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울산 남구 울산시청에서 열린 전국경제투어 ‘수소경제와 미래에너지, 울산에서 시작됩니다’ 수소경제 전략보고회에 앞서 수전해키트를 관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울산 남구 울산시청에서 열린 전국경제투어 ‘수소경제와 미래에너지, 울산에서 시작됩니다’ 수소경제 전략보고회에 앞서 수전해키트를 관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탈원전을 핑계로 태양광·풍력을 과도하게 밀어붙이던 정부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선공약에도 없었던 ‘수소경제’가 대세라고 한다. 2040년까지 무려 640만대의 수소차를 보급하고, 대규모 연료전지 발전소를 짓겠다는 화려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았다. 스스로 수소경제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돌발적인 의지에 정부의 에너지·산업정책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로드맵은 대통령의 기대조차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수소차는 아직도 엄청난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는 걸음마 단계이고, 대규모 수소 연료전지 발전도 검증된 기술이 아니다. 수요의 절반을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수소 공급대책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것이다. 미완성의 수소경제를 무작정 밀어붙이는 모습도 과거 녹색경제·창조경제를 꼭 빼닮았다. 어렵사리 얻어낸 재생에너지 기득권을 걱정하는 환경단체들의 반대도 거세다.

수소 경제의 정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기반으로 하는 ‘수소 경제’는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2002년에 만들어낸 어설픈 개념이다. “우주 질량이 75%를 차지하고, 구하기도 쉽고, 고갈이나 오염이 없는 수소가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라는 리프킨의 주장은 환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가 수소에 열광했고, 2015년에는 세계에너지기구(IEA)가 수소를 미래의 에너지로 꼽았다. 그러나 수소경제의 거품이 드러나면서 열기가 시들해져버렸다.

우주의 75%가 수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항성)에 있는 수소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우주 공간을 통해 수소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적인 기술은 영원히 기대할 수가 없다. 물론 수소의 고갈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소를 에너지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원소(元素)인 수소의 정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수소는 탄소(탄화수소)·질소(암모니아)·산소(물) 등과 화학적으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수소를 에너지로 쓰기 위해서는 이 결합부터 풀어야 한다. 때문에 수소는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연료가 아니다. 에너지 전달매체로 활용할 수소를 만들기 위해 다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상당한 오염을 감수해야 한다.

기술에 숨겨진 과학에 대한 상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미래학자 리프킨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매우 심각한 어려움이다. 수소의 경제적 생산을 가로막고 있는 열역학 법칙은 우주에서 수소를 구해올 길이 없듯이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소차가 대도시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원자력 에너지가 수소 생산을 위한 뜻밖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효율과 안전의 두 마리 토끼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화석연료처럼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방법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이 낮다. 결국 훨씬 복잡한 ‘연료전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써야만 한다. 수소를 이용해 다시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소차는 사실 연료전지를 탑재한 전기차가 될 수밖에 없다. 수소경제의 성공에는 전기차의 효율에 버금가는 수소차가 꼭 필요하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촉매·분리막·고분자전해질 등의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연료탱크에 700기압 이상의 초고압으로 수소 연료를 충전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참고로 수소는 섭씨 영하 240도 이하에서만 액화가 가능하다. 연료전지의 대형화와 내구성 향상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과장된 정보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수소가 가벼워서 폭발 위험이 없다는 주장은 엉터리다. 수소는 공기 중에서 폭발적으로 연소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소차 연료탱크가 에펠탑 무게도 견딜 수 있다는 주장도 섣부른 것이다. 튼튼한 탱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초고압으로 압축된 수소 연료의 물리적 위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수소차가 미세먼지 해결의 수단이라는 주장도 황당한 것이다.

연료의 생산과 공급 인프라

수소를 생산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천연가스)나 물을 열분해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하는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다. 효율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소의 생산에 상당한 양의 연료와 전기가 필요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수소경제에서도 화석연료에서 나타나는 고갈과 오염, 원전 사고 위험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수소의 생산·운송·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만만치 않다. 기체 상태인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높은 압력으로 압축하기 위해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수소 충전소는 앞으로도 비싸고 위험한 시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수소 연료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수소를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수소는 열분해·전기분해로 생산해서 초고압으로 운송해야 하는 ‘공산품’이다. 우리의 수소경제를 위해 기꺼이 오염과 위험을 감수해줄 국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다.

미래 기술에 대한 섣부른 인식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남보다 더 나은 기술을 더 빨리 개발해서 상용화해야 한다. 그러나 미완성의 미래 기술에 대한 섣부른 전망을 현실로 착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수소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완성된 기술이 절대 아니다. 태양광·풍력과 함께 아직도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이다. 설익은 기술의 맹목적인 보급에 아까운 예산을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수소경제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수소경제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전기의 경우처럼 수소의 생산과 소비를 분리시켜서 얻게 될 환경적 가치가 수소경제의 핵심이다. 수소경제는 오염 해소가 어려운 인구밀집 지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결국 수소경제는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환경을 더욱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게 될 미래의 보조적 에너지 전달 수단이다. 수소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꿈은 섣부른 것일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