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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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금융시장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한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사적인 모임에서는 투자 등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개인들의 투자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대해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크게 두 가지다. 그런데 이 두 조언이 사실은 뻔한 것일 수 있다. 이 두 내용을 보면 이렇다. 첫째는 ‘현재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주식은 웬만하면 보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속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칫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특히 임원으로 있다면 더 그러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실업자가 될 확률이 커진다. 또 보유하고 있는 회사 주식의 자산 가치가 낮아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짧은 시간 안에 ‘대박’을 낼 주식 투자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지 말라’는 것이다. 최소 5년 정도 투자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찾아 자산을 배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사실 이 정도 이야기는 국내외 언론 이곳저곳에 정말 많이 나오는, 어찌 보면 식상한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이 두 내용만큼 투자 성과를 증명해 준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투자 조언은 자산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키면서, 좀 더 장기적 시각으로 자산의 증가와 투자 성과를 올리려는 투자자를 위한 것이다. 사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 같은 투자 목표를 갖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만이 아니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운용하는 각종 공적 연기금들의 투자 목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연기금들 주식 위험 감수하며 중장기 투자

전 세계 상당수 공적연기금들이 이 두 투자 원칙에 맞춰 운용되고 있다. 조금 더 세밀히 보면 이렇다. 첫 번째 규칙을 따라 ‘자국 내에서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공적기금도 있다. 대체로 규모가 큰 연기금들이 자국 내 투자를 많이 제한한다. 개인 투자자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참고로 국민연금은 한국 시장의 약 9%에 이르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다.

두 번째 규칙인 자산배분에 대해서는 전 세계 공적연기금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차이는 주식보다 안전한 자산이라 여겨지는 채권 투자의 비율에 의해 발생한다. 2015년 국민연금 자금운용본부에 따르면, 한국 국민연금의 연간 자산배분 계획은 채권이 57%, 주식 33.6%, 그리고 대체투자 11.5% 등으로 이뤄져 있다. 또 채권은 52.9%를 국내 채권에, 4%를 해외 채권에 배분해 투자한다. 주식은 국내 주식 20%, 해외 주식 11.6%로 배분된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타워스왓슨(Towers Watson)의 2015년 공적연기금 조사를 보자. 공적연기금 규모가 가장 큰 7개국(스위스, 호주, 미국, 영국, 일본, 네덜란드, 캐나다) 중 전체 투자자산 중 채권의 평균 배분율이 가장 큰 나라는 일본(57%)이고, 호주(15%)가 가장 적은 배분율을 보인다. 이 채권의 배분율만 봐도 전 세계 공적연기금의 최근 3~5년간 투자 성과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3~5년간 상대적으로 높은 실적을 낸 개별 연기금들은 노르웨이은행투자위원회(NBIM),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 등이 대표적이다. 채권 배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오히려 총자산의 50~60%를 주식에 배분하고 있다.

총자산의 50~60%를 주식에 배분한 이들 공적연기금은 높은 수익을 위해 위험을 무시해 온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NBIM, Calpers, CPPIB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린 공적연기금들 역시 안정적 펀드 운용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이 공적 연기금들은 공통적으로, 중장기적 주식 투자 시 리스크의 가치가 오히려 수익률로 전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중장기 투자 시 주식의 위험 대비 수익률이 채권보다 훨씬 높다는 의미다. 물론 이 같은 투자로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투자 초기 일시적으로 수익률이 하락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막연히 리스크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니다. 투자 시 리스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와 이 요소들의 변화 사이클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들 요소를 포트폴리오 안에 포함하는 것으로 중장기적 수익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NBIM이나 CPPIB 등의 공적연기금들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때 주식에 배분한 자산에서 상당한 손실이 발생했고, 이 손실을 모두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손실은 2009년 이후 빠르게 회복됐다. 2010년부터 다시 수익을 올리며 투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의 연기금은 어떨까. 국민연금을 보자. 국민연금은 2000년 25조원에서 2015년 500조원에 이르는 규모로 커졌다. 투자자산의 규모가 이렇게 커지는 과정에서 주식 투자에 대한 배분을 늘리고 있다. 2000년 약 11%이던 주식 배분율이 2015년 약 35%까지 높아졌다. 사실 2000년 이후, 국민연금의 평균 성과 역시 다른 나라 연기금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2000년 1월 10일부터 2015년 11월 20일까지 코스피는 200%의 수익을 올렸고, 미국 S&P는 약 130% 정도 높은 수익률 성과를 냈다. 수익률 비교 범위를 좁혀 보자. 2010년 11월 26일부터 2015년 11월 20일까지, 코스피는 약 2.5%, S&P는 74.14%의 수익을 냈다.

지난 5년간 코스피와 S&P 500, 이 두 주가지수의 수익률 차는 한국과 해외 주식시장의 성과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통해 지난 몇 년 국내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낮아진 수익률 극복을 위해 국민연금은 총 투자자산 중 해외시장 투자자산의 비중을 상당히 늘렸다. 국내 채권과 해외 채권의 전체 시장을 비교해도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

사실 거대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이 자산배분 구조를 어느 날 갑자기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와 연기금의 투자 목표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연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과 개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투자 성과는 어떻게 자산을 배분할지에 대한 확고한 의사 결정 체계와 그 결정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전문 투자가도, 거대 자본인 연기금도 마찬가지다. 확고한 의사 결정 체계와 결정에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해 정교한 리서치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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