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KLPGA
홍란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KLPGA

지난 9월 2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클래식에 취재를 갔다가 경기를 막 마친 홍란(32)이 팬들의 요청에 웃는 얼굴로 사인을 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됐다. ‘다른 일이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반 들어 3연속 버디를 잡으며 기세를 올리다가 마지막 4개 홀에서 더블보기 1개, 트리플보기 1개를 했다. 7오버파 공동 41위로 대회를 마쳤다. 마지막에 어이없게 5타를 잃지 않았다면 25위로 끝났을 것이다. 홍란을 보고 반가워서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이들은 그 상황을 잘 모르는 듯했다. 프로골퍼도 사람인데…. 하지만 홍란은 기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보다 더 위만 바라보고 싶을 때, 저는 어렸을 때 읽었던 글을 자주 떠올려요. ‘내가 헛되이 산 하루가 어제 죽어가는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내일이다’라는 글이죠. 제가 잘 못 치긴 했지만 예선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치고 싶어했던 최종 라운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그가 프로암에서 환영받는 골퍼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태도로 아마추어 골퍼들의 궁금증에 성심성의껏 답해주며 레슨을 한다는 평판이었다. 사실 나이 서른둘은 일반 사회에서는 여전히 윗사람들 눈치깨나 보는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속한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 사람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때로 TV 중계를 보다 보면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저렇게 거드름을 피울까’ 생각하게 하는 골퍼도 있다.

홍란은 11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18살에 프로로 전향해 19살부터 1부 투어에서 뛰었다. 22년째 골프를 치고 있다. KLPGA 1부 투어 생활만 14년째다. 그보다 선배도 있지만 14년째 시드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조로(早老)현상이 심한 한국 여자골프에서 손꼽히는 베테랑이다. 그는 프로 통산 4승을 거두었다. 2008년 2승, 2010년 1승을 거두고는 지난 3월 브루나이 여자오픈에서 8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홍란의 롱런 비결은 뭘까?

“골프를 좋아하지만 골퍼는 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기 싫을 때도 해야 하고, 아플 때도 슬플 때도 해야 하죠. 그래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휴식을 해야 하는지 판단해요. 그렇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하죠.”

그는 요즘 골프 연습은 안 해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 1시간 반에서 2시간가량 한다. “대회를 하다 보면 밸런스가 떨어지는데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그것만 맞춰도 연습한 효과가 난다”고 했다. 프로암의 족집게 선생이라는 그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부탁했다. “그냥 공을 끝까지 보고 리듬을 생각하면서 치세요. 공을 끝까지 보라는 건 머리만 들면 문제가 안 되는데 몸이 일어나면서 공을 똑바로 맞히지 못하게 되거든요. 공만 보면 힘이 잔뜩 들어가서 백스윙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은 채 스윙을 하게 되죠. 그런데 이 기본적인 문제가 프로도 가장 어려워요. 이 두 가지만 하면 하루에 5타씩 줄어들어요. 믿으세요.”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