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아직 프리미엄이 5억원밖에 안 붙었단 얘기죠?”

8월 7일 서울 신촌의 한 공인중개소를 들렀다. 전매금지가 풀린 신촌 그랑자이의 분양권 매매 문의가 한창이었다. 전용 84㎡(구 34평)를 보유했다는 조합원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리를 떴다. 신촌 그랑자이는 내후년 초 입주 예정인 단지다. 일반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약 8억원이었다. 같은 면적이 실거래 기준 12억6000만원까지 거래됐다. 현재 호가는 12억원대다. 혹시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없는지 중개사에게 물었다. “내려가도 몇천만원이다. 마포대로, 신촌대로변 신축은 이제 전용 59㎡(구 24평)는 10억원, 전용 84㎡는 11억원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강남·잠실권은 7월까지 간간이 나오던 급매물이 정리된 분위기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전용 84㎡가 최근 18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잠실 트리지움의 경우 전용 84㎡ 기준 14억원 초반대까지 매물이 나왔다가 다시 가격대가 올라갔다. 광화문 근처는 경복궁 자이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풍림스페이스본 같은 인근 주상복합까지 차근차근 가격대를 올리고 있다.

영등포 인근도 여름 비수기인데도 몇 달 만에 가격대가 올라갔다. 신도림역 부근의 대단지 아파트는 올 초까지만 해도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1억원이 안 되는 아파트가 많았다. 몇 달 사이 매매가가 가파르게 상승해 이젠 2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우리도 이렇게까지 오를 줄 몰랐다. 지금도 소형 평수의 경우 매수 대기자가 줄 서 있다. 매물이 나오면 당일에 바로 거래된다.”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서울 역세권 대단지는 일명 ‘못난이 매물’과 급매물이 모두 정리된 분위기다. 저층, 북향, 만기가 긴 월세가 끼어 있는 식의 아파트가 못난이 매물이다.

용산과 여의도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가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문배동 주상복합과 원효로 재건축 구축 아파트 가리지 않고 가격대가 수직 상승했다.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포함한 용산 전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미군기지 부지에 붙어 있는 효성 해링턴플레이스의 경우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리면 3.3㎡당 6000만원은 쉽게 가지 않겠냐는 예측이 나온다. 여의도는 박원순 시장이 ‘통째로 개발’을 언급하며 광풍이 한번 휘몰아쳤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실물시장에선 이미 김 장관의 발언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8월이 지나면 다시 한 번 대세 상승장이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서울 부동산가에 도는 이유다.

국토교통부도 현실은 제대로 파악하는 분위기다. 8월 2일 낸 참고자료를 보면 ‘최근 서울 일부 지역에서 주택거래가 위축된 가운데 급매물이 소화되며 집값이 상승하는 반면, 지방 시장은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분석했다. 내놓은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투기지역 추가 지정 검토’다. 투기지역에선 분양권을 포함한 3주택 이상 소유자의 양도소득세율이 10%포인트 가산된다. 주택담보대출은 1가구당 1건만 받을 수 있다. 사실상 가장 강도 높은 대출 규제다. 현재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용산, 성동, 마포, 양천, 영등포, 강서, 노원구 등 11개 구다. 여기에서 더 늘리겠단 뜻이다. 정책 의도야, 이 지역에 신규 진입하는 걸 막겠다는 건데 실제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올라갔다. 집은 꾸러미 재화다. 가격뿐 아니라 교통, 학군, 상권 등 주변 환경을 고려해 산다는 얘기다. 부동산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정부가 대놓고 어디에 투자하라고 알려준 격’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국토부의 발표는 이미 실패로 결론난 정책을 또 쓰겠다는 얘기다.

두 번째 해법은 ‘공공주택지구 공급’이다. 구체적인 방법도 내놨다. ‘서울시 등과 협조해 도심 역세권·유휴지·개발제한구역(GB) 등을 활용하겠다.’ 임대주택을 늘려 서울 아파트 값을 잡겠단 얘기다. 복지 관점의 선언은 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경제 원리 측면에선 해법이라 보기 힘든 안이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서울에 주택이 없어서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다. 지금도 부동산 매물을 검색해보면 매매가 1억원 이하 빌라가 수두룩하다.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건 역세권 브랜드 신축 아파트다. 임대주택은 그 공급을 대신할 수 없다. 복지에 따른 정책이라 해도 효율적인 예산 집행인지 봐야 한다. 국민임대주택 1가구당 LH공사엔 9600만원(2013년 기준)의 부채가 쌓인다. 시간이 갈수록 적자가 쌓인다. 임대비용에 비해 임대수익이 낮아서다.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 등이 공공주택 정책을 바꾼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가 주도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다가 1980년대 들어 중단했다. 재정 문제 때문이었다. 대신 임대료를 보조하는 수요자 지원 형태로 운용하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민간임대주택 장려로 전환했다. 수요자 지원 형태는 ‘사회주택’으로 분류되는데 중앙, 지방정부와 공기업, 비영리단체가 주거보조금을 지원하는 거주 형태를 말한다. 특별히 임대단지를 따로 짓는 게 아니라 있는 집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직도 임대주택 공급에 매달리는 우리 국토부 해법의 전망이 벌써부터 어두운 이유다. 이러니 이번 정부 들어 정부가 주택 규제를 내놓으면 잠시 악재로 작용하다가 곧 회복돼 다시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

“부동산 폭락은커녕 폭등을 걱정해야 한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의 말이다. 홍 팀장은 부동산 하락론자에서 ‘전향’했다. 2006년 ‘인구 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는 책에서 10년 후 부동산 하락을 주장했다. 지금은 ‘일본형 버블 붕괴는 없다’고 말한다. 홍 팀장은 ‘추세를 좌우하는 건 정책과 공급’이라고 말했다. 그는 3가지 이유을 들어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상승장으로 전망했다. 첫째, 수요 증가다. “인구감소 추세에 비해 1~2인가구 증가에 따른 가구 수 증가폭이 더 크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주택을 팔 거라고 전망했는데, 실제 통계를 보니 더 사더라. 월세를 받기 위해서다.” 둘째, 공급 감소다. “연 2.5% 순증이 적정 공급량이다. 서울의 경우 재건축, 재개발을 막아놨다.” 셋째, 고소득 근로자들의 구매여력 증가다. “실물경기가 최악이라고 하지만 고소득 근로자들의 경기는 호황이다. 부동산시장은 사회 전체의 평균소득보단 상용 근로자들의 소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택을 구매하는 건 이들이다.”

KB 금융지주경영연구소는 지난 8월 6일 ‘2018 한국부자보고서’를 내놨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27만8000명이다. 이들 중 65%가 수도권에 산다. 서울만 보면 43%다. 서울 집중 현상이다. 2017년에 조선일보가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고소득 직장인은 77만명이다. 1억원을 받으면 상위 5%에 들 수 있다. 10년 전인 2006년에는 달랐다. 연봉 1억원이면 상위 1%에 해당됐다. 그만큼 고소득 연봉자가 늘었단 얘기다. 게다가 고소득 직장인 열에 여덟은 40대와 50대다. 한창 아파트를 옮겨갈 세대다. 결국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값 상승은 이들이 이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소득 직장인은 한창 매매

정권이 바뀌며 아파트 값의 부침을 지켜본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카카오톡이나 밴드 등 SNS메신저엔 적어도 수십 개의 부동산 단체 채팅방이 활동 중이다. ‘강남방’ ‘용산방’ ‘마포방’ ‘서울 경매방’ 이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 모여 있다. 채팅방 인원제한이 1000명인데, 인기 있는 방은 빈자리가 나는 즉시 채워진다. 단체 채팅방엔 부동산 정보가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오간다. 어느 아파트 몇 층 매물이 오늘 얼마에 거래됐다는 실시간 정보부터, 정부 개발계획에 대한 분석까지 하루 종일 토론이 이어진다. 국토부에서 보도자료를 내는 즉시 채팅방에선 그 여파와 대응책까지 논의한다. ‘3주택인데 팔아야 하나’라고 상담을 올리면, 어떻게 하라는 해결책을 알려준다. 김현미 장관이 ‘다주택자는 집을 파는 게 좋을 것’이라고 시한까지 정해 을러대도 의도한 효과가 안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서울 하반기 부동산시장에서 두 가지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3도심과 7광역중심, 그리고 신역세권’이다. 3도심은 4대문(광화문), 강남, 여의도(영등포)를 뜻한다. 좋은 일자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3도심 등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작해 박원순 시장이 2013년 발표한 ‘2030 서울플랜’에서 설정한 개념이다. 도심을 세 곳으로 분산하고, 다시 7개 지역이 광역중심을 나눠 담당하는 식이다. 3도심에 접근성이 좋을수록 주택의 가치가 높다. 마포대로변, 신촌대로변 신축 아파트가 급등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축이라면 한 군데 도심에만 가까워도 오른다. 신길뉴타운이 예다. 그 다음 주목해야 할 곳이 7광역중심이다. 용산(도심권), 청량리·왕십리(동북권), 상암·수색(서북권), 창동·상계(동북권), 마곡(서남권), 가산·대림(서남권), 잠실(동남권) 지역이다. 마곡, 청량리·왕십리 집값은 신축을 중심으로 이미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다. 서북권은 수색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신역세권은 새로 역세권이 되는 곳이다. 연장개통될 신분당선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신안산선이 핵심이다. 신분당선은 현재 광교~강남 구간을 운행 중이다. 2020년엔 강남~신사까지 연장 개통된다.

GTX는 김문수 지사 시절 논의가 시작됐다. 이름 그대로 수도권을 빠른 속도로 오가는 철도다. A·B·C 노선으로 나뉜다. A노선의 진행 속도가 제일 빠르다. 경기도 파주 운정을 출발해 서울 삼성역을 거쳐 화성 동탄에 도착하는 구간이다. 동탄~삼성역 구간(39.4㎞)은 정부 재정사업으로 올 4월 공사를 시작했다. 파주~삼성역 구간(43.7㎞)은 민자사업으로 짓는다. 신한은행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연내 착공되면, 2023년에 개통된다. B·C 구간은 예비타당성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2021년 착공해 2025년 개통된다. 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남양주 마석까지 잇는 총 80㎞ 구간이다. C노선은 수원~서울~경기 양주를 잇는 총 길이 74.2㎞ 구간이다. GTX 착공이 확실해지면 역사 인근 아파트 값은 다시 요동칠 예정이다.

신안산선도 주목해야 한다. 안산(한양대역)에서 시작해 시흥, 광명을 거쳐 여의도를 연결한다. 총 노선 길이는 43.6㎞. 안산에서 여의도로 가는 시간이 30분대로 단축된다. 건설 계획은 나왔지만 착공이 계속 늦춰졌다. 그러다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결국 관건은 다시 부동산정책이다. 국토부가 열차 안전운행부터 아파트 값 문제까지 담당하는 건 업무 과중이 아닐까 싶다.

키워드

#부동산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