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손잡고 드라마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를 만들 예정인 스필버그 감독. ⓒphoto 뉴시스
애플과 손잡고 드라마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를 만들 예정인 스필버그 감독. ⓒphoto 뉴시스

북한의 미사일 무력시위가 예상되던 지난 10월 10일,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애플의 새로운 변신에 관한 얘기가 무성했다. 화제의 중심에 선 사람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가 애플과 손잡고 10개의 드라마를 만들 것이란 뉴스가 터져나왔다. 애플의 전체 투자액은 5000만달러. 투자와 함께 스필버그가 아예 애플로 영입될 것이란 전망도 흘러나왔다.

스필버그가 만들 신작 드라마 시리즈는 1980년대 미국 NBC방송을 통해 방영된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ies)’를 업그레이드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공포와 환상이 주된 테마다. 제작된 모든 영상물은 아이폰을 통해 유료, 무료로 방영될 예정이다. 가로 15m짜리 대형 영화 스크린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모바일 화면을 무대로 거장(巨匠)이 뛰어든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새로운 도전은 애플의 미래를 전망케 하는 나침반에 해당한다. 바로 비디오다. 귀가 아니라 눈이 중심이 되는 IT기업으로의 변신이다. 원래 애플의 출발점은 아이폰이 아니다. 데스크톱인 아이맥(iMac)과, 음악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아이팟(Ipod)이 주력상품이었다. 애플은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음악을 팔아 수익의 원천으로 삼았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21세기 초 원하는 음악을 ‘깜찍하게도’ 작은 아이팟에 저장하는 것은 거의 꿈 같은 현실이었다. 비디오로 판매 영역을 넓혀왔지만 애플의 출발점은 역시 음악이다. 애플 매니아들이 보면 스필버그 영입은 전통적인 음악 플랫폼에 대한 배신으로 비쳐질 수 있다. 애플의 신(神)인 스티브 잡스의 영혼을 더럽히는 ‘더러운 비즈니스(monkey business)’라는 비난을 퍼부을 수도 있다.

애플과 스필버그의 합작은 애플 비즈니스의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제작 붐에 애플이 가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즈니스 참가가 아니라 ‘애플 제작’ 영상물이 탄생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네마 애플(Cinema Apple)’이란 이름의 애플 자회사도 머지않아 탄생할 수 있다. 모바일 시대의 당연한 행동 패턴이지만 이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플까지 영상물 시장에 가세하고 나면 집에서 애플TV를 통해 혹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 전망이다. 돈도 적게 들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엄청난 돈이 투자되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방식의 대작보다 중소 규모 독립영화사를 통한 드라마나 영화 제작은 미국에서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 ABC, NBC, CBS 등의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방송사나 미국의 유선방송업체HBO의 후루(Hulu), 넷플릭스(Netflix) 같은 비디오 플랫폼도 그 같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2015년 자체 제작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Manchester by the Sea)’로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아마존닷컴도 올해 영상 콘텐츠 확보에 45억달러를 투입하는 등 붐에 가세하고 있다. 2011년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HBO의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이 같은 붐의 최고봉에 해당하는 인기물이다.

지난 9월 12일 애플의 에디 큐 부회장이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새로운 애플TV를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2일 애플의 에디 큐 부회장이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새로운 애플TV를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6년 한 해 넥플릭스 같은 비디오 플랫폼에서 소개된 독립 제작 드라마만 500건에 달한다. 보통 최소 20개의 시리즈물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1만개의 에피소드가 탄생했다는 얘기다. 2011년에 비해 배가 늘어난 규모다. 지난 6월 말 전 세계 넷플릭스 채널을 통해 방영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도 그 같은 트렌드의 결과물이다. 추정컨대 애플이 한국에 직영점을 둘 경우 한국 매니아들만을 위한 한국판 애플 제작 드라마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이 자체 제작 영상 비즈니스에 뛰어든다는 전망은 스필버그와 손잡기 이전인 지난 6월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인 소니(Sony)의 TV 분야 고위간부 두 명이 애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리뿐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던 프로덕션도 애플에 통째로 옮겨갔다. 이 두 명은 연간 수입이 240억달러에 달하는 애플 아이튠즈 분야에서 일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2020년까지 아이튠즈 연간수입을 500억달러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물론 자체 제작 영상물이 새로운 수입원이다. 월스트리트는 여기에 민감하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중이다. 애플의 스필버그 영입 소식이 전해진 지 일주일 만인 10월 16일, 주당 155달러이던 애플 주가는 160달러로 치솟았다. 애플에 대한 투자가 발표되는 순간 스필버그가 운영하는 영화사 앰블린(Amblin)의 주가도 급등했다. 애플이 펼치는 영상물 사업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애플 아이폰에 대한 기대와 수요가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은 당연하다. 1000달러짜리 새 아이폰은 고급화, 소수화, 차별화를 통해 애플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 1일 기준으로 애플이 보유한 현금은 2615억달러. 웬만한 남미 한 나라의 1년 예산에 달하는 금액이다. 애플은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의 안정과 상승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막강한 현금이 종잣돈인 것은 물론이다. 아이폰 신제품이 얼마나 팔릴지에 관계없이, 가만있어도 1년에 최하 10%의 이익이 보장되는 것이 애플 주식이다.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 애플은 이미 글로벌 대마(大馬)로 성장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애플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애플의 고급화 전략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매장 밖에서 아이폰 신제품을 목빠지게 기다리던 얼리어댑터들은 더 이상 없지만 대신 안방에서 스필버그 감독의 애플 드라마에 목을 매는 매니아가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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