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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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과 관련해 2015년 대중에게 친숙하게 떠오른 말 하나가 있다. ‘핀테크(Fintech)’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이 합쳐진 말이다. 영국의 유명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 의하면, 2013년 불과 4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핀테크 관련 펀딩이 2014년에는120억달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또 JP모건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2014년 연간 리포트를 통해 “실리콘밸리가 온다”라며 월스트리트에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 지금 월스트리트에는 너드(nerd)로 불리는 청바지를 입은 실리콘밸리의 IT 천재들이 몰려오고 있다.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인재들이 월스트리트로 몰려온 게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수학적 지식이 풍부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은 주로 월스트리트의 리서치 분야와 트레이딩, 그리고 IT 분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과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를 이전의 그것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트레이딩에 활용한다. 투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찾아내기 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렇게 발견해낸 요소들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재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트레이딩에 활용할 IT 인프라를 구축한다. 퀀트(Quant)라 불리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건너온 IT 인재들은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불과 몇 초 사이에 매매 의사를 결정하는 초단타 매매(High Frequency Trading) 분야까지 만들어 냈다. 또 결과적으로 이 매매 기법을 기반으로 한 거대 기관투자가들도 만들어졌다.

월가로 가는 실리콘밸리 IT 인재들

몇 년 전만 해도 월스트리트의 기술 혁신과 투자는, 이 같은 IT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데이터 처리 회사들이 생겨났다. 또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 FIX(금융 기관들 간 데이터 송수신 표준 프로토콜)나 API(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간 통신에 사용되는 컴퓨터 언어 형식)라는 프로토콜을 제공하고 있다. FIX나 API는 시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고, 이를 시장에 직접 연결해 거래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또 이러한 거래 결과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는 스크린을 통해 정보를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초단타 매매(HFT)처럼 100% 프로그램에 의해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종의 규칙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방법들이 월스트리트에 보편화되면서 급기야 기관을 넘어 개인투자자에게까지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개인투자자도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능하면 집에서 증권회사가 제공하는 API를 통해 초단타 매매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같은 거래를 하는 데 필요한 비용 역시 매우 저렴하다.

지난 10여년간 주식뿐 아니라 외환과 채권에 이르기까지 투자와 관련된 거의 전 분야에서 트레이딩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돼 왔다. 하지만 최근의 핀테크는 ‘트레이딩 기술’에서부터 ‘결제’와 ‘자산관리’ 등 금융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핀테크의 영향력이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월가 금융인 영입하는 실리콘밸리

첫째, 은행산업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던 대형 은행들과 실리콘밸리에 시작된 스타트업들의 관계가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들 사이에선 새로운 금융 관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처음에는 기존의 대형 은행들의 기득권을 깨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이들 스타트업에 그리 좋은 결과를 주지 않았다. 2015년 상장한 핀테크 기업 ‘Lending club Corp’을 보자. 상장 후 지난 1년 동안 Lending club Corp의 주가는 50% 정도 하락했다. Lending club Corp뿐만이 아니다. 최근 상장된 금융 결제 기업인 ‘Square Inc’ 역시 주식 상장(IPO) 가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같은 이유에 더해 또 다른 이유들이 겹치며, 결국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분위기는 기존 대형 은행들과 경쟁하기보다 함께 일하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둘째, 많은 핀테크 기업이 월스트리트의 경영자들을 최고재무담당자나 재무담당 자문으로 영입하고 있다. 본드 스트리트라는 곳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소규모 사업 대출을 해주는 핀테크 기업이다. 올해 대형 은행 경력만 20년 이상인 제리 와이즈(Jerry Weiss)를 영입했다. 개인 대출 핀테크 기업인 ‘어니스트’ 역시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 중 한 곳인 바클레이즈의 최고리스크관리자(CRO)를 데려왔다. 이들 핀테크 스타트업이 월스트리트의 금융인을 스카우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핀테크 역시 금융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사이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금융 환경에서 경험을 쌓은 금융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20~30년 이상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월스트리트에 질려 버린 금융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어하는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지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가 1200명에 이르는 인력을 구조조정했다. 구조조정 대상에는 일반 직원들과 함께 트레이더들까지 포함됐다. 이 중 470명은 채권과 상품 관련 분야 인력들이었다. 최근 몇 년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분야다. 또 주식이나 외환에 비해 기술적 요소들이 잘 융합되지 않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파괴적이리만큼 혁신적인 금융 기술은 오래된 기존 금융에 익숙한 월스트리트 뱅커들에게 분명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이 투자와 수익을 위해 실리콘밸리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기업들 역시 월스트리트의 금융 경험을 갖고 싶어한다. 금융과 기술의 동거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최근의 시장 흐름이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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