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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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암호화폐는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달러로 대표되는 기존 (기축)화폐가 자충수를 두게 될 경우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대안 화폐인 암호화폐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암호화폐의 시대는 그렇게 본격화될 겁니다.”

홍익희 세종대 교수가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기반으로 등장한 암호화폐가 다가올 미래 화폐혁명의 열쇠가 될 것이라며 한 말이다. 홍 교수는 “기존 화폐 권력과 경제 권력에 대한 반발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화폐에 대한 욕구를 일으켰다”며 “이런 반발과 욕구가 결국 어느 시점에서 화폐혁명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 교수는 30년 넘게 코트라(KOTRA)에 근무하며 브라질,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이탈리아 등 전 세계 무역 전쟁터 최일선을 누볐던 인물이다. 2010년 이후 교수로 변신해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중에게는 유대인들의 경제 이야기를 풀어쓴 책, ‘유대인경제사 시리즈’를 통해 경제 분야 저술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런 홍 교수가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학을 전공한 아들 홍기대씨와 함께 암호화폐 이야기를 엮어낸 책 ‘화폐혁명’을 내놨다. 지난 6월 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홍익희 교수를 만났다.

암호화폐 부른 달러의 인플레이션

홍익희 교수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으로 불리는 기술적 진화에 더해 기존 통화 시스템이 만들어낸 각종 문제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며 “특히 ‘달러’로 대표되는 기존 통화 시스템과 경제 권력에 대항하는 화폐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홍 교수는 현재 세계 통화 시스템은 ‘달러가 주도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문제는 오랜 시간 세계 통화 시스템을 주도해온 달러 시스템이 이제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도, 또 영구적이지도 않은 화폐 시스템으로 변질돼버렸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율과 무역 전쟁, 소득과 분배의 불균형,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 사이 벌어져 버린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이 결국 현 통화 시스템이 빚어낸 문제들이다. 홍 교수는 이런 문제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며 기존 통화(화폐)에 대한 반발 심리가 누적됐고, 블록체인 기술이 이런 반발 심리와 결합되며 암호화폐를 등장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홍 교수는 오랜 시간 기축통화로 군림하며 사실상 경제 권력이 되어버린 달러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기존 화폐에 대한 반발을 불러온 핵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1972년 이후 지금까지 달러의 가치가 얼마나 추락했을까요. 놀랍게도 95% 넘게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문제는 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95%나 사라지는 동안 사람들이 이 같은 인플레이션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국가라는 권력이 교묘하게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로소 국가가 만들어낸 달러 가치의 이 같은 인플레이션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기존 통화에 대한 반발이 커진 것입니다.”

“태생적으로 인플레이션 막을 화폐”

홍 교수는 “화폐라는 건 원래 중앙집권의 통제 없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며 “화폐의 역사에서 화폐의 발행량이나 유통량은 모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국가라는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화폐 발행이라는 경제 권력이 정부의 손으로 들어갔고, 국가가 화폐 권력을 움켜쥔 후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만든 결과 서민들이 매번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한 몇몇 경제주체들, 그리고 암호학자와 공학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등장시킨 것이 바로 암호화폐라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신할 새로운 화폐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국가에 의해 자행된 이런 인플레이션 문제라고 봤다. 그는 암호화폐가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차단할 수 있는 화폐라고 주장했다. 만들어질 때부터 발행할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가장 유명한 비트코인은 물론이고,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암호화폐들과 또 다른 암호화폐들 역시 2100만개만 생산되도록 만들어지는 등 총 발행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발행량을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발행량을 조절하는 방식의 인위적인 가치변동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인 통화 시스템이지요. 인위적 가치변동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은 국가 등 다른 경제 권력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입니다.”

홍 교수는 “지금까지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기존 화폐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화폐가 없었다”며 “암호화폐는 이런 화폐 선택의 폭을 넓혀준 대상”이라고 했다. 결국 현재 인플레이션을 인지한 사람들이 앞으로 지금보다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황이 발생하면 기존 화폐 대신 새로운 화폐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그 대안으로 암호화폐가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는 게 홍 교수의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총 발행량은 만들어질 때부터 제한돼 인위적인 양적 증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가치’라는 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재 시장에서는 동일한 암호화폐라도 순간순간 끊임없이 다른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기존 화폐는 물론 그 어떤 거래상품보다 가치변동률(거래가격)이 크고, 급하다. 특히 그동안 강한 보안력을 장점으로 내세워왔던 것과는 달리, 유통 창구 역할을 하는 민간 거래소들이 해킹과 금융 사고에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해킹과 거래자료 삭제 등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존 화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변동성과 거래·유통 과정에서 드러난 취약한 보안 문제 등 화폐로서의 안정성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홍 교수 역시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수준의 암호화폐는 교환의 수단이자 가치저장의 매개인 ‘화폐’로서 사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했다. 암호화폐의 미래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로만 내다볼 것이 아니라 통화의 진화와 역사, 흐름이라는 거시적 큰 틀에서 봐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홍 교수는 “화폐의 발전 과정은 혁명적이었다”는 말로 암호화폐가 가져올 미래의 화폐혁명을 이야기했다. “화폐의 발전 과정에서 첫 번째 혁명은 ‘교환의 수단’으로 실물화폐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혁명이 실물이 아닌 신용에 기반한 신용화폐의 등장이었지요. 신용화폐 중에서도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전 세계 경제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러가 처음 등장할 당시 이것이 앞으로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니 달러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던 사람조차 없었을 겁니다. 암호화폐는 세 번째 화폐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그 초기 단계입니다.”

기존 화폐 권력의 암호화폐 흔들기

홍 교수는 암호화폐의 약점으로 드러난 가격 폭등락과 심각한 변동성, 불안정성 문제 등에 대해 “기존 화폐 권력의 암호화폐 흔들기”로 정의했다. 기득권을 가진 기존 화폐 시스템이, 대항 세력으로 등장한 암호화폐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가격 흔들기를 유도하고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특히 기존 화폐 시스템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유대 금융세력이 헤지펀드 등을 활용해 암호화폐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화폐 등장 초기에 나타난 기존 화폐 권력의 흔들기로 인해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런 구조에서 암호화폐 스스로 시장을 만들거나 통화 생태계를 구성하는 건 쉽지 않다”며 “결국 신용이 바탕인 기존 화폐, 특히 달러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실수를 다시 하게 되면 그때 사람들로부터 (암호화폐가) 선택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혼란스러운 암호화폐 상황이 IT산업의 성장과정과 유사하다는 주장도 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기판이었던 IT시장의 닷컴(.com)버블 상황과 지금의 암호화폐를 둘러싼 투기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닷컴 버블이 꺼지며 IT시장에 구글과 아마존, 네이버 같은 탄탄한 IT기업들로 옥석이 가려졌듯, 암호화폐도 투기 현상을 거치면서 옥석이 구분되면 통화 시스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전한 화폐들이 떠오를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투기적 성향 강하지만 금지보다 규제로

홍 교수는 ‘암호화폐가 투기적 성향이 강하다’는 점과 이 투기적 성향이 서민들의 손실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암호화폐 자체를 막는 것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통화 시스템 주도권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용화폐 시대에서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화폐 주도권을 잡을 수 없었지만 암호화폐 시대에서의 상황은 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현재 드러난 암호화폐의 부작용 때문에 암호화폐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것”이라며 “금지가 아니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규제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ICO(암호화폐 공개)가 “화폐 시스템의 변화는 물론 기업과 창업자들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도 해줄 것”이라며 “물론 사기와 부실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를 막기보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구상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대계 벤처창업자들이 투자받을 확률은 97%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벤처창업자들이 투자받을 확률은 고작 1.5%이지요. 암호화폐를 통한 ICO가 활발해지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화폐와 그 화폐 시스템이 우리 기업과 창업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홍 교수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국이나 일본, 또는 유대계 암호학자나 금융 시스템이 아닌 우리가 만든 암호화폐가 화폐 권력의 중심에 충분히 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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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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