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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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위기설’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나서 “위기는 없다”거나 “과장된 이야기”라며 위기설 진화에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국내외 언론과 시장의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4월 위기설이란 대내외 대형 악재들이 4월 한꺼번에 집중돼 한국 경제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위기 시나리오다. 특히 워크아웃설까지 나오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등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몇몇 대기업들의 회사채 상환 위기, 14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 불황에도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악화,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경제 보복 등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각종 악재들이 4월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악재들 가운데 결정적 한 방이 더해지면 4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4월 위기설을 키우고 있는 결정적 한 방은 바로, 한국을 겨냥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신고립주의와 보호주의 색채가 짙어졌다. 특히 미국 기업의 이익과 산업 보호를 내세운 환율 공세가 갈수록 강해지는 상황이다. 거세지고 있는 미국의 환율 공세가 결국 4월 한국을 향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실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게 되면 원료를 수입해 완제품 혹은 반제품을 수출하는 형태의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크다.

4월 드러날 美 재무부 환율정책보고서

미국 재무부는 올 4월 환율정책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환율정책보고서는 종종 무역과 환율 등에서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를 견제·압박하는 카드로 사용되기도 한다. 올 4월 나올 환율정책보고서는 트럼프 집권 이후 첫 보고서다. 이 상징성으로 인해 해당국에 대한 압박 강도가 더해질 가능성도 크다. 4월을 앞두고 최근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중국과 EU는 물론 경제·정치적으로 미국의 우산 속에 있다고 여겨온 일본과 대만, 한국까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동맹으로 불리는 나라들조차 위기설에 휩싸이게 하는 미국의 환율정책보고서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12월 미국 하원이, 2016년 2월에는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법안이 있다. ‘2015 무역 강화 및 무역 촉진법’이다. 이 법안 중 환율과 관련한 ‘BHC수정법안’이 있는데, 바로 이 BHC수정법안에 따라 환율조작이 의심되는 교역국을 미국 재무부가 조사해 환율정책보고서에 담는 것이다. 현재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은 3가지다.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3% 이상 △GDP 대비 2% 이상의 달러 매수 개입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3가지 조건 중 통상 2가지에 해당하는 국가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3가지 조건 모두에 해당할 경우 ‘심층분석대상국’, 즉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심층분석대상국이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미국 정부가 직접 해당국을 제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심층분석대상국, 즉 환율조작국에 대해 저평가된 통화가치 회복과 과도한 무역흑자 시정을 공식 요구하게 된다. 이 요구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미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국가와 미국의 환율 및 교역 상황을 재평가하는데, 이때 상황 개선이 부진하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미국 정부 차원의 제재가 본격화된다. 통상 투자와 조달시장 제한 같은 제재는 물론 미국의 영향력이 큰 IMF 등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압박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만으로도 해당 국가의 기업과 산업은 가격경쟁력 저하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투자여건 악화와 외부자금 조달 등 환율과 유동성 확보에서 불리한 상황을 맞게 된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한국이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이미 지난해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미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이면서 경상수지 흑자 비율 3% 이상 국가에 해당한다. 자유무역 색채를 띤 오바마 행정부에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상황이기에, 보호주의 색채가 뚜렷한 트럼프 시대 미국 재무부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은 사실 중국에 대한 경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싶어한다. 그 강력한 압박 카드가 바로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가 제시하고 있는 환율조작국 기준으로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쉽지 않다. 중국은 현재 ‘대미 무역 흑자가 많다’는 단 한 가지 조건에만 해당한다. 나머지 2가지 조건에서 벗어난 상태다. 이 점을 고려해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한 세부 조건을 수정 또는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미국이 세부 조건을 수정 또는 완화하거나, 중국에 대해 예외적으로 유사 법률을 동원해 환율조작국 지정을 강행할 경우 그 여파가 한국에까지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 중 2가지 이상 포함돼 있는 한국 등 몇몇 국가들이 덩달아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능성은 4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정책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시간 제약상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하지만 막대한 대미무역 흑자를 올리고 있는 중국 등 교역국들에 대해 미국은 4월이 아니라도 언제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끔 유리한 여건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美, 언제든 카드 꺼낼 수 있어

현재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는 상당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대미 무역 흑자가 280억달러에 이른다. IMF의 통계에서는 2015년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이 7.7%나 된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독일·일본과 함께 한국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치다.

올 4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실제 지정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뚜껑이 열려 봐야 알겠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4월에 환율조작국으로 당장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후 언제든 미국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 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한·미 FTA 체결 이후 미국 기준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너무 커져 버렸다”며 “트럼프가 추진하는 보호무역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향후 경고나 보복 성격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4월이 아니라도 향후 수개월간 미국의 움직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한국 정부의 인식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중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경우 한국도 함께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오 교수 역시 “4월 지정을 면한다 해도 (미국의 시각에) 상황 변화가 없으면 향후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일본이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다양한 교역 패키지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대응 카드는 고사하고 대응 방향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가능성만으로도 위기설로 불거질 만큼 한국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다. 올 4월 지정을 피한다 해도 세계경제 질서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언제든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대형 악재다. 지금껏 한국 정부가 보여온 ‘과장됐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듯한 두루뭉술한 입장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대응 카드를 이제라도 구상해야 한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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