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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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거대한 투자은행(IB)에는 다양한 직종에서 많은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다양하고 많은 투자은행 직원 중 트레이더의 수는 상당히 적다. 투자은행에는 여러 종류의 직책들이 있다. 이 중 흔히 세일즈(sales)라 불리는 직책이 있다. 다른 산업에서처럼 말 그대로 ‘영업’을 하는 직책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개인 고객을 상대로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상대는 주로 대형 투자자인 기관이다. 기관 고객들을 상대로 주식이나 채권 또는 다른 금융상품들을 사고팔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이 같은 금융상품 중개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통해 회사에 수익을 안겨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다른 산업계의 기업들처럼 지역과 고객별로 영업에 대한 책임이 나눠져 있다.

월스트리트의 아주 비싼 임금을 생각하면, 세일즈맨 한 명이 최소 몇 개의 기관 고객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한 명의 세일즈맨이 기관 고객 여럿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함께 일하던 중국인 여자 동료가 있었다. 통상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플로어는 축구장 크기만 한 면적에 200~3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일한다. 대부분이 남성이고, 여성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은 당연히 눈에 띄게 돼 있다.

그런데 트레이딩 플로어 속 이 중국인 여자는 분명 트레이더는 아닌 듯 보였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1년에 한두 번 말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투자은행 최고 경영자들까지도 그녀의 자리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걸어왔다.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그런 그녀를 한 미팅에서 소개받았다. 그녀는 중국 SAFE(국가외환관리국)를 담당하는 세일즈 담당자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중국의 SAFE 하나를 담당하는 그녀를 전무급으로 모셔 오기 위해 필자가 일하던 회사에서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중국의 SAFE는 자신들의 움직임에 대한 비밀 엄수를 절대적으로 원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서 SAFE의 존재감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SAFE는 중국 중앙은행격인 인민은행 산하로 있다. 중국 재정부 산하에는 CIC(중국투자공사)가 있다. 2015년 현재 SAFE는 4500억달러를, CIC는 6500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원래 SAFE는 중국의 외환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최근 투자를 담당하는 CIC의 권한들이 SAFE로 옮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SAFE와 CIC는 다른 나라들이 운용하고 있는 국부펀드와는 상당히 다르다. 다른 나라의 국부펀드들이 매우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이 두 기관은 중국 정부의 의지대로 움직이다. 우선 그 성격이 중국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전략적이고 거시경제적인 정책 안에서 운용될 수밖에 없다.

중국 국영투자사들 월가 인재 영입 혈안

SAFE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외환보유고를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SAFE가 최근 들어 파격적인 매니저 고용으로 월스트리트와 세계 투자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 미국의 가장 큰 채권펀드를 떠난 주창홍(Zhu Changhong)이 좋은 예이다.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사 핌코(PIMCO)의 채권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그가 2010년 SAFE의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는 최고매니저로 영입됐다. 당시 SAFE로 옮겨간 주창홍은 월스트리트저널 등 각종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주창홍은 미국 언론에서 ‘중국의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불렸다.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SAFE로 자리를 옮긴 후 내보인 성과는 세계 자본시장에서 SAFE의 위상을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SAFE를 주목받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그가 지난해 이곳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SAFE는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중국인 매니저를 상당수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연금의 고위 운영자 중 한 명인 자산배분 책임자를 스카우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투자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SAFE의 투자 스타일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2년 이후 SAFE는 전 세계 곳곳에서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많은 공적기금들은 금융·투자시장에서 좋은 경험을 쌓은 최고의 인재들을 최고투자책임자(CIO)나 투자 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매니저로 고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영입 대상이 되는 금융 인재들 상당수가 공적기금을 자신의 이력 관리용으로 활용하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거대 자금을 운용해온 공적기금 경력을 토대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반 금융(투자)사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우는 미국과 유럽의 공적기금들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공적기금에서 일하던 인재들의 이탈 현상이 이들 인재들만의 탓이 아니다.

이들이 공적기금을 떠나는 공통된 이유가 있다. 공적기금들의 조직 내 비효율성 문제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공적기금 내 조직 간 힘 겨루기 같은 ‘정치’ 문제다. 임금 체제 역시 이들 인재들을 붙잡기에는 문제가 많다.

세계 최고의 금융 인재들을 공적 영역에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이 같은 인재들을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또 너무 짧게 정해진 임기 때문에 놓쳐 버리는 상황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영주 닐슨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U.C.버클리대 금융공학 석사, 피츠버그대 통계학 석·박사. 베어스턴스, JP모건, 씨티은행 퀀트 채권트레이딩 최고책임자 역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전 대표.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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