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비트코인 거래소 앞에서 한 시민이 시세판을 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서울 중구 비트코인 거래소 앞에서 한 시민이 시세판을 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12월 19일 암호화폐 거래소 ‘유빗(Youbit)’은 해킹 피해를 입어 전체 거래 자산의 17%를 탈취당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유빗이 탈취당한 피해액은 170억원에 이른다. 유빗은 지난 4월에도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 전체 거래 자산의 37%를 탈취당한 바 있다. 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금융당국이 버블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이처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암호화폐 거래소의 보안 취약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암호화폐에 쏠리는 투자금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유빗의 파산으로 인해 일종의 네거티브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高)위험 대비 고수익이 가능하다는 도박성 투기바람이 불며 가격 상승세를 부채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지난 12월 20일 오후 3시 현재, 화상화폐의 선두주자 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1코인당 2104만원 선에 거래됐다. 이날 하루 비트코인 가격은 4.81%(106만원)나 하락했지만 거래량 자체는 전날보다 늘었다. 미국 월가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보다 2~3배가량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도 국내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이날 거래된 암호화폐 가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비트코인 캐시는 이날 하루에만 160만원이 넘게 오른 413만원에 거래됐고, 대시는 165만원, 이더리움은 100만원, 제트캐시 79만원, 비트코인 골드 50만원, 라이트코인은 42만원을 기록(1코인·오후 3시 기준)했다.

규제 발표 이후 더 상승

여기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트코인의 종류가 4개나 되는 이유를 잠시 살펴보자. 암호화폐는 온라인상에서 만들기 때문에 오류를 정정하고 기능을 개선하려는 요구들이 계속 이어진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자면 오류 정정을 위해 기존 비트코인과는 다른 생성과정, 이른바 알고리즘을 만들어 분리할 수 있다. 암호화폐시장에서는 이를 하드포크(hard fork)라고 한다. 하드포크를 통해 비트코인에서 분리된 새로운 암호화폐가 비트코인 캐시와 비트코인 골드 그리고 비트코인 다이아몬드다. 이더리움도 이더리움 클래식에서 분리되어 나온 암호화폐다. 각각은 이름만 유사할 뿐 서로 호환되지 않기 때문에 각기 다른 암호화폐라고 보면 된다.

한 가지 더.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비트코인은 해킹으로부터 자유로운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디지털 화폐다. 이더리움은 이 블록체인 기술 위에 구글의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의 앱스토어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얹어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응용된 버전이다. 전 세계 IT업계는 시장과 달리 암호화폐가 아닌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이른바 분산컴퓨팅의 획기적 진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와 같은 통제시스템이 없어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돼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거래의 안전성, 효율성, 보안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삼성SDS와 유럽의 UBS, 산탄데르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시작했거나 인큐베이팅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4월 가상화폐법을 도입해 비트코인을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했다.

암호화폐는 매매에 따른 차익 실현과 별개로 암호화폐를 만드는 이른바 ‘마이닝’에 대한 투자처로도 각광받고 있다. 최근 암호화폐 가격 상승으로 인해 중국, 일본, 아일랜드 등지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채굴업체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2016년부터 암호화폐 채굴 사업체에 투자해온 A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생산하는 채굴장이 많은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을 골라 투자했다. 코인 채굴기 1세트 가격이 500만원 정도인데, 1억5000만원 정도를 투자하면 월 평균 수익은 1000만원 정도다. 다단계 형태로 운영되는 폐단이 나타나고 있지만 암호화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투자 수익금은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

향후 암호화폐가 디지털황금(Digital Gold)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물인 금이 시장에서 화폐의 가치를 담보하듯 암호화폐가 미래 디지털시장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12월 7일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분석보고서 ‘비트코인 관련 주요 이슈’에서도 이와 같은 전망이 실렸다. 국제금융센터는 1999년 4월 외환위기 재발방지를 목적으로 정부와 한국은행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국내 유일의 국제금융 전문연구기관이다. 이 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한다. “비트코인 투자상품의 제도권 편입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디지털금의 개념으로 자산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비트코인과 금은 이자지급이 없고 공급이 제한적이며 거래추적이 쉽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금은 안정자산으로서 수천 년에 걸친 명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치 인정에도 시간 축적이 필요해 보인다.”

국내 일각에서는 현재 암호화폐가 전 세계 금시장의 10~15% 정도를 잠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원자재시장을 제외하고 금융 목적으로 형성된 금시장 규모는 약 8000조원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금은 현물로 이동하지 않고 소유권만 거래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암호화폐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주간조선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71년 달러와 금을 교환하던 금태환을 금지한 뒤 금 가격이 급등세를 보였다. 그 추세가 현재의 암호화폐와 유사하다. 비트코인의 경우 소숫점 8자리까지 나누는 게 가능하고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금시장을 더 잠식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암호화폐가 제도권 밖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는 이유는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시카고옵션거래소, 나스닥 등은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을, 캔터거래소는 바이너리 옵션 출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 지난 12월 18일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해 거래를 시작했다. 이를 두고 미국 JP모건은 “거래소의 선물거래 승인은 (암호화폐의) 본격적인 제도권 편입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 거래된 날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관련 주식이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날 암호화폐 테마주로 분류된 한일진공, 제이씨현시스템, SBI인베스트먼트, 비덴트, 옴니텔 등은 모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광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시작했다는 것을 제도권 진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이라는 것은 본질 가치가 있지만 디지털금은 본질적 가치가 없다. 투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국제금융센터가 작성한 보고서에도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성이 커 화폐기능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이 담겨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 13일 암호화폐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하고 투기광풍을 제어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날 미성년자와 외국인의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개설을 금지하고 은행 입·출금 시 이용자 본인을 확인하는 등 신규투자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다단계 형태의 투자가 나타나는 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한곳으로 돈이 쏠리면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 증권가에서 우스갯소리로 객장에 애를 업은 주부가 보이고 스님이 등장하면 곧 사달이 난다는 얘기가 있다. 가상화폐시장이 그런 상태에 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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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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