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 ⓒphoto 뉴시스
증권사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 ⓒphoto 뉴시스

증권업계가 요동치면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대형화를 명분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증권사들이 있는가 하면, M&A 시장의 매물로 전락해 경영권이 바뀌었거나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증권사도 적지 않다. 또 삼성증권의 이른바 ‘유령주식’ 사고 여파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증권사 시장은 소유권을 기준으로 삼성과 현대차그룹 등 재벌그룹이 경영권을 가진 재벌계 증권사와 시중은행 계열 증권사, 그리고 금융전문그룹 소유의 증권사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중 재벌계 증권사들이 각종 비리와 사건 사고에 얽히며 최근 들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몇몇 금융전문그룹과 은행계열 증권사들은 재벌계 증권사들의 쇠퇴를 틈타 고객을 빼앗아오는 등 영업을 강화하며 대형화에 나서는 모습이 뚜렷하다. 특히 일부 시중은행과 금융지주들이 증권사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더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유령주식에 6개월간 손발 묶인 삼성증권

재벌계 증권사 추락의 대표 사례는 단연 삼성증권이다. 지난 4월 5일 삼성증권은 실체가 없는 유령주식을 무려 112조원어치나 발행해 직원들에게 불법 배당했다. 이 유령주식을 배당받은 수십 명의 직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다음날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부당 차익을 챙겼다. 금융당국의 조사와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것처럼 당시 삼성증권은 직원들이 소유한 우리사주에 대해 현금 배당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현금 배당 대신 발행해서는 안 되는 유령주식을 발행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가 사고가 터졌다.

당시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삼성증권 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사주 현금 배당 업무를 했던 직원의 실수로 유령주식 배당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주식시장과 증권사 업무 및 관리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시장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단순히 직원 실수로 몰아가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고로 당시 주식시장은 초토화됐다. 삼성증권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물론이고, 시장지수까지 흔들리며 시장이 엉망이 됐다. 이후 불법행위를 한 삼성증권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시작됐고, 몇몇 직원들이 구속됐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7월 26일 정례회의에서 삼성증권에 6개월 (신규투자자 계좌 개설 등 일부 사업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와 1억4400만원의 과태료 징계를 결정했다. 또 구성훈 대표 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직무정지와 해임 요구를 했다. 유령주식을 내다 판 삼성증권 직원 13명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부과했다.

금융위까지 나서 경영진, 직원들에 대해 징계를 내리자 삼성증권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금융위의 징계 결정 바로 다음날인 7월 27일, 사고 이후에도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던 구성훈씨가 사퇴했다. 삼성증권 대표이사를 맡은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불명예 사퇴한 것이다. 삼성증권은 신뢰도와 이미지 추락뿐 아니라 당장 7월 27일부터 2019년 1월 26일까지 6개월 동안 신규투자자에 대한 ‘한국·해외 주식매매 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일부 사업에 대해 영업정지 조치를 당하며 사실상 신규고객 확보가 힘든 상황에 몰린 것이다. 올 3분기부터 연말까지 영업과 실적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일부 사업에 대해서만 6개월 영업정지를 결정한 것을 두고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고객과 투자자들이 삼성증권에 등을 돌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의 경영손실은 물론이고, 재벌계 증권사 중 사실상 최대 규모로 대형화와 사업다각화를 벌이던 삼성증권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다. 은행계와 금융전문그룹 소유 대형 증권사들과의 경쟁이 당분간 버거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SK그룹이 손 뗀 SK증권

(위부터) SK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본사. ⓒphoto 뉴시스
(위부터) SK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본사. ⓒphoto 뉴시스

최근 경영권이 팔리거나 팔릴 처지에 놓인 재벌계 증권사도 있다. SK그룹이 보유했던 SK증권이 대표적이다. 유령주식을 발행한 삼성증권 징계가 발표된 지난 7월 26일, SK증권은 사실상 주인이 바뀌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J&W파트너스에 사실상 경영권 매각이 결정된 것이다.

그동안 SK증권은 비정상적인 지주사 구조로 인해 M&A 시장 매물로 내몰려왔다. 현행법은 일반지주회사가 금융·보험업 분야의 계열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금산분리(金産分離)’ 정책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등 오너가의 지배권 강화를 위해 지배구조를 정리하면서 지주사인 ㈜SK와 SK C&C를 2015년 합병했다. SK C&C는 최 회장의 돈줄이자, 최 회장이 적은 지분으로 SK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던 회사. 그러자 문제가 불거졌다. SK C&C가 소유하고 있던 SK증권 지분이 ‘금산분리법’을 위반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SK그룹은 2년 안에 SK증권 지분을 매각해야 할 상황에 내몰렸지만 그동안 지분 매각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압박을 가했고, 지난해 케이프인베스트먼트㈜가 중심이 된 케이프컨소시엄과 매각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매입자의 자금 조달 능력이 문제가 되며 금융당국의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SK그룹에 금산분리 위반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 준수를 강조하고 나서자 다시 SK증권 매각에 나서 결국 J&W파트너스에 매각을 결정했다. 재계 3위 SK그룹이 26년간 소유했던 증권사에서 손을 떼게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SK증권의 매각 가치(지분 10%)도 추락해버렸다. 지난해 케이프컨소시엄에 608억원을 받고 팔 수 있었지만, J&W파트너스에는 불과 515억원이 조금 넘는 돈에 경영권을 넘겨야 할 실정이다. 매각이 혼란을 겪으며 SK증권의 2017년 4분기 당기순이익도 적자로 추락했고, 올해 1분기 역시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대폭 감소했다.

재벌계 증권사의 추락은 또 있다. 정몽준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하이투자증권의 경우다. 이 증권사 역시 꽤 오래전부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로, 최근 대구은행을 주력 계열사로 둔 DGB금융지주가 매입에 관심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 10위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 증권사가 지방은행에 경영권이 넘어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재벌계 증권사는 왜 몰락했나

사실 재벌 계열 증권사들이 몰락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 LG그룹 소유였던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도 카드사태 당시 몰락했고, LG 구씨들 방계인 LIG투자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 역시 구자원 회장과 아들 구본상·구본엽씨가 LIG건설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을 주도하다 매각되고 말았다. 동양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CMA시장 1위이던 동양증권도 오너일가의 불법 행위 끝에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만계 유안타증권에 매각됐다.

과거는 물론 최근에도 벌어지고 있는 재벌계 증권사들의 추락 배경에는 무리한 기업 운영, 비상식적인 시스템 관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몇몇 재벌계 증권사의 경우 계열사는 물론 오너 일가에게 무리한 금전 지원을 하거나,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동원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증권사들 상당수는 결국 기업가치가 훼손돼 외부에 자금 수혈을 요청하거나, M&A 매물로 내몰렸다.

재벌계 증권사들의 허약한 영업력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급여계좌 단체 개설, 카드 단체 신청, 퇴직연금 몰아주기 등 그룹 계열사와 직원들을 동원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손쉽게 매출을 올려왔던 게 큰 이유다. M&A 매물이나 금융사고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현대차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 다른 재벌계 증권사들 역시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이다.

M&A 시장 큰손으로 나선 은행계

반면 재벌계 증권사들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매물로 내몰리며 추락하는 사이 시중은행계(은행 금융지주) 증권사와 금융전문그룹 소유 증권사들은 이들이 점유하던 시장을 갉아먹고 있다. 대형화를 내세우며 M&A 시장에도 뛰어들어 “다른 증권사를 사들이겠다”고 나선 곳들도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이 대표적인 약진 증권사들이다.

NH농협 계열인 NH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금융전문그룹 계열인 한국투자증권이 독점하던 발행어음 시장에 2호 사업자로 가세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혹은 종합금융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일반 투자자(고객)에게 자신이 직접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일종의 단기금융상품이다. 발행어음 사업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금융사(증권사)에 막강한 자금 동원력이 생겼다는 의미다.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신용)만으로 상당부분 자체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행어음 시장 진출은 그동안 모든 증권사들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재벌계 증권사들의 이 시장 진출은 사실상 어려웠다. 신용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규모를 감안하면 재벌계 증권사 중에서는 삼성증권 등 몇몇 정도가 진출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유령주식 발행 사건으로 징계를 받으며 향후 최소 2년 이상 신규사업 진출이 힘들어졌다. 모든 증권사들이 진출을 꿈꾸던 이런 시장에 지난해 11월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진출했고, 올해 NH농협 계열 NH투자증권이 뒤이어 진출하며 영업을 강화하는 중이다.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 역시 인수와 합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며 대형화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판도를 좌우한 M&A 시장에서 현재 큰손으로 등장한 것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계 금융지주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이 금융지주화를 선언하며 증권사 인수의지를 높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과거 우리투자증권을 NH농협에 매각하며 증권사 운영에서 손을 뗐지만 다시 금융지주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꾸며 증권사를 운영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우리은행이 사모펀드들과 연계해 교보증권 등 몇몇 증권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심지어 우리은행 계열인 우리종합금융을 증권사로 업종을 전환시킨 후 덩치를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구은행을 갖고 있는 DGB금융지주가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꽤 오래전부터 시장에 돌고 있다.

이렇게 한국 증권사 시장은 재벌계 증권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시중은행계 금융지주와 금융전문그룹들이 소유한 증권사들이 영업을 확대해 나가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와의 치열한 영업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특히 증권사 지점과 영업사원 단위에서 크고 작은 금융사고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무리한 공방전으로 인한 고객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세심한 관리·감독과 관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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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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