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이 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photo AP·뉴시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이 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photo AP·뉴시스

남아메리카에 아르헨티나가 있다. 아르헨티나 하면, 마라도나와 메시로 대표되는 축구와 함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마돈나가 부른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가 떠오른다. 이 노래는 원래 1976년 줄리 코빙턴에 의해 뮤지컬 ‘에비타(Evita)’의 주제곡으로 레코드됐다. 하지만 이보다 1997년 마돈나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 ‘에비타’를 통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이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는 아마도 라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법하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Juan Peron)의 두 번째 부인으로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Eva Peron)을 지칭하는 스페인식 애칭이다.

에비타와 국가 부도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된 이후, 에바 페론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크게 옹호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다. 비공식적으로 노동부 장관 역할을 했고, 1951년에는 부통령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다. 자궁암으로 33살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가 죽은 이후에도 아르헨티나에서 그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여전했다. 1980년대 이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책과 영화, 뮤지컬 등이 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며 오히려 사후에 세계적인 인물이 됐다.

뮤지컬과 영화 ‘에비타’는 아르헨티나가 대중에 알려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에서 아르헨티나는 부도국가로 매우 유명하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경기순응적 재정정책(pro cyclical fiscal policy)과 확장적 외환차입정책(extensive foreign borrowing)으로 인해 결국 외환위기와 국채(國債) 부도의 위기가 발생했다. 이 여파는 아르헨티나 은행들마저 부도 위기로 몰아넣었고, 2001년 12월 급기야 930억달러에 이르는 국채 부도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국채 부도 선언 이틀 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사임했다. 2001년 당시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지며 아르헨티나는 한 해 동안 무려 4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을 만큼 혼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 상황이 정치적 혼돈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에 대출을 해주고 있던 IMF마저 이를 중단했다. 아르헨티나로서는 외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사실상의 모든 방법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제외된 나라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지난 15년간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채권자들과 끊임없이 협상을 벌여 왔다. 이 협상을 통해 채권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왔고, 지난 2월 말 46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4개의 헤지펀드에 갚기로 했다. 이 채무상환 약속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비로소 세계 금융시장에 복귀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채무상환과 관련해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채무상환 결정으로,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한 것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 Management)가 400%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고 한다. 다른 헤지펀드 하나는 무려 900%에 달하는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4월 19일, 15년 만에 처음으로 165억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복귀했다. 이 같은 국채 발행 규모는 이머징마켓의 채권 발행 규모 중 가장 큰 것이다. 아르헨티나 국채 발행 당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요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원래 발행하려던 규모보다 더 많은 국채를 더 낮은 이자율에 발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1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을 만큼 그동안 아르헨티나는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투기등급을 받아왔다. 그런데 15년 후 아르헨티나의 국채가 갑자기 이렇게 인기가 좋아진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혁이 필요한 이유

이것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긍정적 견해나 예측 때문이 아니다. 이미 마이너스금리 권역에 들어간 일부 유럽국가와 일본, 그리고 “조심스럽게 금리를 올리겠다”는 미국 중앙은행 Fed의 움직임에,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좀 더 위험한 자산을 찾아 수익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아르헨티나 국채의 인기를 끌어 올렸다는 게 월스트리트의 일반적 견해다.

하지만 ‘돈이 갈 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 국채에 몰렸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당시 아르헨티나 국채를 사들인 투자자들 중에는 세계적 연기금과 국부 펀드들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마크리가 대통령이 된 후 그는 미국 달러에 페깅돼 있는 아르헨티나 화폐 페소를 포함해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언급하며 개혁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해 12월 그가 자본통제 제도를 없애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1달러당 10페소이던 아르헨티나 페소가 1달러당 14페소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대통령이 된 지 5개월에 불과하지만, 2001년 이후 15년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던 전 세계 채무자들과의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했고, 아르헨티나를 국제 금융시장으로 복귀시켰다. 이것을 단초로 아르헨티나 기업들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등지의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를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앞으로 지금의 상황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지속시켜 줄 수 있을지 투자자들이 계속 지켜봐야 할 듯싶다. 그럼에도 투자 세계의 시각에서 아르헨티나가 현재 보여 준 첫 성과는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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