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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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스물한 살 박찬호가 LA다저스타디움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올해 7월 첫선을 보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까지 메이저리그를 거쳤거나 또 뛰고 있는 한국인은 모두 21명이다. 메이저리그 13년 차로 1268경기에 출장해 한국 선수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를 필두로 LA 다저스의 류현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승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김현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 등 4명이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와 뉴욕 양키스의 최지만이 메이저리그 콜업을 기다리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 이들의 존재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 KBO 리그와 국제 대회 등에서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진출 러시는 과거 박찬호의 성공에 고무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적극적으로 김선우, 서재응, 김병현 등 국내 젊은 투수를 영입하고 최초의 한국 메이저리그 타자 최희섭이 함께 뛰던 시절 이후 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영입 형태와 현재의 차이는 명확하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어린 아마추어 투수를 데려와 몇 년간 자체 마이너리그에서 담금질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선을 보였다. 철저히 검증을 요하는 메이저리그는 스물한 살에 진출해 데뷔는 빨랐지만 마이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박찬호의 성공으로 그와 비슷한 유형의 아마추어 투수로 자연스레 쏠렸다. 반면 최근 영입 추세는 성장에 시간이 소요되는 아마추어 선수보다 즉시 전력으로 간주되는 KBO리그 출신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최근에는 KBO리그 출신인 류현진과 강정호의 활약에 고무되며 최소한 국내 리그에서 7년 이상을 뛴 선수들이 주요 스카우트 대상이다. 지난 2년간 진출한 선수들은 두 시즌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마치 인생의 축소판과 같이 요즘 말로 달기도 짜기도 한 ‘단짠’을 모두 맛보고 있다. 이번에 전격 트레이드된 김현수는 국내 야구를 대표하는 타격 기술을 자랑하던 선수였지만 작년 시범경기 적응 실패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를 국내로 유턴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한정된 기회를 최대한 살리며 주전으로 도약해 시즌 타율 3할을 넘기면서 올 시즌 전망을 장밋빛으로 만들었다. 구단이 팀 내 1루수 트레이 맨시니를 외야수로 전향시키면서 맹타를 휘둘러 힘들게 얻어낸 주전 자리를 어이없게 내주고 말았다. 그 이후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이번에 메이저리그 최저 승률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가 되었다. 이 트레이드가 흥미로운 점은 현재 두 팀의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 선두와 와일드카드 모두 5.5경기 차로 벌어져 있고 현재 전력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밝지 않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마이너리그 투수를 내주고 받은 투수는 제레미 헬릭슨이라는 3선발급 정도의 선수이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흐름을 바꾸기에는 부족한 선수다. 게다가 계약기간도 올해 단 1년이라 시즌이 끝나고 다른 팀으로 떠날 수도 있다. 반면 필라델피아는 당장보다 미래를 바라보며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체질개선 중인 팀이다.

29살의 김현수가 팀의 미래와 맞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외야 주전은 평균연령 25세의 젊은 선수들이다. 따라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정확한 방망이와 선구안이 강점인 김현수를 상황에 따라 활용하는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이 트레이드의 배경에는 지난해 김현수를 지켜주었던 마이너 강등 거부권이 거북했고 어차피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의 선수와 역시 올해가 지나면 팀을 떠나갈 가능성이 높은 투수의 맞트레이드라는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팀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선수를 맞바꾼 것이다.

최대한 뛸 기회 많은 팀 선택해야

이승엽도 달성하지 못한 2년 연속 50홈런의 주인공이었던 박병호도 지난해 출발은 장거리포를 터뜨리며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아직 올 시즌 빅리그에 선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작년 데뷔 두 달 만에 마무리로 낙점되며 올 시즌 역시 마무리로 출발한 오승환은 시즌 내내 기복 있는 투구로 다시 셋업맨으로 강등됐다. 그나마 류현진은 2년간의 길었던 부상 회복을 뒤로하고 선발투수를 지키고 있지만 아직은 자리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에이스 다르비슈가 LA로 옮겨와 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의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꿈을 좇았던 황재균은 1할6푼대 타율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KBO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수퍼스타로 군림했던 이대호는 작년 시즌 동안 같은 포지션을 공유하는 플래툰 플레이어로 한 시즌을 보내고 올해 국내 야구에 복귀했다.

국내 야구를 평정했던 이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자리 걱정을 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한 이유는 뭘까. ‘박찬호 키즈’로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뛰고 국내 프로에 복귀해서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선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 ‘상대평가의 오류’라고 정의했다. 아마추어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는 이 선수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데려가 마이너리그에서 키워내지만 현재 국내 프로 출신들은 스카우터들이 국내 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판단해 스카우트 여부를 결정한다.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구장, 수준이 다른 상대 선수, 확연히 차이 나는 선수층, 현지 적응 등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성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지에서 통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은 신상 문제로 국내에 머물고 있지만 KBO리그 출신 야수로 성공을 거둔 강정호가 진출하기 전 그를 수년간 지켜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당연히 그를 데려간 피츠버그는 그의 파워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봤지만 다른 스카우터는 강정호의 레그킥 등이 문제가 되어 메이저리그의 빠른 볼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김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괜찮은 수준의 파워를 기대했던 볼티모어가 있던 반면 몸쪽 공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박한 점수를 준 스카우터도 존재했다.

메이저리그 정착에 정답은 없다. 문제는 직접 상대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그쪽 야구 스타일에 자신을 정확히 대입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왕 하는 도전에 최대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 국내 성적은 참고일 뿐이다. 저 선수가 가서 잘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어차피 국내에서 받는 연봉보다 적거나 차이가 없는 정도의 대우가 대다수라 최대한 자신이 뛸 기회가 많은 팀 선택이 필수다. 접촉하는 팀의 정확한 정보 파악이 필요하다. 워낙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경쟁력과 의지를 한번 더 점검할 필요가 절실한 작금의 상황이다. 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냉철한 판단을 내릴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아짐을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선수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송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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