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도대체 어디로 드라이버 샷을 날려야 하는 걸까?” 티잉 그라운드 가운데 공식 경기를 위한 백티에 서면 풍광이 갑자기 달라진다. 레귤러 티에서는 널찍하고 편안해 보이던 페어웨이가 갑자기 3분의 1로 줄어든 것 같고 워터해저드와 벙커 등이 훨씬 더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백티에서 70대 타수를 기록한다면 ‘레귤러 티 싱글’의 수준을 넘어서는 아마추어 고수라 할 수 있다.

평창에서 ‘하트핑거장갑’과 올림픽 헤리티지 컬렉션 ‘2018 달항아리 에디션’을 내놓았던 스포츠·문화 전문기업 왁티(WAGTI)의 강정훈(45) 대표가 이런 고수다. 그는 드라이버를 260m 정도 날린다. 뒷바람에 300m를 쳐본 적도 있다. 그런데 거의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지 않는다. 스윙을 작게 해서 오차를 줄이고 부드럽게 치는 스타일 덕분이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면 2년 안에 싱글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 집중력이 싱글을 만들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싱글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골프를 익혔다. 스물여덟에 시작해 1년 반 만에 싱글이 됐다.

그는 공부만 하는 학생과 운동만 하는 운동선수로 확연히 갈리는 한국 사회에서 둘 다 해본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휘문고 농구부 출신인데 서장훈이 1년 후배, 현주엽이 2년 후배다. 고려대에서도 잠시 농구를 했지만 한계를 깨닫고 공부로 돌아섰다. 100m를 11초1에 주파하는데 키가 180에서 멈추었다.

친구들에게 중·고등학교 때 배웠어야 할 기초부터 물어가며 코피 터지게 공부했다. 뉴욕대에서 스포츠비즈니스 석사를 하고 200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0년간 글로벌스포츠마케팅 업무를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IOC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의 런던올림픽 사무소장을 맡았다.

글로벌 스포츠 무대 경험이 쌓일수록 그는 미국의 나이키, 독일의 아디다스, 일본의 아식스처럼 ‘국제 스포츠 무대의 백티’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한국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2018 평창, 2020 도쿄, 2022 베이징 등 3개의 올림픽이 동북아시아에서 잇달아 열리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2016년 삼성전자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 몇 명과 함께 ‘WAGTI(We Are Greater Than I)’를 만들었다. 3년 만에 직원이 30여명으로 늘었다.

역시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이 좋은 기회가 됐다. 엄지와 검지를 겹치면 빨간 하트 모양이 되는 ‘핑거하트장갑’을 내놓았다. 한국에만 있는 손가락 하트 문화를 모티브 삼아 스마트폰 터치 기능을 가미한 IT 제품이었다.

폐막식 때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인사들부터 린지 본 같은 스타 선수들까지 이 장갑을 끼고 세계를 향해 하트를 날리는 사진이 미국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됐다. 그는 세계적인 축구 전문 사이트인 ‘골닷컴’을 기반으로 글로벌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하고, IOC와 함께 ‘올림픽 헤리티지’ 사업도 하게 됐다. 올겨울에는 모바일 앱 서비스도 론칭한다고 한다. 그는 “골프도 비즈니스도 오랜 수련이 필요하지만 짧은 시간에 일정 수준에 올라서겠다는 집중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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