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들은 신사다. 룰과 에티켓에 엄격하며 항상 반듯하고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한다. 홀 아웃하면서 동반자와 친절하게 악수까지 나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젠틀맨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잔잔한 바다 물결이지만, 내면은 가끔 풍랑을 일으키기도 한다.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은 정열의 나라 스페인 출신답지 않게 평소에는 다소곳하고 얌전하기 그지없다. 1999년 US오픈에서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첫날 라운드에서 75타를 쳐 클럽하우스를 나설 때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올라사발은 분노와 좌절감을 숙소 벽에다 표출시켰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오른손 뼈가 부러져서 다음날 시합을 포기해야만 했다.

2001년 남아공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80타를 기록한 해니 오토. 그는 주차장에서 자신의 모든 클럽을 부러뜨리고 근처에 있는 호수에 던져버렸다. 과격한 행동에 대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토는 한동안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부랴부랴 새 클럽을 장만한 그는 그 다음 주 개최된 남아공오픈 첫날 라운드에서는 버디 6개, 이글 1개(보기 1개)를 기록하면서 65타를 쳤고 공동 5위로 대회를 마쳤다.

1991년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로 떠오른 존 댈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풍운아’ 혹은 ‘필드의 무법자’ ‘악동(惡童)’이라는 별명의 그는 네 번 결혼했고,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으며,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술에 취해 필드에서 알몸으로 노래했으며 경기가 안 풀린다며 갤러리를 향해 샷을 날리기도 했다.

스페인의 핸섬가이인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1999년 월드매치플레이에서 샷을 하다 미끄러져 넘어지자 골프화 때문이라며 골프화를 벗어 광고판에 던져버렸다. 갤러리가 친절하게도 그걸 주워 가져다주자 이번에는 발로 차버렸다. 날아간 신발에 하마터면 진행요원이 맞을 뻔했다. 그런 ‘싸가지 골퍼’였던 가르시아가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 메이저대회 ‘73전74기’의 감동 드라마를 쓴 것은 ‘사랑과 긍정의 힘’ 덕분이었다. 약혼녀 앤젤라 애킨스는 가르시아의 집안 곳곳에 포스트잇으로 긍정적인 글귀를 붙여 놓아 가르시아가 늘 읽도록 했고, 마침내 다혈질 언행은 부드럽고 겸손하게 바뀌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 매너 없는 동반자를 보게 된다. 공이 잘못 맞았다고 욕설을 내뱉거나 골프채를 던져버리는 이도 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너꽝 플레이어’는 크게 두 가지를 잃게 된다. 하나는 스코어다. 화를 내면 집중력을 잃어 이후 플레이가 엉망진창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인간 관계다. 동반자들이 ‘다시는 저 사람하고 같이 운동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또 캐디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음담패설이고, 가장 끔찍한 동작은 골프채를 내던지는 것이니 골프장에서는 늘 겉과 속이 같은 ‘신사와 숙녀’가 되자.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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