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에서 열린 혼다 클래식에 참석한 비제이 싱. ⓒphoto 뉴시스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에서 열린 혼다 클래식에 참석한 비제이 싱. ⓒphoto 뉴시스

최경주(51)가 2000년 한국 골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했을 때 롤모델로 삼은 골퍼는 비제이 싱(58·피지)이었다. 미 PGA투어에서 34승, 유러피언투어에서 13승을 거둔 싱은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지독한 연습량으로 유명했다.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40대 이후 PGA투어에서 가장 많이 우승(22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4년 9월 초 264주간 세계 1위 자리를 달리던 타이거 우즈를 끌어내리고 1위 자리에 오른 적도 있다.

최경주는 “미국에서 다른 건 몰라도 연습량만큼은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싱에게는 도저히 못 당했다”며 웃었다.

미국에 건너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최경주의 추억이다. “아침밥 먹으면 골프장에 가서 하루 종일 연습하다 해 떨어지면 돌아오곤 했어요. 그런데 같은 동네 살던 싱이 한번은 ‘너 도대체 (골프장에) 몇 시에 오냐?’고 묻더라고요. ‘몇 시에 온다’고 대답했더니 싱이 ‘너 미친 거 아니냐’라고 해요. 그래서 ‘그럼 너는 어떠냐. 너 미친 건 이미 온 동네 사람이 다 안다. 다들 네가 더 미쳤다고 한다’며 웃었죠.”

최경주는 “싱의 연습을 열흘 정도 따라 하다가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동안 뻗은 적도 있어요. 당시 경험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훈련을 많이 하면서 싱은 1년에 9승(2004년)을 할 때도 있었고요. 난 그 능력이 안 되니까 항상 배우려고 따라갔고…. 이런 기억이 지금도 많이 나고 생생해요”라고 말했다.

싱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주홍글씨’가 있다. 아시안투어에서 뛰던 1985년 스코어카드 조작 의혹 사건에 휘말려 2년간 자격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싱은 PGA투어에서 성공을 거둔 뒤 당시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아시안투어 측은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 이는 싱의 경력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최경주는 “싱은 참 외로운 사람”이라며 이런 말을 했다. “외로움을 골프로 푼 거죠. 그게 보여요. 하루 종일 공을 치는 낙으로 살았어요. 아시안투어에서의 잡음을 미국 사람들도 알아요. 그래서 외면하고 좋아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오는 고독감으로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공을 친 거예요. 그랬기에 비제이 싱이 된 거죠.”

최경주는 지나간 일과 관계없이 싱을 있는 모습 그대로 대했다고 한다. “항상 인사하고 반겼어요. 한국에서 팥빵 같은 걸 가끔 사가지고 가면 하나 주면서 먹어 보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싱이 그런 걸 고마워했던 것 같아요. 연습하고 있으면 그냥 쓱 와서는 자기가 ‘착~’ 하고 공 하나 치고 가요. 그러면서 ‘헤이, KJ! 한번 쳐봐(Hey, KJ! You try)’라고 하면서 가버려요. 그러면 싱이 보여줬던 걸 따라 해봐요. 그러면서 실력도 늘었죠. 싱은 그렇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어요.”

최경주는 전성기가 지난 싱과 로커룸에 앉아 대화를 나눈 기억도 떠올렸다. “만날 그래요. ‘KJ, 우리는 늙어가고 있어. 나는 이미 늙었고, 너는 늙고 있는 중이야.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챔피언스투어(50세 이상 선수들만 뛸 수 있는 투어)에서 보겠네? 그때 또 보자.’ 이런 식으로요.”

그 시절 이야기처럼 최경주는 지난해 50세가 돼 미국 PGA 챔피언스투어 선배인 싱에게 ‘신고식’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최경주의 스페셜 레슨’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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