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신태용 신임 감독.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지휘하는 모습. ⓒphoto 연합
축구대표팀 신태용 신임 감독.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지휘하는 모습. ⓒphoto 연합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6월 15일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경질하고 새 감독을 물색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해 역대 대표팀 최장수 사령탑 기록을 세웠지만, 지난해 9월 시작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둬 중도하차했다. 슈틸리케호는 홈에서 4승을 거뒀지만, 원정에서 1무3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축구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으로 여러 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정해성(59) 대표팀 수석코치, 홍명보(48) 전 대표팀 감독, 신태용(47)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 등이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이끈 기술위원회의 최종 선택은 하마평에 오른 인물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신태용이었다.

왜 신태용이었을까.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 뒤에는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지도자로서 국제무대에서 큰 자취를 남긴 것도 아니었다. 프로축구 성남 일화 감독 2년 차 때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선 빛나는 경력을 쓰지 못했다. 지난 5~6월 국내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나섰지만, 목표였던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8강전에서 비교적 약체로 꼽힌 온두라스에 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태용을 택한 이유는 한국 축구가 벼랑 끝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필요한 ‘소방수’ 역할에 신태용 감독만 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기술위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낙점됐다. 당시 기술위원 8명이 2표씩을 던지는 방식을 택했는데, 결선 투표에서 신 감독이 과반인 5표를 얻었다고 한다. 황선홍 FC 서울 감독,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 등 새로 합류한 기술위원들이 젊은 리더십에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다.

기술위원들은 성적 부진으로 상처 입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소통의 달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신 감독은 젊은 지도자인 데다 실제 지도한 선수들로부터 ‘형님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코치를 지내며 선수들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이 같은 모습은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들뻘인 선수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장난을 치며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지난 U-20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기대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은 국내 축구 팬들 앞에서 강팀을 상대로 긴장하지 않고 화끈한 공격을 선보였다. 결국 선수들과 문제없이 소통하는 신 감독의 능력이 그를 대표팀 감독으로 이끈 것이다.

신 감독의 장점은 소통에 더해 다양한 전술 구사다. 신 감독은 선수 시절 꾀가 많고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고 해 ‘여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도자가 돼서도 마찬가지다. U-20 월드컵에서 신태용호는 매 경기 새로운 전술을 구사했다. 일각에서 “선수들이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전술 변화가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U-20 월드컵을 대비해 그가 준비한 세트피스만 2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는 ‘전술 부재’가 문제점으로 지적된 전임 슈틸리케 감독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신 감독은 전임 슈틸리케 감독의 문제점을 묻자 “이전 감독에 대해 말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지만 전술 부재가 아닌가 싶다”며 “나는 슈틸리케 감독과 스타일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신태용식 축구가 만능은 아니다. 가벼운 분위기에 취해 경기를 그르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열린 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의 경기(카타르 도하)에서 2골을 앞서가다 후반 중반 3골을 연속으로 얻어맞고 2 대 3으로 역전패했다. 축구팬들은 이 경기를 ‘도하 쇼크’라고 불렀다. 당시 신 감독은 “일본을 5 대 0으로 눌러주려는 마음이 앞서 결국 실패를 경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 스타일 맞는 선수 뽑겠다”

신 감독이 이끌어야 할 한국 대표팀의 현재 상황은 밝지 않다.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2014 브라질월드컵까지 8회 연속, 28년간 이어져온 한국과 월드컵의 인연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각 조 2위까지 월드컵 본선에 자동 진출하는데 한국은 A조에서 이미 월드컵 티켓을 따낸 이란에 이어 아슬아슬한 2위에 자리하고 있다. 4승1무3패(승점 13)인 한국의 뒤를 우즈베키스탄(4승패·승점 12)이 승점 1 차로 바짝 쫓고 있다.

신태용호는 남은 두 경기에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까다로운 팀을 상대해야 한다. 두 경기 모두가 이른바 ‘단두대 매치’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느냐, 아니면 축구 팬들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없는 월드컵을 봐야 하느냐의 문제다.

더욱이 한국 대표팀의 핵심 중의 핵심인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손흥민(토트넘)이 부상 중이다. 남은 두 경기에 기성용과 손흥민이 출전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이 믿었던 선수를 그냥 쓰지는 않겠다”며 “내 스타일에 맞는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 남은 경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신 감독은 지난 7월 8일 프로축구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경기를 관전하고, 7월 9일에는 수원 삼성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직접 찾아 선수들을 점검했다. 최근 대표팀 선수들의 투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신 감독은 “90분 내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들을 우선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의 공격 전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지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신 감독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수비 불안을 꼽는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내내 한국팀에 따라다닌 비판이 수비 불안이었다. 한국은 예선 8경기에서 11골을 넣고 10골을 내줬다. 중국(9실점), 시리아(5실점)보다도 실점이 많았다.

신 감독은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수로서 월드컵을 못 나간 게 평생 한이었습니다. 감독으로 월드컵에 나가서 더 높은 곳으로 가라고 이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높이 비상하겠습니다.” 신태용호는 조만간 코치 선임을 완료할 예정이다. 대표팀은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홈경기(8월 31일) 사흘 전인 8월 28일 소집이 예정돼 있지만, 신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에 조기 소집을 요청했다.

석남준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