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 자이 아파트(오른쪽)와 재건축을 앞둔 한신 4지구 아파트. 신축 중인 아파트는 신반포 자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 자이 아파트(오른쪽)와 재건축을 앞둔 한신 4지구 아파트. 신축 중인 아파트는 신반포 자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롯~데 롯데 롯데 롯데 승리의 롯데.”

지난 10월 11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 앞은 잠실야구장을 방불케 했다. 이날 저녁 7시,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 시공사를 선정하는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GS건설과 롯데건설의 임직원과 홍보요원들이 총출동해 ‘1번 자이(GS)’ ‘2번 롯데’를 번갈아 외치며 지지를 호소한 것. 혹시 모를 양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총회장 앞에 배치된 경찰 관계자는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롯데그룹 본사가 있는 123층 롯데월드타워 바로 앞에서 총회가 열린 탓인지 ‘1번 자이’의 목소리는 계속 움츠러들었다. 총회장 주변과 미성·크로바아파트 주위를 도배하다시피한 롯데건설의 현수막도 GS 측을 위축시켰다. 결국 3시간 뒤인 밤 10시경, 총회장 밖으로 ‘롯데 승’이란 소식이 흘러나오자 GS건설 관계자들의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강남3구 아파트 재건축 시장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GS건설이 위기에 몰렸다. 지난 9월 27일, 공사비만 2조6000억원이 걸린 반포 주공 1단지(1·2·4주구)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에 패한 데 이어 지난 10월 11일,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1888가구) 수주전에서도 재건축 시장에서 한 수 아래로 꼽힌 롯데건설에 충격패를 당하면서다. GS건설은 이날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놓고 롯데건설과 맞붙어 총 투표수 1370표 가운데 606표(44%)를 얻는 데 그쳐 736표(53%)를 얻은 롯데건설에 패했다. 지난해 기준 재건축(도시정비) 업계 1위 GS건설이 최근 강남 3구에서 진행된 재건축 수주전에서 맛본 충격의 2연패다.

자연히 관심은 10월 15일 반포 한신 4지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GS건설이 반포를 사수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반포 한신 4지구 재건축은 신반포 한신 8·9·10·11·17차 아파트와 주변의 녹원한신, 베니하우스 등 2640가구를 한데 묶어 최고 35층 3685가구로 통합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GS건설이 지은 랜드마크 아파트 반포 자이 북쪽에 들어서는 아파트로, 반포 자이(3410가구)보다 가구 수가 많고 2개 지하철역(잠원역·반포역)을 끼고 있어 반포의 신흥 랜드마크로 부상하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반포 한신 4지구 재건축을 놓고 GS건설과 또 한 번 맞붙는 상대는 롯데건설이다.

GS건설은 강남 재건축 3연전의 마지막이 될 반포에서 1승이라도 건지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다. 한신 4지구와 접한 지하철 3호선 잠원역, 지하철 7호선 반포역은 이미 GS건설이 부착한 벽면광고와 기둥광고로 도배된 상태다. 잠실에 이어 반포에서 GS건설과 또 한 번 맞붙을 롯데건설도 총력전 태세다. 롯데건설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1년, 반포 주공 3단지(현 반포 자이) 재건축 수주전에서 당시 LG건설(현 GS건설)에 석패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부촌(富村) 반포 입성이 늦어지며 ‘2류 건설사’로 취급받는 설움을 감내해야 했다. GS건설로서는 구원(舊怨)이 있는 롯데건설과 잠실에 이어 반포에서 2연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껄끄럽다.

롯데는 일단 지난 9월 9일, 신반포 13차와 신반포 14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효성과 동부건설을 각개격파하고 콧대 높은 반포에 일단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반포 13·14차는 각각 가구 수가 346가구, 297가구로 500가구 미만의 소형 단지에 불과하다. 강남 3구 대단지 아파트 입성이 절실한 롯데건설로서는 여전히 ‘배가 고픈’ 상황이다. 롯데건설은 잠실에서 업계 1위 GS건설을 꺾은 여세를 몰아 한신 4지구 재건축 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사업장 인근 잠원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잠실 쪽 홍보요원들도 지난주 초부터 대거 반포로 넘어와 지원사격 중”이라고 전했다.

반포의 신흥 맹주 GS건설

GS건설은 그간 반포를 아성(牙城)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GS건설은 지난 9월 27일 반포 주공 1단지 재건축 수주전에서 현대건설과 맞붙어 총 2193표 중 886표를 얻는 데 그쳐 1295표를 얻은 현대건설에 일격을 당했다. 현대건설은 바로 옆동네 고급 민간아파트인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동경하며 살아온 평균연령 74세 조합원의 표심을 ‘현대’와 ‘정주영’을 앞세운 향수 마케팅으로 공략해 GS건설을 물리치고 압구정에서 반포로 서진(西進)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 반포에 있던 현대건설의 아파트는 반포 힐스테이트(397가구)와 잠원 현대훼미리(113가구) 정도에 불과했다. 현대건설이 반포 주공 1단지를 재건축하면 5388가구로 반포 최대 아파트가 된다.

사실 GS건설이 ‘반포 자이’를 앞세워 ‘반포 맹주’를 자처하기 전까지 반포 아파트 시장의 터줏대감은 ‘한신공영’이었다. ‘한신축로(築爐)’라는 무명의 보일러회사였던 한신공영은 1975년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이 강남개발을 위해 아파트만 지어올릴 수 있는 ‘아파트지구’ 제도를 도입한 이래 반포 땅을 집중 매입해 무려 2만여가구의 아파트를 지어올렸다. 지금도 반포 일대에서는 ‘한신’ 브랜드의 아파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림산업이 재건축해 ‘아크로리버파크’(1612가구)로 변신한 신반포 1차를 비롯해 27차에 이르기까지 ‘신반포’라는 이름을 붙인 아파트는 대부분 한신공영이 지어올린 아파트다. ‘구(舊)반포’인 반포 주공 1단지 옆에 있다는 뜻이었다.

반포의 대표적 쇼핑센터도 신반포 한신 4차 아파트 옆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으로 반포는 사실상 ‘한신타운’이었다. 한신공영 계열 유통업체로 출범한 뉴코아는 한신공영 창업주 고 김형종 회장의 맏사위 김의철 전 뉴코아 회장이 만든 유통업체다. 김의철 회장은 장인의 절대적 신임 속에 반포 개발을 주도했고 덕분에 한신은 우성, 한양, 삼호, 삼익, 삼풍과 더불어 대표적 아파트 재벌이 됐다. 잘나가던 한신은 1970년 후반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 붐에 편승해 덩달아 중동에 진출해 고배를 마신 뒤 크게 휘청였다. 결국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으면서 ‘한신타운’ 반포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뉴코아도 외환위기 와중에 부도를 맞았다.

한신공영이 몰락한 틈을 타 새롭게 ‘반포 맹주’로 등장한 것이 GS건설이다. LG건설 시절인 2001년 롯데건설을 물리치고 반포 주공 3단지 재건축을 수주해 ‘반포 자이’를 건립하면서다. 2008년 입주한 반포 자이는 3410가구의 반포 최대 규모의 재건축 아파트다. 실내수영장과 사우나,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춘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자이안센터)와 전 차량 지하통행이라는 혁신적인 설계로 ‘자이’ 브랜드를 각인시킨 GS건설의 대표 아파트다. 한강 조망이 안 되는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반포 최고가를 형성했다. 삼성물산이 반포 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2444가구의 래미안 퍼스티지보다도 가구 수가 1000가구 가까이 더 많아서 환금성도 더 높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 ⓒphoto 이동훈
지난 10월 11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 ⓒphoto 이동훈

브랜드 선호도 1위 ‘자이’의 패배

‘반포 자이’를 앞세운 GS건설은 한동안 재건축 시장의 왕좌에 군림했다. GS건설이 반포 일대에서 반포 한양아파트 재건축인 신반포 자이(607가구)와 신반포 한신 6차 재건축인 신반포 센트럴자이(757가구)를 연달아 지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반포 자이’의 후광이 절대적이었다. 반포 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 수주전도 초기에만 해도 브랜드 경쟁력이 현대건설보다 강한 GS건설이 낙승해 반포에 ‘자이 타운’을 구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GS건설이 반포 주공 1단지 수주전 당시 내건 아파트 브랜드도 ‘자이 프레지던스’였다. GS건설이 한신 4지구에 내건 브랜드도 ‘신반포 메이플 자이’다.

반포를 비롯한 강남 3구의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에서는 GS건설의 ‘자이’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았다. ‘자이’는 GS건설이 LG건설 시절인 2002년 도입한 아파트 브랜드다. 2000년 도입한 삼성물산의 ‘래미안(來美安)’에 비해서는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한류 드라마 ‘대장금’으로 최고주가를 구가하던 배우 이영애를 아파트 모델로 기용해 LG전자와 연계한 홈네트워크 시설과 아파트 커뮤니티를 앞세운 광고로 주부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영애를 7년간 모델로 기용한 자이의 ‘빅모델’ 전략은 적중했다. GS건설은 2004년 LG그룹에서 분가한 이후에도 ‘자이’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파트 시장을 주도했다.

지금도 GS건설의 ‘자이’는 삼성물산의 ‘래미안’과 함께 최선호 아파트 브랜드로 꼽힌다. 지난 8월, 부동산 리서치업체인 ‘닥터아파트’가 강남 4구 주민들을 상대로 아파트 브랜드 선호를 조사한 결과도 GS건설의 자이가 1등을 차지했다. 그 뒤를 삼성물산 ‘래미안’, 대림산업 ‘e편한세상’,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롯데건설 ‘롯데캐슬’이 뒤를 이었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브랜드 사용을 남발해 선호도가 떨어졌다. 일례로 반포 자이 북쪽에 1997년 입주한 113가구 나홀로 아파트인 ‘잠원 현대훼미리’ 건물 외벽에도 ‘힐스테이트’ 마크가 붙어 있다. 현대건설이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임하면서 브랜드 선호도가 경쟁사에 비해 밀리는 ‘힐스테이트’를 포기하고 ‘디 에이치’를 내세운 데는 이런 고민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자이’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GS건설은 ‘이사비 7000만원 무상지원’이란 파격조건을 제시한 현대건설에 허를 찔렸다. 재건축 시장에서는 브랜드 선호도보다 조합원 개개인의 지갑 사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오히려 GS건설은 경쟁사보다 더 큰 ‘당근’을 제시하기보다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패착을 두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까지 나서 반포 주공 1단지 시공사 선정 직전인 지난 9월 21일 “이사비 7000만원 지원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핏 보기에 ‘이사비 7000만원’ 지원 공약을 내건 현대건설 측에 찬물을 끼얹고, 경쟁사인 GS건설 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GS건설은 지난 9월 27일에는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이란 제목의 전면광고도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게재했다. “주택업계 맏형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 단돈 5000원에 불과하더라도 사소한 식사 제공이나 선물 제공 등이 일절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복마전 같은 재건축 수주전의 거품을 없애겠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이사비 7000만원’이 눈앞에서 날아간 조합원들은 GS건설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GS건설 소속 국토부 전관(前官)이 국토부를 움직인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GS건설은 지난해 3월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국토부 장관을 지낸 권도엽 김앤장 상임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바 있다.

허 찔린 청렴 전략

현대건설의 승리 전략을 지켜본 롯데건설 역시 철저히 밑바닥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롯데건설의 승리로 끝난 잠실 미성·크로바 수주전에서도 롯데건설은 5455억원의 공사비를 제시한 GS건설에 비해 무려 759억원이나 낮은 4696억원의 사업비를 제시했다. 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 지원(569억원) 또는 이사비·이주촉진비 지원(4000만원)을 앞세우는 등 조합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심지어 “롯데건설 측 홍보요원들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현금이 든 봉투를 돌렸다”는 제보까지 접수될 정도였다.

롯데는 잠실 개발을 주도한 때문에 잠실의 터줏대감으로 알려졌지만, 재건축 시장에서는 잠실에서조차 존재감이 미미했다. 일례로 잠실 주공 1~4단지 재건축에서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오히려 GS건설이 옛 잠실 주공 3단지(트리지움)를 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과, 주공 4단지(레이크팰리스)를 삼성물산과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시공한 바 있다. GS건설은 재건축 시장의 최대어인 잠실 주공 5단지도 삼성물산·현대산업개발과 공동시공할 예정이다. 이런 판국에 재건축 수주 이익을 최소한도로 낮추더라도 일단 신흥 부촌 잠실에 입성해 건설사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롯데 측의 판단이다.

재건축 업계 1위 GS건설로서는 ‘자이’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위해 브랜드 교체나 저가수주에 나서기도 어렵다. 게다가 “단돈 5000원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자정선언을 자발적으로 하면서 영업활동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반포 주공 1단지 수주전 때와 마찬가지로 국토부가 나서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대납은 안 된다”며 GS건설에 힘을 실은 것도 똑같이 역풍이 됐다. 그렇다고 다 끝난 게임에 경쟁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것도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에 가깝다. GS건설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땅을 한 평(3.3㎡)이라도 가진 조합원이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겠지만, 건설사가 소송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GS의 청렴 전략은 강남 3구 일대의 향후 재건축 수주전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건설은 한신 4지구 수주전을 앞두고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 579억원 분을 무상 시공해준다”며 파격조건을 내건 상태다. 10월 15일 결전을 앞둔 반포 한신 4지구에서조차 “임병용 GS건설 대표가 검사 출신이라 더 많은 당근을 제시하기는커녕 청렴 이미지 구축에만 신경 쓴다”는 조합원들의 볼멘소리도 파다하다. 반포를 비롯한 강남 3구 일대에는 반포 주공 1단지 3주구(2117가구) 등 향후 재건축 시장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전장(戰場)이 여러 곳 남아 있다. GS건설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청렴 수주가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 “현장에 있는 사업부 관계자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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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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