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전북 군산 수상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전북 군산 수상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앞으로 허리띠를 더 바짝 조여야 할 모양이다. 성장·공정·포용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는데도 여전히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소득주도 경제성장의 철학 때문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태양광·풍력에 매달리는 산업부가 내놓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이 더 큰 골칫거리다. 20년 후의 에너지 소비량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시키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의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고 우리도 에너지 소비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과도한 규제에 의한 소비 감축은 자칫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민 생활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정책에서도 소통·참여·분권이 필요하지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맹목적인 수요 감축

산업부가 공개한 권고안은 2040년의 수요 목표를 2017년보다 고작 0.3% 늘어난 1억7660만t으로 전망했다. 실질적으로 앞으로 20년 동안 에너지 소비를 동결하겠다는 뜻이다. 2030년 이후에 에너지 소비 증가가 둔화되면서 정부의 강력한 수요관리 대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 권고안을 마련한 워킹그룹의 희망이다. 70여명의 전문가들이 모였다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전문가들로 보인다.

산업부가 에너지 소비 전망을 과도하게 축소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내놓았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2030년까지의 전력수요를 무려 11%나 감축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역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여름을 무사히 넘긴 것도 기적이었다. 훨씬 더 심각한 한파가 찾아온다는 올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맹목적인 수요 전망의 감축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3차 기본계획 권고안에서는 수송과 가정 부문에서 동결 수준을 넘어서 적지 않은 소비 축소를 감수해야 한다. 수송 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무려 21.7%가 줄어들고, 가정 부문에서도 12.2%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업·상업·공공 부문에서 현재보다 겨우 11.0%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 총량을 줄여야 한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불요불급한 냉방과 난방이 긴축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 생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화려한 4차 산업혁명도 가정에서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것은 전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수송 부문의 에너지 감축도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산업·상업·공공 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경제 성장과 직결되어 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활동을 위한 생산은 에너지 소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의 재정적 부담이 수반되는 행정 규제에만 의존해 에너지 소비를 줄일 경우에는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권고안의 전망은 앞으로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을 포기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확실한 에너지 정책으로 기업의 생산활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득주도·혁신·공정·포용으로 화려하게 포장한 경제 성장 정책 역시 한낱 부질없는 꿈이 될 수밖에 없다.

권고안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적극적인 수요관리를 강조한다. 사실 2040년까지 에너지 수요 목표를 동결 수준으로 낮춰 잡은 것도 강력한 수요관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권고안에 포함된 수요관리 방안은 황당할 정도로 구태의연한 행정 규제뿐이다. 이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진 기존의 수요관리 수단인 배출권 거래제와 제로에너지 빌딩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독일의 제도를 흉내 낸 ‘한국형 LEEN’을 도입하는 정도가 새로운 시도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에너지 효율 향상에 필요한 진단·기획·개선을 지원해줄 역량을 가진 지자체·지방대학·연구기관이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권고안이 강조하고 있는 가격 구조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선택형 전기요금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무차별적인 집단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에너지원별 과세 체계의 개편은 더욱 난망하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 개편이나 전기요금의 누진제 개편도 불가능한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질적인 소비 감축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 구조 개선은 탈원전보다 더 긴 호흡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석유 수요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리고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1조에 따라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최상위 중장기 계획이다. 앞으로 20년 동안의 에너지 수요 목표와 구체적인 수급방안을 비롯해서 수요관리·안전관리·복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회기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수급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에너지기본계획에는 당연히 전력과 신재생뿐만 아니라 석탄·석유·가스(LNG)의 사용량 전망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산업부가 내놓은 권고안은 오로지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을 확대하겠다는 일방적 주장만 담겨 있을 뿐이다.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수요를 2017년의 2.16배인 2550만 석유환산톤(toe)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대신 석유의 수요는 6140만t에서 4450만t으로 27.5%나 감축하고, 전력의 수요는 4370만t에서 4830만t으로 10.5% 확대한다. 권고안에 따르면 2040년에는 에너지 믹스가 현재의 석유>전력>석탄>도시가스>신재생에서 전력>석유>석탄>신재생>도시가스로 크게 변하게 된다. 결국 권고안은 ‘전력 중심사회’로의 획기적인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권고안에서는 정부가 고집하던 탈원전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전력의 공급을 어떻게 늘리고, 석유의 수요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변화가 국민 생활과 기업의 생산활동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분석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권고안이 제시하는 에너지 믹스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부터 분명하지 않다. 선진국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선진국의 에너지 환경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큰 선진국 중에는 우리에게는 극도로 제한적인 수력(水力)과 바이오에너지가 넘쳐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선진국을 흉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전력과 신재생 중심의 에너지 믹스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권고안에는 20년 동안의 경제성장·인구·산업구조·유가(油價)를 어떻게 전망했는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환경 보존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설사 그런 여력이 있다면 그것은 통일 준비를 위해 아껴두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전력 비중 늘리겠다며 구체 방안은 없어

2040년에는 전체 에너지 수요 중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24.7%에서 27.3%로 늘어난다. 현재보다 10.5%나 늘어난 4830만t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권고안에는 늘어난 전력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다. 소위 ‘전력 믹스’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권고안에는 전체 발전에서 재생에너지인 태양광·풍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25~4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선언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태양광·풍력의 비중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구상은 찾아볼 수 없다. 어느 지역에 얼마나 넓은 부지를 확보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말이다.

현재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탄화력과 LNG화력, 그리고 원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석탄화력과 LNG화력의 축소 또는 확대가 환경에 미칠 영향도 정밀하게 추정해야 하고, 석탄과 LNG의 국제 가격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장기 전망도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원전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사실 20년에 걸친 ‘에너지기본계획’을 마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원전 때문이다. 건설에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에 대한 장기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휴지통에 던져버리겠다는 탈원전의 정책 의도를 숨겨둔 에너지기본계획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태양광·풍력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은 왜곡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전기를 생산하는 일이 친환경적·친생태적일 수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태양광과 풍력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태양광·풍력 설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훨씬 더 심각하다. 패널 제작에 인체와 환경에 피해를 주는 맹독성 용매가 대량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패널 제작에 소비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도 문제가 된다. 신재생이 친환경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큰 문제 불러일으킬 태양광 폐패널

유리판에 반도체 회로를 화학적으로 결합시켜놓은 패널의 폐기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태양광 패널을 폐기하는 유일한 방법은 파쇄해서 매립하는 것이다. 유리 재질의 패널은 수십만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폐(廢)패널을 매립한 지역은 영원히 쓸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고 값싼 유리를 재활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패널의 재활용이나 폐기 기술을 개발할 인센티브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패널의 폐기를 책임져야 할 주체도 분명히 해야 한다. 제조사에 책임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패널의 수명이 다하는 20년 후까지 제조사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패널의 경제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패널의 비중이 높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사업자에게 폐기 책임을 맡겨야 하겠지만 그마저도 현실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양광의 단가가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폐기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과 영세성은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다. 발전 설비를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 남짓한 수준이고, 전력 생산 밀도도 매우 낮다.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보다 100배의 부지가 필요하다. 결국 태양광·풍력 시설은 발전양이 적어서 원전이나 화력발전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없다.

수많은 영세 발전사업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도 걱정스럽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만 개의 소규모 발전시설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태양광·풍력의 발전 비중이 25%를 넘어서면 송전망의 안정성과 전기의 품질 저하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수많은 영세 발전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조금’은 심각한 문제다. 재생에너지의 보조금은 심각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된다. 보조금 덕분에 태양광은 이미 최고의 ‘노후대책’으로 변질되었다. 권력과의 유착에 의한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재생에너지의 이해당사자인 ‘신재생 마피아’가 늘어나면 에너지 정책의 유연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독일과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재앙적인 상황이다.

보조금이 태양광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역설적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해서 20년 수명의 설비를 갖춘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을 반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은 이미 그런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전통적인 재생에너지인 ‘수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 현재 경유에 의무적으로 첨가하고 있는 ‘바이오디젤’의 가능성도 포기할 수 없다. 미래의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수소’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기술 혁신이 진정한 수요관리

진정한 수요관리는 기술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백열전구 대신 형광등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서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한 LED(발광다이오드) 전구를 개발하는 것이 수요관리를 위한 기술 혁신의 가장 대표적인 예다. 단순히 에너지의 소비를 무작정 제한하는 규제 중심의 수요관리는 의미가 없다. 에너지의 낭비는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지만 국민 편익과 경제 성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부하요금(심야전기)에 대한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전력 수요가 크게 줄어든 야간에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는 기업에 대한 일방적 특혜라고 할 수 없다. 기업이 야간작업에 투입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당국의 입장에서도 손해를 보는 일이 아니다. 석탄화력이나 원전처럼 출력을 쉽게 조절하기 어려운 기저전원에서 생산되어 낭비되는 전력을 활용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경부하요금 제도를 폐지하면 기업은 굳이 야간작업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생산을 포기할 수 없는 기업은 피크 전력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에 공장을 가동해야 하고, 전력 당국은 피크 수요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발전 설비를 건설해야 한다. 피크 전력 수요가 넘칠 때 활용하는 수요자원 시장(DR)은 수요관리 수단이 아니라 블랙아웃을 회피하기 위한 비상수단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소통·참여·분권을 앞세운 에너지 민주주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력 생산과 정유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하다. 규모의 경제는 경제성만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발전 시설과 정유 시설을 인구밀집 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설치함으로써 절약할 수 있는 환경 비용도 엄청나다.

분산형 전원과 에너지 민주주의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경제성과 환경성을 통째로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자체 단위에서 주민들의 합의에 의한 시설에서 생산하는 전력과 석유제품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20여개의 정유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정유업체가 우리보다 황 함유율이 높은 경유를 생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분권과 민주주의가 모든 영역에서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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