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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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당신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비이성적일 수 있다.” 2016년 1월 초부터 벌어지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한 이 말이 떠오른다. 1월 셋째 주, 국제유가는 1배럴당 30달러대가 깨지며 20달러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셋째 주 목요일, WTI(서부텍사스 중질유)는 1배럴당 26달러까지 내려갔다. 다음 날인 금요일 32달러대로 반등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불과 18개월 전만 해도 국제유가는 100달러대를 유지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것 역시 이성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못 된다. 원유 1배럴을 100달러 이상 가격에 거래한 것 자체가 합리적이거나 똑똑한 결정은 아니다. 합리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1배럴당 100달러라는 원유가는 미국 등 비OPEC 국가들이 원유 생산에 뛰어들게 한 원인이 됐다. 또 석유가 아닌 다른 대체에너지 개발에 세계 각국이 힘을 기울이게 만든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년여 사이 세계 원유시장은 그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다.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합리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원유가격이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1배럴당 30달러라는 원유가는 석유가 아무리 많다 해도 이 시장을 지탱하기 힘든 가격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원유시장은 지금이 바닥 상태일까. 그리고 가격 반등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사우디는 원유 생산·공급량을 줄일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원유가격, 바닥이라 하기엔 아직

원유가격이 정말 바닥을 쳤다면, 그 바닥을 알려주는 여러 신호들이 세계 경제 여기저기에서 나타나야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원유 공급량의 감소 추세가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시장이라는 게 항상 이성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1월 셋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 세계 원유가가 반등했다. 그날 원유시장의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1주(週)당 400만배럴일 것으로 예측됐다. 이전까지 예측치이던 280만배럴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같은 날 리비아의 원유 생산 (또는 정제) 시설이 IS로부터 공격받기는 했지만, 석유 공급량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시장의 반응은 그날 새로 나온 정보와는 거의 무관한 반응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세계 곳곳에서 석유와 관련된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또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긴 이 기업들의 부실 채권 역시 곳곳에서 등장해야 한다. 사실 석유 관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조금씩 징조가 보이고 있다. 경비 절감과 대규모 인력 감축을 시작하고 있다. 세계적 원유 송유관 기업인 킨더모건(Kinder Morgan)이 경비 절감을 발표했다. 원유 생산비가 낮은 것으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원유 중심지인 스타방게르(Stavanger)의 식당들은 꽤 오래전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 등 서방과의 무역 제재가 풀리고 있는 이란까지 석유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이란이 서방의 제재가 풀린 이후 처음으로, 세레나(Serena)로 불리는 이란의 수퍼탱크(이란산 원유)가 1월 28일 이전에 한국의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이란은 오랫동안 이어진 서방 제재의 영향으로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당분간 원유 등 석유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국제 원유시장은 당분간 비이성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비이성적 시장 꽤 오래 지속될 듯

국제 원유시장 이외에 다른 시장도 상당히 오랫동안 비이성적인 상태에 빠졌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반도체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다. 때문에 세계 원유 수요를 말할 때 중국 경제의 영향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중국이 원유보다 더 많이 수입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칩’, 즉 반도체다. 그러니 반도체시장에서 중국 경제의 영향력은, 원유시장에서 나타나는 중국 경제의 영향력 그 이상이다.

반도체는 이제 전자제품 속 부품으로 볼 것이 아니다. 원유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원자재라 여겨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2000년대 세계의 반도체 생산자들, 특히 메모리칩 생산자들은 지금 원유시장의 기업들처럼 시장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경쟁은 2010년이 될 때까지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삼성전자 등 소수의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하며 경쟁을 벌였다. 반도체산업 자체가 큰 인프라와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시장에서 경쟁하던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니 이 기간 동안 많은 기업에서 손실이 발생하게 됐던 것이다. 결국 경쟁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원유시장 역시 반도체시장이 경험했던, 또 현재 경험하고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 주도권과 점유율을 놓고 시장 경쟁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가격과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비이성적 시장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쟁이 지속될 순 있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손실이 커지고, 커진 손실을 부담하기 힘든 상황을 맞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은 다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움직인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을 정상화시킨다. 연초부터 국제 원유시장이 혼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합리적 시장의 모습을 찾아가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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