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단연 ‘배터리’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화는 물론 소셜미디어, 음악·영화 스트리밍, 내비게이션 기능까지 이용하다 보니 배터리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보조배터리 하나쯤 챙겨 다니는 것은 일상이다. 그렇다면 ‘배터리가 줄지 않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는 없을까. 최근 일상생활 어디서나 접하는 무선랜(Wi-Fi) 전파신호를 전기로 변환해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장치가 개발돼 화제다.

교류 전자기파를 직류 전기로

우리는 FM 라디오나 디지털 TV 신호, 휴대전화 전파, 와이파이 등 무선 주파수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무선 주파수를 발생시키려면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 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토머스 팔라시오스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팀이 그런 기술을 현실화시켰다.

지난 1월 28일, 팔라시오스 교수팀은 무선랜(와이파이)으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정류 안테나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플렉서블(Flexibls) 장치인 ‘렉테나’가 그것이다. 렉테나(Rectenna)는 rectifier(정류기)와 antenna(안테나)를 합성한 말이다.

렉테나는 와이파이 신호를 흡수하여 전기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다. 와이파이 신호는 교류 전자기파다. 이를 직류 전기로 바꾸려면 정류 안테나가 필요하다. 기존의 정류 안테나를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는 실리콘(Si)이나 갈륨비소(GaAs)다. 이 물질들도 와이파이 대역을 커버할 수 있다. 와이파이 신호를 전력으로 이용하는 발상이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리콘이나 갈륨비소와 같은 물질은 성질이 유연하지 않고 딱딱하기 때문에 단단한 구조로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벽이나 공간이 충분한 곳에만 설치가 가능하다. 게다가 이들 재료는 소형 장치를 만들 때는 비용이 저렴한 반면 건물이나 벽의 표면 같은 넓은 영역에 장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가공하기도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사실 와이파이 신호를 전기로 변환하는 정류 안테나 기술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정류 안테나들은 전기 생산 효율성이 떨어져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낮은 주파수에서 작동하는 바람에 와이파이 신호가 운용되는 기가헤르츠(㎓) 주파수에서 신호를 포착해 전기로 변환하기 어려웠다. 하루 종일 무선랜을 이용해 휴대전화 배터리 한 칸도 채우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팔라시오스 교수팀은 잘 구부러지면서도 ㎓ 주파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정류기를 만들기 위해 신소재 이황화몰리브덴(MoS₂)을 사용했다. 이황화몰리브덴은 원자 3개 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 물질 중 하나로, 휘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황화몰리브덴은 특정 화학물질을 처리하게 될 경우 원자들이 스위치처럼 작동해 재배열되면서 ‘쇼트키 다이오드(Schottky diode)’로 바뀌게 된다. 쇼트키 다이오드는 금속과 반도체를 접합시키는(반도체+금속) 소자로, 금속재료의 특성을 갖게 돼 전류를 흐르게 만든다. 교수팀은 이황화몰리브덴의 이 한 가지 특성만을 이용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플렉서블 정류 안테나인 ‘렉테나’다.

교수팀이 개발한 렉테나는 무선통신에서 쓰는 마이크로파에 반응성이 뛰어나다. 기존의 정류 안테나에 비해 대역이 훨씬 넓고, 교류를 직류 전기로 변환해주는 속도 또한 빠르다. 와이파이 주파수 대역인 2.4㎓와 5㎓는 물론 최대 10㎓까지 신호를 포착해 변환할 수 있다. 더구나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어서 고속도로, 공공장소를 포함한 어느 곳에나 설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렉테나의 전기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 실험 결과 와이파이의 일반적 전력 수준인 150마이크로와트(㎼, 100만분의 1W)의 신호를 받아 약 40㎼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단한 재질로 만든 보통의 정류 안테나 전기 생산율(40%)보다 10% 부족한 30% 수준이다. 이 정도 양이면 간단한 모바일 기기용 디스플레이나 실리콘 칩을 구동시키는 데 충분하다. 교수팀은 앞으로 전기 효율 개선을 목표로 새로운 플렉서블 와이파이-전기 변환 장치를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몸속 의료기기에도 유용

요즘은 사물인터넷(IoT)이 발달하면서 집과 공공시설, 건물 등 거의 모든 곳에서 와이파이(무선랜)를 사용한다. 와이파이가 통용되는 곳에 교수팀이 개발한 유연한 렉테나를 설치한다면 어디서든 스마트폰 충전이 가능하다. 향후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에 따로 전기를 얻기 위한 충전설비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와이파이 신호를 전기로 바꾸면 스마트폰을 포함해 휴대나 착용이 가능한 사물인터넷용의 전자통신기기, 의료기기 사용에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의 최대 화두는 화면을 접었다 폈다 하는 폴더블(foldable)폰 개발이다. 최대한 슬림한 두께를 유지해야 하는 폴더블폰에 배터리가 차지하는 면적만 줄일 수 있어도 대단한 성과다.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공공 무선랜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쓰는,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비롯해 배터리 없는 스마트폰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GPS(위성위치파악시스템) 신호가 도달하지 않는 실내 환경에서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리모델링한 코엑스 지하에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라 약속한 장소를 찾을 때 헤매기 쉽다. 지하라서 내비게이션 정보도 쓸 수 없다. 하지만 와이파이 신호를 이용하면 신호 패턴만으로 약속한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무선랜 기기와의 거리에 따라 신호의 강도가 달라지는 원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속에 넣는 의료기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몸속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을 개발한다고 하자. 이는 캡슐 모양의 먹는 약처럼 생긴 작은 내시경을 사람의 입으로 삼키면 체내에서 스스로 이동하여 몸 밖으로 영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체내에서 직접 진단하고 처치하는 기능까지 갖춘 의료기기다. 그런데 이 캡슐형 내시경에 구동용 리튬 배터리를 달 경우 만의 하나 리튬이 새어나와 환자가 잘못될 수도 있다. 따라서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고 주변의 와이파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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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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