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청자동차의 SUV ‘하발H6’. ⓒphoto 바이두
중국 창청자동차의 SUV ‘하발H6’. ⓒphoto 바이두

독일 폭스바겐, 미국 GM과 함께 한때 중국 자동차시장 3강(强)을 형성한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2017년 상반기 전체 자동차 판매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데 이어, 급기야 일부 유럽계 협력사의 부품공급 중단으로 중국 현지 생산공장이 멈췄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중국 시장에 동반진출한 일부 협력업체들이 자금난으로 도산위기에 몰리자 산업은행이 경영안정자금 5500억원, 현대기아차 본사가 긴급자금 2500억원을 편성하는 등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2002년 현대차의 중국 진출 이후 최대 위기다.

한때 중국 자동차시장 3강까지 올랐던 현대기아차의 급격한 추락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단행된 유무형의 보복조치 탓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 7월,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가 경북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직후부터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 급감이 중국 자동차시장 트렌드 변화에 뒤처졌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까지 중국 자동차시장의 차종별 판매대수를 전수조사한 결과는 이런 지적을 숫자로 뒷받침한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력 차종인 소형 세단의 경우 사드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선방했음이 드러난다.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출시 중인 ‘랑동(朗動·구형 아반떼)’은 지난 7월까지 6만9804대를 판매해 30위에 올랐다. 중국형 쏘나타인 ‘밍투(名圖·미스트라)’ 역시 6만5884대를 판매해 33위에 올랐다. 위에나(悅納·베르나)와 링동(領動·신형 아반떼)도 각각 3만8800대, 3만7687대를 판매해 각각 49위와 52위에 올랐다. 이 밖에 기아차가 중국에서 출시 중인 K3는 6만3491대를 팔아 35위, K2(프라이드)의 경우 2만1785대를 판매해 75위에 올랐다. 비록 10위권 안에 드는 세단은 한 대도 없지만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모든 완성차가 무한경쟁하는 중국에서 어느 정도 선방한 것이다.

하지만 SUV시장만 놓고 보면 전혀 사정이 다르다.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출시한 투싼은 지난 7월까지 5만3629대를 판매해 SUV 순위 28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현대차의 중국 전략 SUV인 ix25, ix35는 2만1258대, 1만1549대를 판매해 각각 74위와 100위에 턱걸이했다.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에 비해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아차의 경우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기아차가 출시하는 ‘즈파오(智跑·스포티지)’는 1만4103대를 판매해 94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SUV시장에서 28위에 오른 투싼을 제외하면 모두 하위권으로 밀려나 체면을 구긴 것이다.

중국 자동차시장은 세단에서 SUV로 급속히 옮겨가는 중이다. 중국 토종차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영역도 SUV시장이다. 세단의 경우 아직까지는 중국 토종브랜드 자동차의 약진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지난 7월까지 판매량 1~10위에 드는 세단 중 중국 토종차는 13만195대를 판매해 9위에 오른 지리(吉利)자동차의 ‘디하오(帝豪)’ 한 대가 전부였다.

1~10위 내의 세단 중 폭스바겐은 25만5280대를 판매해 세단시장 1위에 오른 ‘랑이(라비다)’를 비롯해 5대, GM(뷰익), 닛산, 도요타, 포드가 각각 1대씩을 진입시켰다. 그동안 소형세단에서 강세를 보여온 현대기아차가 상위권에 없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아직 중국 세단시장에서만큼은 외산 브랜드의 영향력이 확고한 것이다.

52개월 판매 1위 ‘하발H6’

SUV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지난 7월까지 판매량 1위부터 10위까지의 차종 대부분을 중국 토종차가 싹쓸이했다. 지난 7월까지 26만3872대를 판매해 1위에 오른 중국 토종 창청(長城)자동차의 SUV 브랜드 ‘하푸(哈弗·영문명 하발)H6’를 비롯해 하발이 2대(H6·H2), 광저우차, 지리차, 창안(長安)차, 우링(五菱)차, 룽웨이(영문명 로위)차가 각각 1대씩을 순위에 진입시켰다. 특히 SUV 1위이자 전체 차종 1위를 기록한 창청차의 SUV 하발H6는 2015년 11월 10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무려 52개월째 SUV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덕분에 ‘국민신차(國民神車)’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하발은 창청차의 SUV 전문 브랜드”라며 “이미 3세대 모델이 나왔을 정도로 신뢰성과 기술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했다.

외산 브랜드 차로는 16만1507대가 팔린 폭스바겐 티구안이 3위, 13만2930대가 팔린 GM뷰익 인비전이 6위, 10만4141대가 팔린 혼다의 XR-V가 10위에 오른 데 그쳤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력 SUV인 투싼과 즈파오(스포티지)는 부동의 1위 ‘하발H6’와 같은 체급에서 직접 경쟁하고 있어 판매량 타격이 심각하다.

게다가 중국 SUV시장은 디젤차 위주로 발전한 한국과 달리 가솔린차 위주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중국 환경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국 전체 차량 2억9500만대 가운데, 연료별로 보면 가솔린이 88.5%로 디젤차는 10.2%에 불과하다. 이는 디젤차인 버스와 화물차를 모두 포함한 수치로, 승용 디젤 SUV의 경우 채 1%가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등록 자동차 중 디젤차 비중이 47.6%에 달했다. 그나마 2015년 9월, 폭스바겐의 디젤차 연비조작 사건으로 2015년 한때 52.5%에 달했던 것이 조금 떨어진 수치다.

중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가솔린차는 고급차, 디젤차는 저급차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디젤차에 대한 저평가로 인해 디젤차 보급이 잘 안 되니 부품가격도 가솔린차에 비해서 월등히 비싸다. 미세먼지로 인해 디젤차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결국 이는 디젤차가 주력인 외산 SUV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소형 가솔린 SUV’는 현대기아차가 지금까지 가장 등한시했던 차종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치인샹(北汽銀翔)차가 배기량 1500㏄의 가솔린 SUV ‘켄보600’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겁 없이 도전한 것도 현대기아차의 이러한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중국에서 ‘환수(幻速)S6’란 브랜드로 팔리는 ‘켄보600’은 지난 7월까지 1만5212대를 판매해 88위에 오른 차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말 중국제품개발본부를 출범시키고 중국 상품전략과 제품개발을 합쳤다”며 “사드 위기를 회사 혼자 감당하기에 힘든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대중(對中)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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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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