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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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에 필자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인공지능의 한 분야로 컴퓨터가 스스로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기술)의 한 분야인 인공지능회로망의 알고리즘과 관련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잠깐 소개하면 이 알고리즘의 일부를 바꾼 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주식 중 다음 분기 수익이 좋을 것 같은 주식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월스트리트 취업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이 논문 말고는 보여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학원을 다니다 만난 미국인 친구 한 명이 과학적 투자(Scientific Investing)로 유명한 자산운용사 중 한 곳인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Barclays Global Investor)에 이미 취업을 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의 영문 이력서를 손봐 주겠다던 이 친구가 “이력서에 인공지능, 머신러닝 같은 말이 들어가면 월스트리트에서 취업은 할 수 없다”며 이 표현이 있는 곳마다 빨간줄을 그어 버렸다. 그리곤 인공지능, 머신러닝 같은 표현들을 무엇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두리뭉실한 단어들로 바꾸어 버렸다. 아무튼 필자는 결국 취업을 하기는 했다. 필자의 친구가 이력서에 있던 ‘인공지능, 머신러닝’ 같은 말들을 모두 지워버려서 취업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월스트리트에서 대세는 분명 이 같은 것들은 아니었다는 게 확실하다. 그런데 15~20년이 지난 지금 세계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이 상당히 각광받는 분야가 돼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도 참 많이 변했다.

로봇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

과학적 투자 분야에서 일하며 두 가지를 힘들게 배웠다. 첫 번째는 아무리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투자를 하더라도 알고리즘이 시장과 투자의 기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들어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은 이 알고리즘이 실제로 쓰이기 전까지 지겨우리만큼 끊임없이 리서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료들이 ‘죽은 말 계속 패기(beating a dead horse)’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 그대로다. 미국에서도 명문대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때로는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대학교수 생활까지 하다 온 사람이 월스트리트에서 1년 내내 거의 매일 딱 한 가지를 증명해 내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언가 하나를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지 않고는 ‘죽은 말 계속 패기’라는 표현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듯싶다.

투자 의사결정을 알고리즘, 즉 로봇(robot)을 통해 하는 데는 큰 장점이 하나 있다. 인간의 두뇌를 로봇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는 로봇이 가진 강점이다. 로봇은 이미 정해진 정확한 규칙에 의해 투자에 나선다. 때문에 투자자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철저히 일관된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로봇이 이 같은 투자를 계속 하도록 놔두는 것은 인간이다. 로봇의 실적은 매시간·매일·매분기, 그리고 매년 투자 수익률이라는 성적표로 정확히 나타난다. 문제는 수익률이 신통치 않았을 때 인간이 로봇을 계속 개조하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을 계속 개조하면 지금 이야기한 알고리즘에 의한 투자 의사결정의 강력한 장점인 일관된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어렵다.

로봇이 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게 두고 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이다. 알고리즘으로 시장과 투자의 기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알고리즘을 끊임없이 리서치하고 확인해서 맞다는 확신이 있을 때이다. 이럴 때만 인간은 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이 하고 있는 일을 두고 볼 수 있다. 이것만이 인간에게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로보 어드바이저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 이야기가 한창이다. 미국의 경우 로보 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자산이 2012년 불과 10억달러였던 것이 2015년 말 약 120억달러로 추정될 만큼 증가했다. 찰스슈왑(Charles Schweb)과 뱅가드(Vanguard) 등 많은 금융사들이 그들 고유의 로보 어드바이저를 선보이고 있다. 각 금융사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들이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로보 어드바이저들은 정해진 투자 대상들이 있고, 그 안에서 투자자의 목표 수익률과 리스크 감내 정도를 분석해 다양한 투자 자산을 선택하게 해 준다.

투자자에게 있어 로보 어드바이저를 고르는 것도 펀드매니저를 고르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투자 대상의 폭이 얼마나 넓은 것인지이다. 자기 회사에 유리한 상품만 잔뜩 가져다 놓은 로보 어드바이저는 선택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쉽게 나타날 것 같다. 최근 투자자들의 자산 배분에서 가장 효율적인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ETF(상장지수펀드)다. 그런데 자기 회사 ETF만 투자 대상에 잔뜩 올려놨다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고려도 해 봐야 한다. 물론 일반인이 이해하고 있지 못한 내용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보 어드바이저를 내놓는 회사들은 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로보 어드바이저 회사들이 알고리즘이 비밀이라는 이유로 설명을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투자와 관련한 알고리즘이 애초부터 말 몇 마디만으로 베낄 수 있을 만큼 쉬운 것이라면 아무도 로보 어드바이저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흘러 현재 소개되고 있는 로보 어드바이저들의 투자 실적이 쌓이면, 이에 대한 비교가 가능해질 것이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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