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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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마지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유일호(66) 전 부총리는 “차기 정부의 최대 과제는 성장잠재력 제고”라며 “이를 위한 규제완화, 노동시장 개혁, 공공부문 개혁, 재정적자 축소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그는 “문재인 정부가 하지 않았던 연금개혁도 차기 정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아울러 오는 3월 대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부동산 및 조세 정책과 관련해 “여야에서 주장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한시인하 등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 양도세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호 전 부총리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조세연구원장 등을 지낸 정통 이코노미스트다.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민한당) 총재의 장남으로 재선 의원(서울 송파구을)을 지낸 후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차례로 지냈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경제부총리로서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퇴진당한 정권의 곳간 열쇠를 문재인 정부에 내어주면서 그간 심혈을 기울였던 기존 정책들이 ‘적폐’로 몰려 중도폐기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경제부총리를 마지막으로 퇴임한 후에는 국민의힘 권영세·유경준 등 개인적으로 가까운 국회의원들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 총괄특보로 선임돼, 윤석열 후보의 경제정책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 지난 12월 27일 서울 중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시종 온건한 어조로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경제 관료들의 무게가 새털처럼 가벼워진 지금,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코노미스트의 무게와 신중함이 돋보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총평한다면. “한 단어로 하자면 ‘아쉽다’ ‘미흡하다’는 표현을 써야 할 것이다. 어느 정부든 큰 목표를 설정한다. 하지만 대개 끝날 때쯤이면 그것대로 안 되는 것이 경제정책의 본질적 속성이다. 이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출범 때 전문가들이 ‘이런 것은 이런 위험 때문에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부동산 정책이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등등이다. 물론 지금의 야당 쪽에서 나온 비판 중에서는 비판을 위한 비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립적이라 할 수 있는 교수, 전직 관료들이 우려했던 것조차 ‘용감하게’ 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 학점을 준다면 몇 학점이나 될까. “전체 학점을 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민들이 주시지 않겠나.”

- 박근혜 정부와 경제 성과를 비교한다면. “박근혜 정부에 있었던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 다만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경제정책만큼은 비판을 들으려고 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정책이란 것이 100점짜리는 거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부작용이 있다. 정책에는 항상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한다. 부정적인 면이 나타나면 그것을 줄이려고 해야 한다. 처음에 의도가 아무리 높고 좋을지라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 많다. 최저임금 인상만 놓고 봐도 인상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너무 급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자꾸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아무리 정책적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해법이 있다면.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공급확대가 같이 가야 한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정부에서는 ‘금리’와 ‘유동성’을 얘기한다.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금리는 부동산 시장에서 ‘외생 변수’다. 부동산 시장만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금리는 거시경제 정책의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부동산 시장만 고려하는 정책 변수가 아니다. 저금리, 과잉유동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부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유지되어온 기조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압력을 받을 때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공급으로 압력을 빼주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차까지 ‘주택은 충분하다’고 계속 얘기했다. 처방이 잘못됐다.”

- 세금과 대출규제 등 공급 외 수요억제 수단을 총동원했다. “계속 수요억제만 하고 있는데, 각각의 수단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조세, 특히 보유세가 부동산 가격 안정에 효과적인지는 미지수다. 조세 강화는 가격 안정 효과와 인상 효과를 모두 갖고 있다. 보유세를 강화했으면 양도세 같은 거래세를 완화해야 했다. 양도세도 강화시키니 퇴로마저 막아버린 꼴이다. 아울러 보유세 증가에는 전가 효과가 따른다. 당장 세금이 너무 많이 올라 월세 올린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나. 대출규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지만, 실수요자들마저 집을 못 사게 하는 등 다른 부작용이 있다. 수요억제책을 쓰는 것은 좋지만 부작용을 잘 살펴야 한다. 뒤늦게나마 공급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만시지탄인 측면이 있다.”

- 지금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당장 집값이 잡히겠나. “국토부에 있을 때 나와 장·차관으로 호흡을 같이 맞췄고 부동산 경제 연구 권위자인 김경환 서강대 교수(전 국토부 1차관)가 예전부터 쓰던 말이 있다. ‘공급확대는 마치 지하철을 새로 놓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통난 해소를 위해서는 지하철을 깔아야 하지만 지하철 공사를 시작하면 병목현상이 불가피하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공급 비중이 가장 큰 부분은 재개발·재건축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안정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임대차 3법’으로 인한 전월세난도 심각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임대차 3법에 반대한 사람이다. 내가 국토부 장관 할 때 지금 여당에서 임대차 3법을 도입하자고 했다. 나는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다고 반대한 적이 있다. 나뿐 아니라 여러 전문가가 반대했는데 지금 그 부작용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21대 국회에서 임대차 3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정책 혼선을 빚었던 임대사업자 혜택을 주기로 했다가 빼앗는 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의 신뢰성을 잃으면 정책 실효성은 기대할 수 없다.”

- 차기 정부에서 ‘임대차 3법’을 어떻게 손봐야 하나. “길게 봐서는 가격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 옳다. 임대차 3법의 핵심이 전월세 5% 상한제다. 새로운 계약을 할 때는 5% 규제가 유명무실하다. 이 조치는 의도와 달리 가격이 널뛰고, 동시에 공급마저 줄어들게 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 공급이 줄어드니 수요공급법칙에 따라 장기적으로 전세가 인상요인이 된다. 임대차 3법 개정이 필요한데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니다. 임대차 3법의 요체인 가격통제를 없앤다는 시그널이라도 줘야 한다. 동시에 서민층에 대한 월세보조 등을 강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 공시지가 급등에 고령의 은퇴자들은 재산세ㆍ종부세ㆍ건강보험료 등 부담을 호소한다. “공시지가 현실화율 역시 급하게 끌어올리는 것은 좋지 않다. 보유세의 과세표준이 공시지가이므로 공시지가 인상은 곧장 세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공시지가 현실화가 타당한 목표라고 해도 급격한 세부담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올리더라도 속도는 굉장히 천천히 가야 한다.”

- 여야 후보 모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한시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양도세율을 갑자기 내릴 수는 없을 것이나 다주택자 중과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양도세율을 한시적으로 내리는 것은 혼란만 초래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차라리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논의를 해서 양도세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책의 지속성이나 예측가능성이 있다. 급하니까 한시로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 과제는 무엇인가. “성장잠재력 제고다. 당장 이런 말은 하면 ‘성장론자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분배를 위해서도 성장잠재력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완화, 노동시장 개혁, 공공부문 개혁, 이와 맞물려 재정적자 축소 등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

- 윤석열 캠프에서는 50조~10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지원책을 언급했다. “선거 전략으로는 유효한 전략이다. 확 치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 정치적 어젠다, 슬로건으로서 의미가 있다. 다만 실제 실행하는 단계에서는 여러 의견을 듣고 필요한 곳에 돈이 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잘 짜야 한다. 큰 틀에서 50조원을 정하고 필요한 곳을 잘 정하는 노력이 수반되면 45조원도 될 수 있고 55조원도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100조원 얘기도 나왔지만, ‘50조원을 반드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필요한 쪽에는 과감하게 지원하되 잘 선별해야 한다. 재정여력 등을 고려하면 자연스레 규모가 조정될 것이라고 본다.”

- 코로나19로 막대한 돈이 인위적으로 풀리면서 물가상승도 심상치 않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각할지 지금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은 틀림없다. 가장 큰 원인은 그동안의 양적완화 조치들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이자율 인상 등 통화신용정책에서 일차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문제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생긴 병목현상도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차츰 정상화되면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나.”

- ‘성장잠재력 제고’가 중요한데 정작 대규모 기업 투자는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간다. “기업이 판단해 그쪽이 좋아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불리해서 그쪽으로 가는 것은 정부가 막아줘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경제적 역할 중 하나다. ‘뭐하러 거기 가. 여기가 더 좋잖아’ 하는 식으로 기업에 인센티브를 만들어줘야 한다. 수많은 규제도 완화해 기업이 쓸데없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 여야 후보 모두 긍정적 입장을 보인 ‘노동이사제’에 재계가 우려하는데. “나는 노동이사제에는 별로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경우 장단점이 있다. 노사가 합의해 노동이사제를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노동개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령 노조 전임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 등에 대한 개혁은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

- 미·중 갈등을 비롯해 한·일 관계 등 대외 여건도 좋지 않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다. 소규모냐 대규모냐 하는 것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여부다. 다시 말해 해외에서 정해지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고, 해외 충격에 대응하는 레버리지가 제한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중 갈등 같은 것에 대응할 때 이런 점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에 문제가 있으면 제3의 파트너를 찾는 것과 같은 방법, 니치마켓(틈새시장)을 찾는 등의 충격완화책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어려움이 생기면 베트남으로 간다든지 하는 식이다. 정책당국은 그런 것을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 기재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혔는데.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가입하는 것이 좋다. ‘CPTPP’뿐 아니라 FTA(자유무역협정)나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많을수록 좋다. 다변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연금개혁’이라고 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을 안 했으면 다음 정부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참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정책이다. 지금 고통의 분담이라고 하면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고, 먼 훗날의 고통분담이라면 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갑갑하지만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연금개혁을 몇 차례 했는데, 혜택을 줄이는 것이 많았다. 미래세대부터는 보험료도 올린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와 같은 방법 외에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 공적연금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국민연금의 경우 기대수익률 상승을 추구해서 장기적 재정 불안정성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민간만큼 잘하기가 쉽지 않다.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보완책은 민간연금, 기업연금 확대 등 중층구조를 통해 노후를 국민연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금융, 세제상 지원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적립형 연금이 세금과 같은 부과형 연금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출산율 저하, 인구감소 등에 대한 해법은. “인구는 성장잠재력과 직결된다. 장기적으로 인구는 성장에 가장 큰 변수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장기 성장에 좋지 않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많은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래도 출산율 제고라는 정책 목표를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내 집 마련 등 부동산 가격 안정과 걱정 안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교육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인구와 고령인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아울러 적극적인 이민정책 같은 방안도 제기되곤 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정서가 비교적 강하고 문화적 충격 때문에 당장 이민정책을 대폭 확대하기는 어렵고 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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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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