부 초기에는 진보층이 가장 많은 ‘진보 우위’ 유권자 지형이었지만, 최근엔 중도층과 보수층의 증가 추세가 확연했다. 특히 지난 정부의 탄핵 정국에서 줄어들었던 중도층이 다시 증가하면서 ‘중도 우위’ 유권자 지형으로 바뀌었다. 중도층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층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가 높다는 점에서 선거 막판에는 결국 야당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갤럽의 12월 자료에서 중도층의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는 57%로 긍정평가(37%)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

중도층이 문 대통령에 처음으로 등을 돌린 시점은 이른바 ‘조국 사태’가 불거진 2019년 8월이었다. 당시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은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와 부정평가가 47%로 동률이었지만 조국 사태 이후 부정평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으로 조국 전 장관의 임명에 대한 평가도 중도층은 ‘부적절하다’(60%)가 ‘적절하다’(26%)의 두 배 이상에 달했다. 2020년 12월 KSOI·TBS 조사에선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에 대해서도 중도층은 ‘잘못한 일’(67%)이란 답변이 ‘잘한 일’(31%)을 압도했다.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성을 우선시하는 중도층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국정을 밀어붙인 여권의 ‘팬덤 정치’에 반감이 크다는 조사 결과였다.

‘공정과 상식’에 민감한 중도층은 현 정부의 경제와 부동산 실정(失政)에도 보수층과 비슷하게 매우 비판적이다. 지난 10월 갤럽 조사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중도층에선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5%에 불과했고 ‘잘못하고 있다’가 85%에 달했다.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잘하고 있다’(21%)에 비해 ‘잘못하고 있다’(65%)가 3배 이상에 달했다. 고용·노동 정책에 대해서도 ‘잘못하고 있다’(61%)가 ‘잘하고 있다’(23%)를 압도했다.

12월 23~24일 입소스·한국경제신문 조사에서도 중도층은 차기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경제 정책으로 ‘집값 안정’(35.4%)이 1위였고 다음은 ‘일자리 창출’(25.3%)과 ‘물가 안정’(24.5%) 등이었다. 이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 중 차기 정부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분야’도 중도층은 ‘부동산 정책’(48.0%)을 1순위로 꼽았고 다음은 ‘검찰 및 사법제도 개편’(13.7%)과 ‘일자리 노동 정책’(13.6%),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7.2%) 순이었다.

중도층 중 ‘반드시 투표’ 84%

중도층은 대선 판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묻는 항목에선 ‘후보자 역량과 자질 검증’(45.6%)이란 응답이 절반가량에 달했다. 그 뒤는 ‘비리 의혹 후보 관련 이슈’(28.0%)와 ‘코로나 전개 양상’(11.4%) 등이었다. 지난 11월 초 한국리서치·KBS 조사에서도 대선에서 투표할 후보 선택에 ‘능력과 자질이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응답이 87.9%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공약’(80.3%), ‘후보의 소속 정당’(74.7%), ‘후보의 가족 및 친인척’(57.1%) 등의 순이었다. 여야가 상대 후보의 ‘가족 리스크’에 초점을 맞춰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중도층은 후보의 공약과 능력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층은 아직 투표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많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과 투표 의향이 높아서 승부를 가를 ‘캐스팅보터’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얼마 전 한국갤럽 조사에선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중도층이 71%로 보수층(78%)이나 진보층(78%)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적 투표 의향도 중도층은 84%로 보수층(85%) 또는 진보층(87%)과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친문(親文) 핵심 지지층만 챙겼던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여권에 등을 돌린 중도층이 많지만 대선에선 경제와 일자리, 부동산 등의 문제 해결 능력을 기준으로 지지 후보를 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중도층은 ‘이념 투표’보다는 자신의 삶과 연관된 ‘이익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은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인용된 조사자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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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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