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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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쯤 김낙년(65)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국내 소득불평등을 사회과학의 연구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2년 ‘한국의 소득불평등, 1963~2010년: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논문에서는 소득세 자료를 통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2013년 ‘한국 소득분배 지표의 재검토’ 논문에서는 통계청의 가계조사 결과에서 상위 소득자의 누락과 소득의 과소보고가 상당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2015년 발표한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논문은 한국인의 자산에서 상속자산의 비중이 1980년대 평균 27%에서 2000년대에는 42%로 늘었다는 걸 보여주며 ‘수저계급론’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1년 전 ‘팬데믹 시대의 빈부 격차’를 진단하는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내가 언급하는 재분배 문제는 데이터를 정확하게 봐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료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인데, 매년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해 발표한다. 최근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데 참조하는 통계로 가계의 자산, 부채, 소득, 지출 등을 파악하고 경제적 삶의 수준 및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조사와 분석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2020년 연말에 발표된 자료는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이전인 2019년의 현황을 다루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된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우리가 찾던 자료였다. 코로나19 한복판에 서 있던 2020년 우리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미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보고서다. 12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긍정적인 성과는 위기 속에서 소득 양극화를 줄이고, 분배를 개선한 점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0에 가까울수록 소득의 평등을 뜻하는 지니계수는 2019년 0.339에서 2020년 0.331로, 상하위 20% 계층 간 소득격차를 뜻하는 소득 5분위 배율도 6.25배에서 5.85배로 호전됐다.

“현 정부 이전에도 지니계수는 감소 추세”

보고서가 나온 뒤 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김 교수는 “자료를 보면 가장 큰 차이가 공적이전소득에서 나타난다. 2020년 소득이 직전 해에 비해 3.4% 증가했는데 이 중 공적이전소득이 31.7%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자료를 찾아보니 2019년의 경우 전해보다 공적이전소득이 18.3% 늘었다. 2019년에도 증가했지만 2020년에는 훨씬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공적이전소득이란 공공기관 등에서 개인에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연금이나 수당과 같은 사회수혜금, 세금환급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득불평등 해소가 한국의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소득불평등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는 해외에서도 보고되고 있다. 감염병의 혼돈으로 경제적 약자의 피해가 컸을 테고 불평등도 심화됐을 거라는 전망과는 상반된 결과다. 지난해 8월 ‘경제불평등저널(Journal of Economic Inequality)’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4개국에서도 2020년 1월부터 2021년 1월 사이 소득불평등 정도가 감소했다는 결과가 공개됐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산하 공동연구센터(JRC)의 보고서도 “정부의 조치가 없었다면 소득불평등은 크게 증가했겠지만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그런 위험이 초기에 완화됐다”며 비슷한 결론을 내놨다.

우리네 지니계수나 빈곤율 등은 지표상 개선됐다는 결론이 났지만 그 이유는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득불평등을 측정할 때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이다. 시장소득이란 개인이 번 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에 사적으로 이전받은 소득을 더한 것이다. 세금이나 연금·건강 보험료 등의 사회보장기여금을 공제하기 전의 소득이다. 가처분소득은 여기에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공제하고 연금을 비롯한 공적이전소득을 더한 것을 말한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 효과가 반영된 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2020년 사이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악화되거나 현상을 유지(0.406-0.402-0.404-0.405)했다. 반면 가처분소득으로 따져볼 경우 불평등이 줄어드는 추세(0.354-0.345-0.339-0.331)가 뚜렷하다. 김 교수는 이 추세가 보다 더 오래된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1995년부터 급속하게 올라갔고 2010년대 들어서면서 감소한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이미 가처분소득 기준 소득불평등은 완화되고 있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외에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데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연금 때문이다.”

김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은퇴자 그룹에 들어오는 시기와 맞물려 소득불평등 완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제도가 시작한 때가 1988년이다. 베이비부머가 30년 정도 연금을 가득 부은 뒤 은퇴그룹에 합류해 그 효과가 나타난 게 2010년쯤이다. 여기에 연금과 크게 관계없던 나이 많은 고령자들이 사망하면서 통계에서 제외돼 갔다.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던 고령자가 줄고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가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재난지원금은 그 추세를 조금 더 가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금이란 건 결국 빚을 내서 뿌린 거다. 그렇게라도 지원하는 효과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만큼 빚이 늘었다는 건 다른 부분의 지출을 줄이는 등의 대가를 치르고 생겨난 거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기본소득’ 중심에 놓는 국가 없어

김 교수는 늘어난 정부 지출을 ‘대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대가에 관해서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그동안 풀었던 돈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추스르기 위해 각국에서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부 지출과 충돌할 때 생긴다. 유동성 축소 기조가 유지된다는 건 그만큼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부의 지출 여유를 줄이게 만든다.

김 교수도 이런 충돌 지점을 우려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부채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 빚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이런 기조라면 점점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부채가 많은 일본은 그것 때문에 경제 정책에 여러 제약을 받고 있고 성장에도 방해를 받는다. 빚이 급증한다면 이런 성장 정책에도 한계가 생긴다.”

대통령 선거가 곧 다가오지만 이런 거시적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소득불평등 완화책으로 기억되는 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기본소득 정도가 유일한 데다 이 정책도 여론에 밀려 후퇴했다. 김 교수는 “(이 후보가) 기본소득 정책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이냐의 설정은 중요한데 기본소득을 복지의 주축으로 놓는 발상은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다. 기본적으로 서구 복지국가는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보험은 연금·건강보험·실업보험·장기요양보험 같은 것이다. 자기가 일하고 소득을 얻을 때 부었다가 리스크가 생겼을 때 보상을 받는 개념이다. 다만 적절한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아닐 경우 배제하는 시스템이다. 무직자 외에 긱(GIG) 노동자(플랫폼 노동자처럼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은 후 일하는 단기 노동자)와 같은 새로운 유형도 사회보험에서 제외되는 게 문제다. 울타리 밖 사람들을 보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런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원리로 해결하려는 건데 재원이 안 나온다. 추가로 재원을 끌고 오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 갈등도 심하고 경제적 리스크도 있다. 사실 지금도 기본소득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 근로장려금을 세금환급 형태로 지원해주는 근로장려세제 같은 제도는 기본소득과 원리가 같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기본소득은 이런 부분을 확장하거나 사회보험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원해주는 형태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거 다 없애고 기본소득으로 하겠다, 혹은 유지한 채 기본소득을 추가하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자가주택 고려해야 정확한 진단 가능”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보장의 원리를 선택해 불평등을 완화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팀이 만든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에 한국 데이터를 제공하며 함께 협력해왔다. 최근에는 이런 작업의 결과물이 나왔다. 우리 소득 재분배 정책에 고민할 만한 논문 두 편을 내놨다.

하나는 ‘우리나라 생산 및 수입세의 재분배 효과’이다. 소득 재분배를 판단할 때 활용하는 가계조사는 정책의 주요 근거가 된다. 그런데 재분배 효과를 분석할 때는 보통 가처분소득(현금)이 중심이다. 영향력은 끼치지만 누락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간접세’다. 김 교수는 “대표적 간접세인 유류세의 경우 소득이 많으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누진성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중하위층의 경우 소득에 비해서 유류세를 쓰는 정도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역진적이다. 모든 세금을 다 포괄해서 들여다보니 조세 재분배에 이런 간접세가 역진적이고 소득 재분배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논문은 ‘우리나라 귀속임료의 재분배 효과’다. 김 교수는 “주거 문제로 생기는 부담이 큰 때일수록 귀속임료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같은 나이의 직장인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자기 집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집 없이 출발했다고 치자. 이 둘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한국 사회에서 매우 크게 드러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가처분소득을 중심으로 분석하다 보면 집 때문에 생기는 비용을 간과하게 된다. 이럴 때 등장하는 개념이 귀속임료다. 자기 소유의 집도 임대와 같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가정해 임대료를 상정하는 개념이다. 이럴 경우 집이 있는 사람은 귀속임료만큼 수입이 있는 셈이다.

귀속임료를 적용한다면 소득이 있는 청년층이나 중장년층은 자가소유자와 임차인 사이에 지금보다 더 큰 격차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소득은 없는데 자가소유 비율이 높은 노인들의 경우는 귀속임료만큼 수입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져서 격차가 줄어들게 된다. 김 교수는 “이런 모든 가정들을 감안했을 경우 소득 재분배 효과가 어떻게 될지는 검증해야 할 문제인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연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에서 김 교수는 “순귀속임료를 추가할 경우 소득 분배와 빈곤율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였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제일 높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주택 자가소유자를 고려하는 식으로 국제적으로 비교해야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앞으로 정책적 진단과 처방을 보다 적확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평등 완화’라는 어젠다는 노교수를 연구로 이끄는 동인(動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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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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