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선 불출마를 발표한 후.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선 불출마를 발표한 후. ⓒphoto 뉴시스

2017년 2월 1일 오후 3시30분, 대선주자 지지율 2위에 있던 반기문(72) 전 UN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곤 ‘대선 불출마’를 발표했다. 정치권 전체가 반씨의 불출마 발표와 함께 혼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반씨의 “불출마” 한마디에 정치권보다 더 아수라장이 된 곳이 있다. 주식시장이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2016년 한국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주식이 ‘반기문 테마주’다. 사실 여부를 떠나 ‘반기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해당 기업 주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정상적으로 폭등했다. 이런 비정상적 급등에 ‘작전세력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수시로 시장에 떠돌았을 정도다. 이런 위험 경고가 울렸지만 반기문 테마주에 빠져든 개미들은 그저 ‘수익을 내지 못한 이들의 질투쯤’으로 여겼을 뿐이다. 오히려 비이성적으로 폭등하는 반기문 테마주들의 주가가 ‘한 방’을 좇는 성향이 강한 개미들을 더 강렬하게 유혹했다. 특히 반기문씨 형제와 친인척 등 반씨 일가와 관련된 몇몇 기업들은 소위 ‘핵심 반기문 테마주’로 부상해 대박을 꿈꾸는 개미들을 끊임없이 끌어모았다.

지난 한 해 이렇게 끓어올랐던 반기문 테마주 열풍은 올 1월에도 이어졌다. 특히 1월 12일 반씨가 미국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 대선후보 행보에 나서자 반기문 테마주 열기는 절정을 향했다. 한국에 돌아온 날부터 반씨가 각종 논란과 의혹을 양산해내며 지지율마저 추락했지만, 주식판 개미들의 반기문 테마주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半의半 토막 난 반기문 테마주 속출

그랬던 반기문 테마주가 2월 1일 비참하게 ‘사망’했다. 반씨의 갑작스러운 ‘대선 불출마’ 발표로 다수의 개미들이 순식간에 몰락해 버렸다. 2월 1일 이후 대선판에 반기문의 이름이 사라지자 몇몇 반기문 테마주들의 주가가 순식간에 반 토막을 넘어 반의반 토막 이상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개미들 중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반기문 테마주를 제대로 팔지조차 못해 손실을 키운 이들도 있다. 이미 생명을 다한 테마주를 사겠다는 매수자가 많지 않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기문 테마주 등 대선후보 테마주 대부분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래가 매우 적다는 특징이 있다. 거래량의 80~90% 이상을 개인 투자자들끼리 사고파는 것이다. 반기문 테마주는 이 정도가 심각했다. 지난 1년간 거래된 대부분의 반기문 테마주들은 총 거래량 중 94~97% 이상을 개미들끼리 서로 사고팔았다. 기관과 외국인이 철저히 외면했던 반기문 테마주에 개미투자자들만 뛰어들어 자신들끼리 묻지마식 폭탄 돌리기를 해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건전성, 실적, 안정성 등 기업 가치 평가와 분석은 사실상 무시됐다.

반기문씨의 대선 불출마 발표 시점 역시 개미들이 반기문 테마주 매도 시점을 잡기 힘들게 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가 자청한 기자회견 시점이 묘하게도 주식시장 거래 마감을 앞둔 3시30분 전후였다. 개미들은 물론 세력 등 반기문 테마주 대량 보유자 그 누구라도 그날 정규 거래시간에 매도 시점을 잡기가 사실상 힘들었던 것이다. 2월 1일 장이 끝나자 시간외 거래에서 반기문 테마주 투자자들의 ‘팔겠다’는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2월 2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상당수 반기문 테마주가 하한가로 추락했다. 이날 개미들이 내던진 매도 잔량만 폭발적으로 쌓였을 뿐 거래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박 꿈’에 젖어 있던 반기문 테마주가 ‘개미지옥’으로 돌변한 것이다.

2월 1일 3시30분 이후. 반기문 테마주들의 구체적인 상황은 어떨까. ‘에스와이패널’은 주식시장에서 핵심 반기문 테마주로 불리던 대표적 주식이다. 우레탄 등을 이용한 샌드위치 패널과 보드 등 건축 외장자재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지난해 7월 초만 해도 수정주가를 기준으로 주가가 7000~8000원대를 오갔다. 이것이 7월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승하던 에스와이패널 주가 급등에 기름을 부은 게 바로 반기문씨 일가다. 당시 반기문씨는 친박근혜(친박) 측 지원으로 유력 대선후보로 계속 거론됐다. 특히 2016년 9월, 에스와이패널 측이 반기문씨의 동생 반기호씨에게 갑자기 부회장 자리를 내줬다. 주식시장에서 반기문씨 동생 반기호씨는 정치인 테마주와 엮여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자신이 부회장이던 ‘보성파워텍’을 대표적인 정치인 테마주로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그런 반기호씨가 보성파워텍을 그만두고 바로 에스와이패널 부회장으로 등장했고, 뒤이어 에스와이패널의 주가가 폭등한 것이다. 순식간에 에스와이패널이 반기문 테마 대장주가 됐다. 7월 수정주가 기준 7000~8000원 정도였던 주가가 10월에는 무려 4만900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 1월 중순까지도 3만6000원대를 오르내렸다.

지난 1월 14일 충북 음성 ‘꽃동네’. 자신만 턱받이를 한 채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음식을 먹여 논란을 일으켰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4일 충북 음성 ‘꽃동네’. 자신만 턱받이를 한 채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음식을 먹여 논란을 일으켰다. ⓒphoto 뉴시스

동생 반기호·외조카 장모씨 관련 주식 폭락

기자는 2016년 2월 1일부터 반기문씨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2017년 2월 1일까지 1년 동안 에스와이패널 주식을 누가 얼마나 사고팔았는지 확인해 봤다. 놀랍게도 이 주식의 전체거래량 중 96% 이상(거래금액 기준)이 오로지 개미들끼리의 매매였다. 기관과 외국인의 에스와이패널 주식 거래량은 모두 합해도 약 3%밖에 안 됐다. 개미들은 이 주식을 사기 위해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을까. 2016년 2월 1일부터 2017년 2월

1일까지 1년간 거래된 에스와이패널 주식의 매수금 총액은 2조3085억3361만원 정도다. 이 중 개미들이 쓴 돈만 무려 2조2177억4115만원에 이른다. 이 주식 전체 매수금 중 무려 96.18%의 돈을 개미들이 쏟아부은 것이다. 에스와이패널 주식이 100주 거래됐다면 96주를 개미들끼리 사고팔았다는 의미다. 이런 에스와이패널의 주가가 2월 1일 이후 폭락했다. 1월 중순만 해도 3만6000원대이던 주가가 2월 7일 1만6300원까지 추락했다. 반 토막 이상 주가가 추락한 것이다. 2월 15일 현재 주가는 1만9500원이다.

핵심 반기문 테마주로 꼽혔던 지엔코 역시 반씨의 불출마 발표 후 개미지옥이 된 주식이다. 지엔코도 반기문씨 일가와 관련된 기업이다. 캐주얼 의류를 만들어 파는 지엔코의 대표이사가 반기문씨의 외조카 장모씨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실적과 경영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다. 지표가 이를 보여준다. 2015년 연결기준 영업적자 2000만원, 영업이익률 -0.02%였다. 지난 2월 8일 나온 2016년 잠정실적 역시 ‘투자자산의 지분법 손실 증가’를 이유로 당기순손실이 42억8200만원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12월 30일 1410원에 불과하던 주가는 5월 2000원대, 6월 3000원대로 오르더니 9월 반기문 대선 테마를 등에 업고 무려 7500원대로 폭등했다. 12월에는 8950원까지 폭등했다. 또 반기문씨의 한국 귀국 전날인 지난 1월 11일에는 8210원이나 됐다. 이랬던 주가가 반씨의 불출마 발표 다음 날인 2월 2일과 3일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고, 이후 주가 폭락세는 크고 무섭게 이어졌다. 불출마 선언 불과 9일 후인 2월 10일에는 주가가 2200원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최고 주가 대비 무려 75.42%, 반씨의 한국 귀국 전날 주가와 비교하면 불과 한 달 만에 73.2%나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지엔코 주식을 지난 1년 동안 사고판 이들 역시 대부분 개미투자자다. 기관과 외국인들은 지엔코 주식을 철저히 외면했다. 기자의 확인 결과 2016년 2월 1일부터 반씨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2017년 2월 1일까지 1년간 지엔코 주식을 매수한 97.57%(매수금 기준)가 바로 개미들이었다. 이 기간 거래된 지엔코 주식의 총 매수액은 11조4683억3707만원이다. 이 중 개미들이 무려 11조1893억8200만원어치를 사들인 것이다. 이 주식 100주가 시장에서 거래됐다면 약 98주를 개미들이 사들였다는 뜻이다. 사실상 개미 천국이던 이 테마주에 테마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폭락한 것이다.

개미들만 우글거린 반기문 테마주

성문전자 역시 마찬가지다. 성문전자는 이 회사 오너 신동렬씨의 아들이자 등기이사 겸 3대주주인 신준섭씨와 반기문씨의 친분이 부각되며 주요 반기문 테마주로 자리했다. 국제청년회의소(JCI) 회장이던 신준섭씨가 2000년대 말부터 UN기후변화협약 등에 참석해 반기문씨와 친밀한 관계를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내용이 퍼지며 성문전자의 주가가 급등했다. 연 매출이 400억~500억원에 불과하고 최근 수년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수십억원의 적자에 허덕일 만큼 경영 실적이 부실한데도 주가가 급등했다. 2016년 역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알려질 만큼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부실한 기업 가치조차 반기문 테마주 열풍에 완전히 무시되며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다.

2015년 12월 30일 2835원이던 주가가 반기문 열풍이 본격화된 지난해 5월 7900원대로 수직상승했다. 9월에는 무려 1만4050원대까지 폭등하며 반기문 테마의 대장주로까지 불렸다. 반씨의 한국 귀국 전날이던 올해 1월 11일까지도 주가는 1만원대를 유지했다. 그랬던 주가가 2월 2일 하한가를 맞으며 추락했다. 결국 2월 10일 2815원까지 폭락했다. 지난해 9월 반기문 열풍이 만들어낸 비정상적 최고 주가와 비교하면 불과 4달여 만에 무려 79.96%나 폭락했다. 지난 1월 11일 주가와 비교해도 한 달 만에 주가가 72.27%나 추락했다.

성문전자 역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개미들이 활개 친 주식이다. 2016년 2월 1일부터 2017년 2월 1일까지 이 주식의 총 거래량 중 개미들끼리 사고판 거래량이 무려 97%에 이른다. 지난 1년간 이 주식의 총 매수액이 2조9652억367만원이었다. 이 중 개미들이 이 주식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이 무려 2조8672억1006만원이다. 이 주식의 전체 매수액 중 96.7%의 돈을 개미들이 쏟아부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씨의 출마 포기로 테마주 사망선고를 받자마자 주가가 폭락하며 개미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사실 이들만이 아니다. 역시 전체 거래 중 개미들의 매수 비중이 97%를 훨씬 넘는 ‘광림’ 등 또 다른 반기문 테마주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현재 반기문은 물론 문재인·유승민·안희정·이재명·안철수 등 대선후보로 거론된 이들과 관련된 테마주들이 주식시장에서 판을 치고 있다. 이들 중 반기문 테마주가 가장 먼저 추락했다. 제대로 된 분석·평가 없이 오직 풍문·설·테마에 의지해 대박을 노리는 정치인·대선 테마주 투자의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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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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