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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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는 언제나 연속선상에 있다. 하루아침에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것은 과욕이고 부작용이 따른다. 무엇보다 신뢰이익이 무너진다는 측면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62) 성균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등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새정부가 정책의 급격한 ‘유턴’을 선택함으로써 한국 경제 전체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이미 공정률이 30%가량 진행됐기 때문에 그걸 중단한다면 국가배상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무엇보다 급격한 정책추진에 따른 신뢰와 기대이익이 한꺼번에 허물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현 정부가 이처럼 예측가능성을 낮춘다면 외국에서 볼 때도 리스크 프리미엄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재완 전 장관은 또 현 정부가 노사정(勞使政) 타협으로 마련한 기존 노동개혁안을 폐기하는 바람에 시대 변화를 반영한 체질개선의 불씨가 꺼지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전일제, 평생직장, 정규직 선호의식 등 일하는 방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인데 현 정부 들어 미진하게나마 진행되어온 성과연봉제 등의 개혁 시도마저 퇴색되고 있다”며 “정권 초기부터 노동조합에 너무 많은 선물을 주는 바람에 노조가 협상테이블에 앉을 인센티브 자체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10월 16일 성균관대 호암관 연구실에서 1시간30분간 진행됐다.

- 현 정부에서 노동개혁은 어렵다고 보고 있나. “노동개혁이 전부는 아니지만 다양한 개혁의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계의 양보를 얻어 소위 노사 대타협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권 초부터 일방적으로 노조 측에 선물을 줬다. 노조는 정부가 약속한 것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자세만 취해도 충분하다는 식이다. 대내외 경제여건 변화에 따른 개혁이 불가피한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 정부 정책은 처음 방향을 잘못 잡으면 수정이 어렵지 않나. “그렇다. 그런 현상을 ‘맥베스(Macbeth) 효과’라고 한다. 처음에 했던 게 잘못됐더라도 그걸 합리화하거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면서 수정을 미루는 경향을 말한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가를 하는 게 섣부른 느낌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양이 목에 누군가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저항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경제의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구조적 접근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소득주도성장론은 적절한 처방인가. “성장은 소득의 증가를 의미한다. 동어반복 같기도 하고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학계 일부에서 나온 임금주도성장이 근로자만 강조되니까 자영업자 등도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이라는 것은 인과관계가 애매하다. 궁극적으로 소득을 어떻게 증가시킬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박 전 장관은 “성장이 부진하고 분배 흐름이 좋지 않은 것은 생산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부문 간 격차가 커 분배가 악화되고 있다. 또 선도기업과 나머지 기업의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휴대폰 산업의 경우 잘나가는 한두 개 기업과 나머지 기업의 격차는 굉장히 크다. 소수정예 전문 노동력과 미숙련 또는 중숙련 근로자의 격차도 상당하다. 결국 핵심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생산성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박 전 장관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행정학을 가르치지만 경제 분야 전문성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9년 행정고시(23회)에 합격, 재부무와 총무처 등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의장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했고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학계 다수이론이 아니라고 보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에 경제,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과 진단, 그리고 해법에 차이가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고 일정 정도 편차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기본 방향을 잡은 상태에서 경제 관련 담당자들이 기용됐기 때문에 최대한 조화를 이뤄 팀워크를 갖추려는 생각도 갖게 마련이다.”

- 문 대통령이 일자리를 국정운영의 우선 가치로 삼은 것은 어떻게 평가하나. “집무실에 일자리상황판을 설치한 것은 개발시대 낡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일자리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설정한 건 잘한 것 같다. 문제는 일자리라는 게 늘리고 싶다고 해서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겉으로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같아도 부분적으로 숫자만 바뀌는 ‘제로섬’이 될 수 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일자리 상황판을 통해 개선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 같다. 결국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일자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자리는 전체 파이가 커지거나 새로운 산업이 출현해야 늘어난다. 그걸 옥죄고 있는 게 낡은 제도나 정부의 규제, 그리고 기득권이다. 이걸 다 혁파해야 한다. 문턱을 낮추고 울타리를 없애 경제활성화 의지를 북돋아줘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기업의 의욕을 꺾어서 해외로 나가게 만드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한다.”

-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완전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정부가 기업에 임금을 지원한 사례는 없었던 것 같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정공법은 아니다. 임금을 정부가 보전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해마다 임금 인상 폭을 결정할 때 왜곡과 부작용이 파생될 것이다.”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대로 괜찮은가. “비정규직도 천차만별이다. 정규직 전환방식을 두고 관련 부처가 상당히 고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게 과연 옳은 정책인가에 대한 본원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취업해 있는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임금도 오르겠지만 기업은 결국 고용여력 자체가 줄어 신규채용을 줄이게 될 것이다. 새로 직업을 구하는 청년층의 구직난이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는 이유는. “호봉제가 적용되는 기업은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인건비가 순차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게다가 정규직화를 하면 인력을 구조조정할 수 없게 돼 기업 입장에서 기계나 토지를 사는 것처럼 인건비가 고정비용화된다. 강력한 노조를 가진 기업은 매년 임금이 오르지만 하도급이나 협력업체에 임금인상이 전가되고 결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또는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장관으로 있을 때 “좀 더 과감한 구조개혁에 나서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해 구조개혁이 역부족이었다. 여론이라도 환기하려고 더 노력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조개혁의 적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가 정말 어려울 때다.”

- 구조개혁의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변화에 대해 의견이 이분법으로 나뉜다. 일종의 진영논리다. 특별히 논란이 필요하지 않은 사안조차도 ‘찬성을 위한 찬성’을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소모적 정쟁이 완화된다는 측면에서 개혁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한국적 특징이다.”

- 한때 김동연 경제부총리 ‘패싱’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기획재정부에 힘을 실어주면 변화가 더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을 급격하게 바꾸겠다는 건 과욕이다.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재계가 적응하며 따라올 시간을 줘야 연착륙이 가능하다. 녹색성장 같은 큰 이슈는 재계가 부담감을 느끼는 정책이라서 청와대가 변신을 유도하는 게 맞다. 나머지는 경제부총리가 그립(Grip)을 잡는 게 바람직하다. 청와대는 임기를 염두에 두고 가능한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욕구가 있고 정권이 바뀌어도 되돌릴 수 없는 사업을 하고 싶은 유혹을 갖게 마련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착잡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을 맞았고 정치적으로 탄핵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런데 이걸 촛불혁명이라고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혁명은 시스템 밖에서 이뤄지는 거고 이번 탄핵은 제도 안에서 결정됐다. 국회 탄핵소추 당시 여당 국회의원 상당수가 동의했다는 점을 더불어민주당도 존중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영국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2016년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프랑스와 함께 세계 24위에 올랐다. 박 전 장관은 그러나 “실체적 민주주의에 있어 우리의 토양은 아직 척박하다”고도 했다.

- 실체적 민주주의는 무얼 말하는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우리 정치 지도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실체적 민주주의는 아직 덜 성숙됐다. 독일의 경우 가장 정직한 인물을 뽑는 여론조사를 하면 상위권은 항상 정치인이 차지한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반성과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한 결과다. 정치인들은 선거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목표 함수로 삼고 있다.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협치를 하게끔 시스템을 만든 게 실체적 민주주의의 선진화를 이끌어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고위관료 출신의 양돈선씨가 2017년에 낸 책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에는 독일의 정직한 인물을 조사한 자료가 소개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인이 뽑은 정직한 인물 1위부터 6위까지가 실제 정치인이다. 그 뒤를 이어 독일 출신 교황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10위권에 포함됐다.

- 야당에서는 현 정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한다. “대표민주주의와 책임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포퓰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함께 가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된다.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모두 포퓰리즘적 경향이 강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의 중재와 책임 있는 결정이 요구된다.”

- 포퓰리즘을 제어할 방법은 없나. “일반 국민 모두가 원자력발전의 가치가 무엇인지, 내년 재정수지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요즘 세계적 추세 중 하나가 독립재정위원회다. 정부나 정치권에 맡기면 위험할 수 있는 재정 문제를 임기가 보장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은 독립기구를 두고 방향성을 제시하도록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걸 ‘되돌릴 수 없는 확약기제’라고 하는데, 우리도 대중인기영합으로 흐를 수 있는 분야는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에너지정책, 교육정책 등 100년 대계를 내다볼 사안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은 어떻게 보나.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바꾸어야 할 잘못된 의식이 많다. 단순히 법치로만 해결할 수 없는 예치(禮治)와 덕치(德治)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 즉 우파 진영의 문제점만 표적으로 적폐라고 부르는 것 같다. 좌파도 적폐가 있다. 누군가를 적폐청산 대상이라고 하면 ‘너는 신(新)적폐’라고 맞받아친다. 이러면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박 전 장관은 “탄핵을 거치며 교훈으로 얻은 분권형 정치체제와 협치에 대한 요구를 살리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면서 “적폐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서로 반성하고 미래를 위해 그 에너지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우파·보수진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우파가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고 환골탈퇴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우파가 중론(衆論)이 아닌 정론(正論)을 추구하고 동시에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중도실용 기조로 사회통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파 가치에 부합하는 노선을 천명할 필요도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을 보면 우파정당인지, 좌파정당인지 구별이 안 되는 공약이 많았다.”

-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다시 합쳐야 한다는 데 동의하나. “그렇다. 다만 별일 없었다는 듯 다시 통합하는 것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혁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40대 이하 신인을 절반 이상 공천하겠다거나, 수도권 단체장의 경우 비(非)영남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식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는 여야 정치권이 서로에게 관대함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고용정보원에 취업한 게 특혜라고 의혹을 제기하거나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이 비싸다고 말하는 식의 발언은 그만하면 좋겠다. 야당이 먼저 생활정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포용력을 보이는데도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당시 30분 조작의혹 등을 거론한다면 국민은 청와대가 옹졸하다고 판단할 거다.”

- 북핵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나. “게임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패를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전략적 열세 국면을 자초했다. 전략적 모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절한 블러핑은 필요하다. 상대를 냉철하게 바라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문을 열어 둔다면 상대적 열세가 고착화될 수 있다.”

박 전 장관은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만든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남북 통일과 국가 선진화를 위한 정책을 연구하는 보수성향 싱크탱크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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