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월가를 점령하라’ 1주년 기념 콘서트. ⓒphoto AP·뉴시스
2012년 9월 15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월가를 점령하라’ 1주년 기념 콘서트. ⓒphoto AP·뉴시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향한 대중의 분노다. 비록 강한 조직력이 없어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사회 운동까지 등장했었다. 미국의 젊은 세대가 세계 금융의 심장부로 몰려들어 텐트를 치고, 피켓을 들며 소리 높여 월스트리트의 부도덕함을 비난한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에 참여한 청년들은 언론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슴없이 월스트리트를 비판했다. 이들은 수백조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발생시킨 월스트리트의 파생상품들과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와 감독기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부분에서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에 참여한 청년들이 파생상품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이다. ‘이해하기 힘든 금융상품’인 파생상품 계약서에 거래 승인 사인을 해준 공적기관의 고위 책임자들도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에 참여한 청년들이 파생상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정도는 사실 애교로 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과 2008년 미국 부동산시장에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노르웨이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2007년 겨울 노르웨이 북쪽 8개 지방자치단체까지 휩쓴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어떻게 노르웨이 북부까지 강타했을까. 노르웨이 북부 8개 자치단체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메인주의 하우스푸어, 그리고 독일의 지역 은행들과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중 하나인 씨티뱅크 등과 파생상품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손실 가능성을 명기했지만

노르웨이 북부 8개 지역의 공적기금 운용 관리 공무원들은 보통 안전자산에 투자해 0.5~3%쯤의 수익을 내왔다. 그런데 당시 공적기금 관리 공무원들이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높은 수익의 이면에는 투자 원금의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투자금을 잃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투자한 돈의 두 배가 넘는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이다. 이들이 투자한 파생상품의 계약서에는 이 같은 위험이 분명히 설명돼 있었다. 그런데 이 상품 투자를 승인한 고위 공무원들은 계약서에 이 내용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 고위 공무원들은 계약서에 이 같은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노르웨이 북부 8개 지방자치단체 중 하나인 헤우게순(haugesund)시의 예를 보자. 당시 헤우게순시의 시장은 ‘채권을 산다’고 생각해 투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시장이 승인한 투자는 ‘이 채권상품과 연결된 미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경우 월스트리트의 씨티뱅크에 오히려 돈을 지불해줘야 한다’는 계약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로, ‘채권을 산 것이 아니라 판 것’과 같은 성격을 가진 계약에 사인을 한 것이다. 심지어 계약서에 사인한 시장들 중에는 이 계약을 중개한 곳이 테라시큐리티(Terra Securities)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테라시큐리티는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금융상품을 팔 수(상품 중개) 있게 허가받은 증권회사다. 아마도 노르웨이 북부 8개 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금융상품 거래 계약 전 테라시큐리티와 많은 협의를 했을 것이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자신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어야 하기 때문에라도 말이다.

이들 노르웨이 지방자치단체들은 씨티뱅크가 만든 한 개 이상의 금융상품을 테라시큐리티를 통해 샀다. 아마도 이때의 금융상품 상당수가 미국과 연결된 파생상품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지자 수익률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2007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노르웨이 북부 항구도시인 나르비크(Narvik) 시장을 인터뷰했다. 당시 시장은 파생상품을 판 테라시큐리티와 월스트리트의 씨티뱅크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또 노르웨이 금융 감독기관 역시 ‘지방자치단체가 잘못 판단하게끔 했다’는 이유를 들어, 금융상품을 중개한 테라시큐리티에 허가를 박탈했다. 테라시큐리티는 그 후 바로 파산했다.

이후 이 사건은 월스트리트의 씨티뱅크와 또 다른 몇 개 은행들이 재판을 받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만큼 사태가 커지기도 했다. 이 재판을 통해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는 노르웨이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의 모습이 세계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씨티뱅크를 포함한 투자은행들과의 재판은 거의 10년이 지난 올여름에서야 끝이 났다.

연금 등 공적기금을 운용·관리하는 공무원들, 즉 전문성이 없는 인력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노르웨이 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어난 스캔들은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공무원들이 ‘수익률이 더 나올 수 있다’는 말에 무책임하게 사인을 한 경우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금융과 금융상품을 이해하지 못해 아무것도 안 하는 공무원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니 수익률이 추락하게 되고, 연기금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결국엔 공적기금의 고갈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젊은층이 줄고 노령층이 늘어나는 인구구조와 복잡해지고 있는 금융시장을 생각하면 공적기금의 안정적 운용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적기금을 담당하는 직업이 앞으로 매우 골치 아프고 어려운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금융은 매우 세분화되고 전문화될 수밖에 없다. 지식의 깊이 역시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세분화되고 전문화될 금융을 무서워서 안 한다고 할 수도 없는 문제다. 국민 전체를 위한 공적기금에 이 같은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모르면서 아는 척 공적기금을 운영했을 때 국민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많은 나라에서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은 국민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공적기금 운용의 전문화 문제를 가까운 시일 안에 해결해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 인력을 어디서, 어떻게 구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주 닐슨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U.C.버클리대 금융공학 석사, 피츠버그대 통계학 석·박사. 베어스턴스, JP모건, 씨티은행 퀀트 채권트레이딩 최고책임자 역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전 대표.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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