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거래수수료 공짜 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증권사들. 왼쪽부터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photo 뉴시스
주식 거래수수료 공짜 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증권사들. 왼쪽부터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photo 뉴시스

30대 초반의 대학원생 이지혜씨는 최근 거래해오던 증권사를 교체했다. 대학생 때부터 재테크에 관심이 많던 이씨는 10년 가까이 거래해오던 유안타증권(옛 동양증권)을 떠나 하이투자증권으로 거래계좌를 옮겨버렸다. 이씨는 해당 증권사 영업사원을 만난 적도, 계좌 이전을 권유받은 적도 없었다. 기존에 거래하던 증권사의 주식 거래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익은 고사하고 심지어 손실이 난 상황에서조차 거래를 할 때마다 마치 세금처럼 꼬박꼬박 계좌에서 빼가는 수수료가 늘 불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주식 거래를 하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증권사들이 있음을 알게 되자 미련 없이 돈을 빼 증권사를 바꿔버렸다. 이씨는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증권사에 단 20분 만에 비대면계좌를 만들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짜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올해 들어 다수의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수수료 공짜 공세를 벌이면서 치열한 개인투자자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주식 거래 수수료 무료를 내세운 증권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6년쯤부터였다. 2016년 초 금융위원회는 개인투자자가 증권사 영업점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비대면계좌를 만들 수 있게끔 규제를 완화해줬다. 이렇게 되자 증권사들이 온라인·모바일 마케팅과 영업 강화에 나섰고,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비대면계좌를 만든 개인투자자에게는 거래수수료 무료 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수수료 무료 조건을 내세운 증권사들은 인지도가 낮았던 후발 증권사나 영업점 수가 매우 적어 오프라인 영업이 힘들었던 중소형 증권사들이었다. 더구나 이때만 해도 이들 증권사가 내세운 거래수수료 무료 기간은 길어야 5년 정도에 불과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수수료를 다시 내는 조건이었다.

비대면계좌 만들면 거래수수료 공짜

그러데 올해 들어 이 같은 시장 상황이 변하는 중이다. 증권사 규모나 인지도 등과 상관없이 다수의 증권사들이 거래수수료 무료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것도 아예 계좌만 개설하면 ‘평생 무료’ 혹은 ‘100년 무료’처럼 사실상 거래수수료 포기를 선언하는 증권사들이 늘고 있다. 이런 증권사들 중에는 기존에 거래하던 증권사 계좌에서 주식을 빼 자신들의 계좌로 옮겨 오는 고객에게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에 이르는 현금 혹은 상품권을 주는 곳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증권사들의 고객 확보 경쟁이 전쟁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인 KTB투자증권의 경우 ‘주식 거래수수료 평생 무료’ 조건을 내걸고 고객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하이투자증권은 ‘100년간 주식 거래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며 사실상 평생 공짜를 선언했다. 미래에셋대우도 2025년까지 주식 거래수수료 무료를 내걸었다. 한국투자증권과 한화증권 역시 계좌 개설 후 5년간 수수료 무료를 내세워 고객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KB증권과 대신증권도 얼마 전까지 수수료 무료 전쟁을 펼쳤다. 이렇게 중소형 증권사는 물론 전국에 영업망을 갖춘 업계 최상위권 대형 증권사들까지 수수료 무료 마케팅에 뛰어들며 주식시장 공짜 전쟁의 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 증권사들은 수익의 상당부분을 거래수수료로 챙기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사들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 수익 중 60% 정도가 거래수수료인 증권사들이 상당하다. 거래수수료의 수익 비중이 작은 증권사라고 해도 전체 수익 중 거래수수료가 약 3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수수료 수익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래수수료가 공짜가 되면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몇몇 증권사들이 이 점을 거론하며 제 살 깎아 먹기식 ‘치킨게임’을 중단하자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업계 최상위권 증권사들까지 수수료 공짜를 앞세워 개인고객 빼내오기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용 대출 해줄게, 돈 빌려 주식 더 사라”

이와 관련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익을 대체할 또 다른 수익원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로 ‘신용(융자) 대출’ 사업이다. 수익성 감소라는 우려에도 수수료 무료를 내세워 끌어들인 개인고객들에게 증권사가 투자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신용 대출), ‘이자 수익’을 챙겨가겠다는 새로운 영업전략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수수료 무료를 내세운 증권사들은 개인고객을 상대로 신용 융자와 대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수수료 평생 무료를 내건 KTB투자증권은 조건에 해당하는 신규 고객들에게 신용 대출 이자를 3개월간 1.99%만 받겠다고 나섰다. 또 5년간 수수료 무료를 내세운 한화투자증권은 신용 융자는 물론 개인고객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펀드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주식·펀드 담보 대출에 대해서까지 3개월간 3.5%의 이자만 받겠다며 신용(융자) 대출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수료 무료로 끌어들인 개인고객을 상대로 신용(융자) 대출 이자 이벤트를 수시로 열고 있는 증권사들도 늘고 있다.

현재 증권사가 고객에게 담보 없이 주식 투자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는 ‘신용 융자’의 이자는 대형 증권사의 경우 아무리 낮아도 4% 후반이다. 증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등의 경우 5% 후반에서 9%대인 경우가 많다. 신용 융자 기간에 따라 10% 넘는 이자를 받는 증권사들도 있다. 3%대의 신용 융자 이자만 제시해도 투자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증권사들은 기존보다는 조금 낮은 이자를 받더라도 더 많은 신용 융자와 대출을 해주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챙겨가겠다는 속셈이다.

공짜 마케팅 속 치솟는 신용 잔고

증권사들이 신용(융자) 대출 장사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 잔고(이하 신용 잔고)’ 추이다. 지난 6월 12일 신용 잔고는 무려 12조6479억9300만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첫 주식거래일이던 1월 2일만 해도 신용 잔고는 9조8935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불과 6개월 만에 신용 잔고가 무려 28%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7월 들어 신용 잔고는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 경고가 울리는 상황이다. 7월 16일 신용 잔고는 11조2702억4400만원에 이른다. 1월 2일과 비교하면 14% 정도 증가한 것으로 1조3767억400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신용(융자) 대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증권사들이 아니다. 수수료 수익 일부가 줄더라도 커지고 있는 신용(융자) 대출 시장에서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챙겨가겠다는 증권사들의 본심이, 이들이 내건 수수료 공짜 마케팅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규모와 업력, 인지도 등과 무관하게 거의 모든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주식 거래수수료 수익과 신용(융자) 및 대출 이자 수익 정도가 이들이 올리는 수익의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증권사들이 판을 키우고 있는 수수료 공짜 마케팅과 그 이면에 숨겨진 신용(융자) 대출 이자 챙기기가 어떤 양상으로 확대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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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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