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팩클래식 우승 뒤 최경주가 부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컴팩클래식 우승 뒤 최경주가 부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 번 간 칼은 영원히 가지 않는다. 또 갈아야 한다. 오늘 쓸 칼은 오늘 갈고, 내일 쓸 칼은 내일 갈아서 또 사용해야 한다.”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진출 첫해인 2000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최경주는 그해 겨울 다시 퀄리파잉스쿨(이하 Q스쿨)로 밀려났다. 엿새 동안 108홀을 돌아 35명 안에 살아남지 못하면 짐을 싸서 돌아와야 했다. 그 긴박하고 간절했던 순간 영원히 칼끝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미 PGA투어 8승, 유러피언 투어 1승, 일본 투어 2승, 아시안 투어 6승(한국 투어와 공동 주관 5개), 한국 투어 16승을 거두었지만 단 하나의 ‘인생 라운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최경주는 주저없이 2000년 겨울의 Q스쿨 마지막 라운드를 꼽을 것이라고 했다. 최경주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5라운드를 마쳤을 때 성적이 41위였어요. 마지막 한 라운드를 남겨놓고 PGA 1부 투어 시드가 주어지는 35위 안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4언더파는 필수적이었는데 15번과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4언더파를 만들었어요.”

파만 하면 Q스쿨 통과인데 18번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65야드에 오른쪽은 물, 왼쪽은 러프, 페어웨이는 20야드밖에 안 되는 굉장히 좁은 코스였습니다. 그때 저는 결정했습니다. 일단 물은 절대로 안 된다. 최악의 경우 왼쪽 러프는 괜찮다. 난 페이드를 잘 치니 러프를 많이 보고 치자.” 결과는 홀까지 190야드를 남겨 놓은 깊은 러프였다. 4번 아이언을 있는 힘껏 휘둘렀는데 공은 야속하게 그린 앞 30m에서 멈췄다.

무조건 파를 만들어야 하는 18번홀 그린 앞 30m에서 최경주가 꺼내든 클럽은 퍼터였다.

“어프로치는 자신이 없었어요. 긴장하면 탑볼 혹은 뒤땅을 치거든요. 탑볼을 치면 물에 들어가고 뒤땅을 치면 무조건 보기인 상황에서 결국 저는 퍼터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퍼터로 친 공이 홀까지 4m 남았다. 운명의 4m! 보따리를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PGA투어에 남느냐의 기로였다. 최경주는 마지막 4m 퍼팅을 성공하기 위해 사방에서 퍼팅 라인을 살펴보았다. 최경주의 말이다. “평생 그때 같은 퍼트를 해본 적이 없어요.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손이 떨렸어요. 이런 상태로 치면 안 들어갈 것 같아서 어드레스를 풀고 퍼팅 라인을 다시 한번 봤어요. 훅 라인으로 보이긴 하는데 100% 자신이 없었어요.”

최경주는 기도를 했다. 그의 눈에 공에서 홀까지 하얀 분필로 쫙 그린 것처럼 라인이 보였다. 그 퍼팅을 성공한 최경주는 공동 32위로 Q스쿨을 통과했다.

“스코어카드를 확인하고 나오는데, 그 앞 해저드의 잔디밭에서 하얀 빛이 환상처럼 보였어요. 천사의 날개 같았죠.”

최경주는 이제는 내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1년 상금 랭킹 67위로 시드를 지켰어요. 그리고 그해 가진 둘째 아이 신영이가 2002년 3월에 건강하게 태어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리고 5월에 뉴올리언스에서 첫 우승(컴팩 클래식)을 했죠.”

최경주는 그때 인내하고 절제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두 번 다시 Q스쿨은 오지 않는다. 그러려면 칼을 더 갈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최경주의 스페셜 레슨’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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