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수퍼페더급의 강자 최충일은 한국 복싱 사상 가장 위력적인 스트레이트를 날려 세계 챔피언은 떼어논 당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1982년 두 차례 가진 세계 타이틀 매치를 모두 컨디션 조절이 어려운 원정(LA·마닐라)으로 치러 아깝게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그러나 전광석화 같은 뻗어치기로 상대방을 일격에 쓰러뜨리는 ‘칼날 스트레이트’는 올드 복싱팬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복싱의 ‘칼날 스트레이트’는 골프의 ‘러닝 어프로치’에 비유된다. 잽싼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상대를 눕히듯, 핀에 바짝 갖다 붙이는 ‘명품 어프로치’는 동반자를 얼어붙게 만든다.

잔디가 제대로 올라오기 전인 4월 중순까지 러닝 어프로치는 아마추어들에게 비장의 무기다. 그렇지만 대부분 어프로치 요령을 몰라 스코어를 망치기 일쑤다. 스코어 80대 초중반의 ‘준싱글’도 10명 중 절반은 러닝 어프로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그린 앞까지 공을 잘 보내놓고도 이후 어프로치 미스로 더블보기 이상을 범하는 걸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런 어이없는 장면을 초봄에는 흔히 볼 수 있다. 연속적으로 같은 미스를 저지르는 걸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라운드 도중 원포인트 레슨은 다른 동반자들에게 결례이므로 이어지는 실책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3월 중순만 해도 그린 가장자리인 플랜지와 플랜지의 바깥쪽은 잔디가 시들해 있다. 잔디가 잘 자라 있는 ‘늦봄~초가을’엔 피칭 웨지로 공을 살짝 띄워 굴리면(피치&런) 핀에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잔디 상태가 안 좋을 땐 빗맞아 생기는 ‘뒤땅’이 나오기 쉽기 때문에 러닝 어프로치를 반드시 익히고 라운드에 나서야 한다.

러닝 어프로치는 8, 9번 아이언을 사용하기 때문에 뒤땅을 칠 확률은 10%도 안 된다. 요령은 왼발을 45도가량 오픈하고(오른손잡이의 경우) 클럽 페이스를 직각으로 세운 다음 퍼팅하듯 가볍게 스트로크하면 된다. 물론 프로들은 러닝 어프로치 대신 손에 익숙한 퍼터를 사용하지만, 아마추어들은 잔디의 역(逆)결을 계산하기 어려워 퍼터 사용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 러닝 어프로치의 장점은 핀에 붙여 원퍼팅으로 홀아웃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운동신경이 좋은 이들은 러닝 어프로치를 라운드 중간, 실전에서 바로 익힐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연습장에서 10분만 훈련하면 적응할 수 있다. 그린 근처에서 뒤땅을 치면 무조건 한 타를 손해 보고, 잘못 친 상실감에 또 미스를 저질러 두세 타를 까먹을 수 있다. 핀까지 20~30m를 남기고 3~4타를 더 친다면 그날 스코어는 보나마나다.

여기서 꼭 새겨야 할 게 있다. “나는 퍽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나아갈 자리로 움직인다”는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의 명언이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가 연설에서 자주 인용했다. 공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공이 지나갈 자리를 정확히 예측한다면 ‘싱글로의 길’은 훨씬 단축된다. 러닝 어프로치로 공을 핀에 붙여 ‘오케이~’ 소리를 들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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