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월 2일 서울 마포구 소재 더불어민주당 미래당사 ‘블루소다’ 개관식에 참석해 2030 청년리스너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월 2일 서울 마포구 소재 더불어민주당 미래당사 ‘블루소다’ 개관식에 참석해 2030 청년리스너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정책 경쟁이 치열하다. 중도 표심을 잡기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슷한 공약을 내놓기도 하지만, 정당의 이념이나 후보의 특성만큼 정책의 차이는 확연하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인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각 후보의 입장은 정반대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는 부동산 세제의 전면개편을 통해 세금 부담을 완화하려고 한다. 반면 이재명 후보의 경우 공약을 철회하거나 자주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정확한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대개는 국토보유세 등을 신설하여 세금 부담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윤석열 후보와, 친중외교를 고수하는 이재명 후보의 외교노선 차이도 분명하다.

주목할 점은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과 같은 거시적 어젠다를 내놓는 것과 별개로 각 당이 생활밀착형 공약을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양당에서 내놓는 생활밀착형 공약들이 주로 MZ세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국민의힘은 ‘석열씨의 심쿵약속’, 더불어민주당은 ‘소확행 공약’이라는 나름대로의 청년친화적(?)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여야가 시리즈로 청년 공약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경우 지하철 정기권 확대나 전기차 충전요금 동결, 더불어민주당은 탈모치료에 건강보험 지원 공약이 화제가 됐다. 지지하는 정당을 막론하고 각 당의 소소한 공약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여론은 대단히 우호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월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청년보좌역들과의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월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청년보좌역들과의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쟁적으로 내놓는 생활밀착형 공약들

그러나 정치권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더 많아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그 누구도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국정 어젠다를 내놓지 못하면서 각 후보들이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공약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가정책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이 돌아가도록 설계해야 하고, 생산성 향상에 연동되는 재분배 정책만이 재분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정책 설계의 기본적인 정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만약 특정집단에만 혜택을 주는 방식의 정책 설계가 빈번해지면 집단 간의 분배투쟁이 일상화되고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재명 후보의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 공약의 경우 건보 재정 때문에 2군 항암제조차 급여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에서 탈모 인구의 표만 노린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대단히 강하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 득표하는 것이 우선이냐며 ‘모(毛)퓰리즘’이라는 조롱도 받았다. 비단 탈모 지원뿐 아니라, 윤석열 후보가 내놓은 개별 공약들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의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의 우려가 무색하게 젊은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나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그 어떤 공약들보다도 ‘심쿵약속’이나 ‘소확행 공약’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MZ세대는 이념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데이터로도 입증되는데, MZ세대는 보수나 진보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부합하는 실용적인 정책들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들이 대단히 많다.

그렇다 보니 MZ세대는 정당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에 따라 투표를 결정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세대에 비해 무당층의 비율이 훨씬 높은 세대 또한 이들이고, 정책이나 비전에 따라 지지 후보를 바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도 이들 MZ세대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청년층이 스윙보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통령 후보들 입장에서는 미시적인 개별 정책들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대통령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읽고 그것을 국정철학으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그 비전과 철학은 거시적인 정책들로써 구체화된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사소해’ 보이는 개별적인 정책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환호를 포퓰리즘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묵과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과거를 돌아보자. 1997년 대선에서는 외환위기 극복, 2002년은 행정수도 이전, 2007년에는 한반도 대운하, 2012년에 경제민주화, 그리고 2017년 대선 때는 적폐청산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 중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가? 젊은 세대의 삶이 나아졌는가? 모두 철저히 실패했고 표면적으로 ‘성공’한 정책은 외환위기 극복뿐이었다. 외환위기 극복의 경우에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벌였던 여러 정책은 이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 이상 거대담론은 믿지 않는다

이처럼 지난 25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선 기간 동안 후보자들이 내놓은 국정 비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MZ세대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거대담론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당장 내게 닥친 작은 불편함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쉽게 관심 밖으로 벗어난다는 의미다. 또한 젊은 세대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정권을 몰락시킨 경험이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한 정치참여를 통해 여론을 주도할 만큼 정치효능감이 대단히 높다. MZ세대는 정치적 ‘니즈’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현상을 직시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가와 정부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과거 우리는 국민 모두가 가난했고 비슷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부유해졌고 생활양식도 개인마다 달라졌다. 가난하고 동질적이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유하고 이질적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 통용되던 획일성 위주의 정책집행의 방식이나 정치적 구호들은 그 유효성을 점차 잃고 있다. 정부나 국가가 국민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국가는 과거에 개인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집단의 일원이나 지역 또는 계층의 구성단위로만 취급했다. 그러나 다양성이 자라나는 대한민국에 집단적 정체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덜하거나 정치적 이념이 뚜렷하지 않은 중도층에 대해서는, 그들이 후보자나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당은 각자의 필요나 흥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그에 걸맞은 세밀한 공약을 전향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과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연승을 이끌어낸 선거운동 전문가 칼 로브가 처음 이러한 방식을 시도한 이후, 오바마 역시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으로 유권자를 세분화하여 그들에게 맞는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이끌어낸 적도 있다. 우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는 내용이나 방식,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정치 변화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